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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오디세이] 예순 즈음에

양성광 연구개발특구진흥재단 이사장

윤희진 기자

윤희진 기자

  • 승인 2020-09-21 08:13
양성광이사장
양성광 이사장
어쩌다 보니 김광석 님이 부른 '서른 즈음에'의 두 배를 살았다. 예순 즈음에는? "또 하루 사라져 간다. 서산에 걸친 노을처럼. 희미한 내 기억 속에 무얼 다시 채워 넣을지. 점점 더 짧아져 간다. 아쉬움 없는 인생인 줄 알았는데. 식어가는 내 가슴속엔 더 아무것도 바랄 수 없네. 계절은 다시 돌아오지만"이라고 내키는 대로 읊조려본다.

노랫말처럼 계절은 다시 돌아올까? 밭매고 씨 뿌리는 봄이 다시 찾아올까? 그렇담 이번엔 좀 더 야물게 살아낼 수 있을 텐데. 내 삶의 시계는 이제 작열하던 태양도, 몰아치던 태풍도 지나고, 가을걷이의 끝자락에서 째깍거린다.

삶의 계절은 한번 지나면 다시 오지 않는다. 그래도 희망의 끈을 놓지 못하고 설레는 것은 겨울이 남아있기 때문인데. 겨울은, 아! 어릴 적 겨울은 배고픔과 추위를 견뎌내는 단단함을 가져다주었었지. 밤사이 차갑게 식어버린 구들장을 안고 하루 끼니를 걱정하던 어린 시절이 새록새록 떠오른다.



그렇다면 AI 비서까지 두고, 등 따습고 배부르게 맞는 이번 겨울은 희망가일까? 아니면 이 역시 견뎌내야 할 고단한 삶의 연속일까? 의료기술의 발달로 인생의 겨울은 한없이 늘어질 것이라던데, 그때까지 내 겨울의 창고는 온전할까? 기나긴 날을 무엇 하며 보내지? 그래도 어릴 적엔 할 일이 참 많았었는데…상념에 젖는다.

서른 즈음엔 견뎌내야 할 날들이 너무 많아 힘들었는데, 지금은 남은 날들이 얼만지 알지 못해 버겁다. 공자는 "서른은 학문의 기초가 확립되는 이립(而立)이고, 예순은 귀가 순해져 사사로운 감정에 얽매이지 않는 이순(耳順)이다"라고 했다. 성현의 말씀을 따랐는지, 30년을 배워서 30년간 우려먹고 살아왔다. 그런데 예순이 됐는데도 이순은커녕 앞으로 30년 사는 법을 어디서 배울지 막막하다. 이러다가는 한 달란트를 받아 땅에 묻어놓고 주인 오기만을 기다리던 종처럼 무위도식하는 겨울이 될까 봐 두렵다.

퇴직 후 재취업이나 노후를 준비하는 50·60세대는 인구의 1/4이나 된다. 이 가운데 진지하게 겨울을 준비하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정부의 정책마저도 초중등과 대학교육에 집중하는 사이 은퇴 초년생들은 대책 없이 평생의 터전 밖으로 내몰리고 있다. 서른 즈음에 한강의 기적을 경험한 베이비부머들이 한 해 80만 명씩이나 쏟아져 나오는데, 개인이나 사회나 전혀 준비가 안 됐다.

이들이 지금 가장 원하는 것은 자신의 경험과 능력에 맞는 일을 찾는 것이다. 돈이 많든 적든 은퇴자들은 일이 없는 것을 가장 못 견딘다. 이들이 젊은이의 일자리를 빼앗아서도 안 되겠지만, 고급 노동력을 그냥 방치하는 것도 국가적 손실이다. 잘만 활용하면 초저출산 시대에 부족한 노동력을 메꾸고 복지비용 등 사회적 부담도 덜 수 있다.

이들은 평생 저축을 미덕으로 살아온 탓에 돈을 모으기만 했지 어떻게 써야 하는지 모르는 경우가 많고, 가끔 엉뚱한 꼬임에 빠져 전 재산을 날리기도 한다. 따라서 은퇴 전에 재산을 안전하게 관리하고, 불리는 법을 미리 배워야 한다. 때로는 적절히 소비해야 돈이 돌고 경제가 산다는 것도 알아야 한다.

계속해서 사회의 일원이 되려면 젊은 세대와 열린 마음으로 소통하고, 공감하는 법도 배워야 한다. 또한, 사회의 변화에 적응하기 위한 지속적인 노력도 필요하다. 정부는 원하는 사람 모두가 은퇴 후를 대비한 재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관련 제도와 인프라를 정비해야 한다. 모든 사람에게 직장과 병행해 2~4년간의 재교육을 제공하는 보편교육이 시행되었으면 좋겠다. 한번 퇴직하고 나면 다시 사회와의 연결이 쉽지 않음으로 이러한 교육은 은퇴 전에 마치는 것이 효과적이다. 학령인구 감소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대학을 지역별 ‘신중년 교육 특별대학’으로 지정해 육성하는 것도 검토해볼 만하다.

요즘 흔한 가장이 되어 어쩌다 하는 집안일이 서툴다고 구박도 받지만 괘념치 않는다. 까짓 30년의 1/10인 3년만 배우면 될 텐데 뭘.

/양성광 연구개발특구진흥재단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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