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재생리포트2021⑤] 대전 유천동 집결지 폐쇄 13년, 도시는 사라지고 모텔촌만 남았다

[도시재생, 외면했던 진실을 보다]
④유천동 폐쇄 13년, 절반의 성공이라 불리는 이유
인권 유린 등 온갖 불·탈법 폐쇄조치로 철퇴
하지만 도시환경정비 계획과 여성종사자 자활대책 전무

이현제 기자

이현제 기자

  • 승인 2021-08-12 10:08
  • 수정 2021-08-24 10:34

컷-도시재생리포트

 


[도시재생, 외면했던 진실을 보다] ④유천동 폐쇄 13년, 절반의 성공이라 불리는 이유

 

대전의 ‘텍사스촌’으로 불리던 유천동이 2008년 성매매 집결지 폐쇄를 선언한 지 13년이 지났다. 그 후 도로 곳곳에 주홍글씨처럼 새겨져 있던 '미성년자 출입금지' 표시는 지워졌고 호객행위와 유리방도 사라졌다. 하지만 심각한 슬럼화로 유천동은 도시 기능을 기대할 수 없는 모텔촌으로 전락했다. 성매매 집결지 폐쇄는 이뤄냈지만, 도시 정비와 후속 대안이 없었다는 건 뼈아픈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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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9월 중부경찰서 및 유관기관의 강력단속으로 유천동 집결지의 업소들이 휴업에 들어간 가운데 집결지 곳곳에는 '집결지 해체'를 알리는 현수막이 설치되어 있다. 사진=중도일보DB
유천동 성매매 집결지가 만들어지기 시작한 것은 1979년 시외버스터미널이 유천동 현재 서남부시외버스터미널로 이전하면서다. 과거 동구 인동과 중구 은행동, 선화동에 있던 속칭, ‘방석집’ 업소들이 이곳으로 모여들기 시작한 것이다. 초기엔 터미널을 찾는 승객들을 대상으로 무허가 영업을 시작했지만, 1980년대 야간 통행금지가 해제되면서 전국에서도 발길이 이어지면서 커졌다. 1991년 정부는 유천동 일부 구역을 청소년 출입금지구역으로 지정했다. 그러나 1993년 대전엑스포를 계기로 유성 일대와 일부 지역에 유흥주점 영업을 허가했고, 이듬해엔 유흥주점 허가제한 조치를 전면 해제해 유천동에는 69개 업소가 허가를 받아 정식 영업을 시작했다. 이후 유천동 집결지는 유성으로 손님을 빼앗기자 자구책으로 업소 전면부를 대형 투명 유리로 개조해 여성을 앉히는 속칭, '미아리' 방식을 도입하기까지 이르렀다.

영원히 밤일 것만 같았던 유천동 시대가 막을 내린 건 2008년이다. 대전중부경찰서를 주축으로 '유천동 성매매 집결지 종합정비대책'을 발표했고 폐쇄를 위한 단속에 들어갔다. 대전경찰청 자료에 따르면, 2008년에는 2086명을 검거했고 24명을, 2009년에는 3145명을 입건해 41명을 구속했다. 당시 중부경찰서장으로 집결지 폐쇄를 이뤄낸 황운하 국회의원(대전 중구)은 "유천동 성매매 집결지는 태평동에서 안영동, 산성동으로 넘어가는 대로변에 있어 아이와 함께 지나가는 모든 부모에게 민망한 장소였다. 종사자 여성들이 기계처럼 일하고 말도 안 되는 규칙으로 벌금을 물게 하는 등 끔찍한 인권 피해사례들이 알려지면서 단속을 넘어 폐쇄가 맞겠다고 생각했다"고 회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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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목마다 늘어선 대형 모텔들 영업을 알리는 조명을 비추고 있다. 사진=이현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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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럼화 골목 사이사이 또 다른 모텔이 지어지고 있는 공사 현장 모습.사진=이현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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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천동 일대 일부 골목은 밤에 인적이 전혀 없는 어둔 밤의 모습을 모이고 있다.사진=이현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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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천동 모텔촌 일대 영업중인 성인용품점.사진=이현제 기자
경찰을 중심으로 자치단체와 소방, 전기 등의 기관이 총출동해 성매매 집결지 폐쇄는 이뤄냈지만, 이후 후속대책과 상권 활성화, 집결지 여성들에게 대한 자활 대책은 전무했다. 유천동 집결지 폐쇄를 반쪽 성공이라고 부를 수밖에 없는 이유다. 그 후 유천동에는 급격한 슬럼화 현상이 나타났다. 일부 영업장은 문을 닫았지만, 곧 다른 방식으로의 성매매를 알선했고 모텔만 빼곡하게 들어서는 추세다. 주변 상권은 침체했고 현재도 문을 연 상업시설을 좀처럼 보기 어려울 정도로 무너진 상태다.

2014년 역사와 경계에 발표된 논문인 '대전 매춘공간의 형성과 변화(저자 김희식·손일란)'에 따르면, "유천동 텍사스촌 폐쇄는 겉으로 보기에는 성공한 것처럼 보이지만, 그 사이에 매춘여성들은 또다시 도심의 성산업 공간으로 흡수돼 사회공간을 혼종시키고 말았다"고 실었다. 대전시와 경찰은 유천동 집결지 해체 후 후속 대책으로 탈매춘 여성 보호 대책과 자활시설 마련, 주거환경 정비 계획, 생계지원금과 의료지원금, 직업훈련 수강료를 지원하겠다고 했으나, 예산 확보조차 못해 흐지부지됐다. 유천동이 문을 닫자 행정당국으로부터 어떤 후속대책도 받지 못한 여성들은 유천동 외 지역에서 미아리식', '유천동식'이란 이름으로 다시 거리에 나올 수밖에 없었다.

대전 여성단체 관계자는 "칼국수 거리나 선화동 꽃단지 등 다른 업종을 유치하는 방법과 그중 가장 소극적이지만 영업장 중 한두 곳이라도 매입해 시민들의 공간을 만들어 장기적 알박기를 하며 균열을 만들기 위한 방안도 나왔었지만, 결국 문제의식 자체가 없던 시청과 구청 등 행정기관의 무관심이 지금의 유천동을 만들었다"고 비판했다. 과거 성매매 집결지였던 유천동 감금·폭행, 그리고 인권 유린당하던 여성들만 일부 사라진 상태, 그리고 모텔의 휘황찬란한 불빛이 골목으로 가득 채우고 있는 공간으로 남아있다.
이현제 기자 guswp3@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위원회의 지원을 통해 작성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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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등천변에서 자녀와 운동하는 아버지(왼쪽)와 산책하는 시민(앞), 그리고 그 뒤로 모텔이 영업을 알리는 조명을 비추고 있다.사진=이현제 기자
100919-성매매 화려한 유성과 불꺼진 유천동 홍등가2 copy_0
오는 23일이면 지난 2004년 성매매특별법 시행 이후 딱 17년째를 맞이하는 가운데 유성시내 일대는 늦은밤까지 유흥가의 네온사인이 화려하게 빛나며, 홍등가였던 유천동 일대는 철퇴를맞아 조명이꺼진지 오래돼 암흑가를 이루고 있다.사진=중도일보 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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