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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보기] 내가 알아가는 인생의 태도

이영우 배재대 문화예술대학장

김성현 기자

김성현 기자

  • 승인 2020-07-02 11:15

신문게재 2020-07-03 19면

이영우
이영우 배재대 교수.
자의든 타이든 포스트 코로나로 인해 예전보다 시골에 있는 작업실에 자주 왔고, 지금도 시간만 되면 학교 연구실이 아닌 작업실에 가서 있곤 한다.

때로는 농부처럼, 때로는 일군처럼, 때로는 고독한 화가의 모습으로서 때로는 은신처로서 자주 직면하게 되었다. 작업실 주변에 있는 땅은 그러고 보면 늘 침묵하고 있었다.

땅은 고개를 숙이고 있었고 겸손을 가르쳐 주기에 자연이 보여줬던 지난날의 아름다움은 땅의 본질을 느끼게 해 주었고 그럴수록 나는 더 고독해질 수 있었다.



예전엔 몰랐는데 보이지 않던 것이 이제는 보인다.

고독한 자가 기울이는 침묵의 술잔처럼 어제도 나는 땅과 교감을 나눴다.

땅은 이다지도 고요한데 인간 세상을 잠시 벗어나 그들의 뒤에서 은둔처럼 살아가는 잠시의 경험도 내게는 어느새 위안이다.

포스트 코로나로 알게 된 여러 불편함 들은 내 습관이었다는 것을 알았다. 습관에 따른걸 알게 모르게 습(習)하면서 불편함이 불만이 되어서는 안 되고 자칫

부정적으로 흐를 수 있는 상황을 조심하려 한다. 아니 땅의 겸손을 배우고 싶어졌다. 간밤에 무척 많은 비가 왔다.

뜨거운 여름의 날씨를 잠시 밀어주는 비였기에 여름을 밀어내는 착각까지 했으니

시골의 여름이 도시의 여름과는 다르지 싶다. 늘 보는 풍경이지만, 요즘은 매일 다르게 느껴진다.

나이를 먹은 탓도 있겠지만 이런 시골의 풍경이 마음 깊숙이 음미하리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그림 그리는 일 외에는 큰 의미를 두지 않는 삶은 결코 재미있는 삶이 아니기에

주위에 작은 변화에도 마음의 작은 평화를 느낀다. TV도 없고 스마트폰도 멀리 할 수 있는 시골에서의 시간이 좋아지는 걸 보니 나도 조금씩 자연인이 되어가나 보다.

비 온 후..

그냥 우두커니 바깥에 앉아 이곳에서의 10년 후를 생각해 본다. 더 나이 들고 초라해질 건 뻔하지만, 그때까지 내 영혼이 정상이라면 나는 그때 화가로서 더 과감하게 그려갈 것이다.

지나간 시간을 헛되게 하지 않은 것만으로도 화가는 행복한 직업임에 틀림이 없다. 그때는 잘 팔리지 않은 좋은 그림을 그려야 한다는 결론으로서 진정한 화가로서의 삶을 지탱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화가로서 보는 일상은 매일 보는 산이 다르듯 매일 사는 하루하루가 내 마음과 태도에 따라 다르다. 산다는 건 하루하루가 실전이지만 나는 연습으로 받아들인다.

인생에 무슨 정답이 있을까마는 내가 써 내려가는 것이 오답이라는 걸 알지만, 굳이 다시 쓰려고 애쓰지 않는 것도 나만의 인생의 태도다.

이런 말을 할 수 있는 것도 내 삶의 오답들을 짚어보는 건 정답을 찾겠다는 것이 아니라 틀려도 부끄럽지 않은 답을 남기고 싶어서다.

땅을 일구고 종자를 심으면서도 침묵하는 땅이 얼마 지나지 않아 열매로서 응답해 주기에 나도 그런 연습을 하고자 한다. 땅을 일구고 그 땅이 보여주는 수많은 과정이 내게는 예술이다.

예술이 어려우면 삶이 가벼워진다고 했는데 예술도 어렵고 삶도 무겁다. 그래도 예술은 아름다워야 하기에 내 인생의 태도는 땅의 침묵을 배워가고 예술을 하는 아름다운 마음으로 인생에 임하고 싶다.

그러기 위해서는 조금 더 깊이 생각하고 조금 더 고독해야 가능하다는데 화가는 일부러 고독한 길을 선택한 사람들이니 얼마나 유리한가?

/이영우 배재대 문화예술대학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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