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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속으로]코로나19 위기와 일터의 혁명

이상문 기자

이상문 기자

  • 승인 2020-06-08 10:37
이재만
이성만 배재대 교수
재택근무, 화상강의, 유연근무제 등이 확산되며 일터가 변신을 거듭하고 있다. 재킷 대신 티셔츠, 사무실 대신 발코니가 일상화되며 이른바 '코로나 뉴 노멀(New Normal)'이 등장한 것이다. 재택근무는 어느 곳이든 느슨한 모습이다. 코로나 위기 이전에는 동료의 소파나 추한 거실 벽지를 보는 일은 결코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코로나 위기 이후부터는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교수라면 연구실뿐 아니라 가정도 근무지로 선택하고 있다. 디지털 화상강의가 갑작스레 개인 공간으로 파고든 것이다. 그러니 아이들이 화상 속으로 뛰어들기도 하고, 새소리나 개 짓는 소리도 들리기도 한다.

코로나 위기 이전까지만 하더라도 기업들은 일터에 관한 한 그렇게 유연하지 않았다. 화상회의가 도입되며 간단한 약속으로 지방에서 서울까지 출장 갈 필요도 없게 되었다. 업무 출장도 줄이고, 출퇴근도 줄이고, 근무시간도 더 유연해지면서 스트레스뿐 아니라 환경오염도 줄일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유연성은 주로 사무직이나 이론교육에만 적용될 수 있다.

교육계든 노동계든 코로나 이후 화상강의, 재택근무 등으로 학생이나 직원을 지도하고 있다. 아마도 그 동안 체험하지 못한 새로운 경험들도 많았을 것이다. 아침 9시에 아이들과 산책하는 것을 예전에는 상상이라도 할 수 있었을까. 결코 포기하고 싶지 않은 생활패턴이다. 학생이든 직원이든 다시 각진 공간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을 것이다. 대학이든 기업이든 관계자들은 이런 사실을 충분히 인지하고 있을 것이다. 중요한 것은 바로 코로나 위기로부터 도출된 이러한 문화적 혁명이 아닐까.



언제부터 가정과 직장이란 공간이 분리되었는지는 알 수 없다. 부단한 학습을 통해 우리에게 익숙해진 규범이 바로 가정과 직장의 분리임은 분명하다. 그러면서 출퇴근을 요구하는 직장이라는 물리적 공간뿐 아니라 근무시간, 근무자세 같은 시간적, 물리적 자기절제가 필요하게 된 것이다. 코로나 위기 이후 이러한 규범들에도 균열이 일어나고 있다. 디지털화된 세계도 직장이나 사무실의 개념을 모호하게 만든다. 근무에 중요한 것은 장소가 아니라 환경과 자세라고 할 수 있다. 학생의 경우라면, 학습의 유연성이 확대될 것이고, 등교, 수업시간, 수업자세 등과 같은 각본은 수정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또한 재택근무는 수백만 사람들의 방문을 열고 그들의 사생활을 노출시킨다. 너저분한 거실에 앉아 있는 사람은 가족일 수 있고, 학자들은 즐겨 서가 앞에 있는 모습을 노출시킨다. 어떤 이는 부엌이나 욕실에도 앉아있다. 재택근무라면 복장도 더 이상 부자연스러울 필요가 없다.

편안함도 좋지만, 제약도 있어야 하겠다. 예컨대 교수라면 학생들이 화상강의 동안에는 침대에 누워 있지 말고 책상에 앉아 있기를 기대한다. 일거수일투족 모든 것을 노출시키는 것은 문제가 있다. 어떤 것들은 사적일 필요가 있는 것이다. 오픈 소스 기반 비디오 컨퍼런스 솔루션 줌(Zoom)이나 짓시미트(Jitsi meet) 같은 플랫폼에서는 기술적으로 가상적인 배경을 선택할 수도 있다. 낡은 부엌 벽지 대신 시원한 파도가 넘실대는 바다를 배경으로 만들 수 있다.

코로나 위기 이전에는 마트 구매가 장보기의 규범이었다면, 이후에는 온라인 구매가 대세가 된 듯하다. '강의는 교실에서', '업무는 사무실에서'라는 규범적인 공식도 코로나 위기와 함께 붕괴된 듯하다. 이렇듯 직업세계는 이제 더 많은 자기결정이 가능한 문화적 혁명에 직면한 것 같다. 지난 몇 달 동안 기업이든 교육계든 확실히 디지털화로 자리매김을 했지만, 여전히 재택근무나 화상강의만으로는 가정과 직업의 양립, 가정과 일터의 조화와 같은 문제들은 해결하지 못했다. 분명한 것은 코로나 위기가 미래의 막연한 상상으로 여겨지던 변화들을 일상화하는 계기로 작용할 것이라는 점이다.

이성만 배재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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