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재생, 외면했던 진실을 보다] ④유천동 폐쇄 13년, 절반의 성공이라 불리는 이유
대전의 ‘텍사스촌’으로 불리던 유천동이 2008년 성매매 집결지 폐쇄를 선언한 지 13년이 지났다. 그 후 도로 곳곳에 주홍글씨처럼 새겨져 있던 '미성년자 출입금지' 표시는 지워졌고 호객행위와 유리방도 사라졌다. 하지만 심각한 슬럼화로 유천동은 도시 기능을 기대할 수 없는 모텔촌으로 전락했다. 성매매 집결지 폐쇄는 이뤄냈지만, 도시 정비와 후속 대안이 없었다는 건 뼈아픈 대목이다.
2009년 9월 중부경찰서 및 유관기관의 강력단속으로 유천동 집결지의 업소들이 휴업에 들어간 가운데 집결지 곳곳에는 '집결지 해체'를 알리는 현수막이 설치되어 있다. 사진=중도일보DB |
영원히 밤일 것만 같았던 유천동 시대가 막을 내린 건 2008년이다. 대전중부경찰서를 주축으로 '유천동 성매매 집결지 종합정비대책'을 발표했고 폐쇄를 위한 단속에 들어갔다. 대전경찰청 자료에 따르면, 2008년에는 2086명을 검거했고 24명을, 2009년에는 3145명을 입건해 41명을 구속했다. 당시 중부경찰서장으로 집결지 폐쇄를 이뤄낸 황운하 국회의원(대전 중구)은 "유천동 성매매 집결지는 태평동에서 안영동, 산성동으로 넘어가는 대로변에 있어 아이와 함께 지나가는 모든 부모에게 민망한 장소였다. 종사자 여성들이 기계처럼 일하고 말도 안 되는 규칙으로 벌금을 물게 하는 등 끔찍한 인권 피해사례들이 알려지면서 단속을 넘어 폐쇄가 맞겠다고 생각했다"고 회상했다.
골목마다 늘어선 대형 모텔들 영업을 알리는 조명을 비추고 있다. 사진=이현제 기자 |
슬럼화 골목 사이사이 또 다른 모텔이 지어지고 있는 공사 현장 모습.사진=이현제 기자 |
유천동 일대 일부 골목은 밤에 인적이 전혀 없는 어둔 밤의 모습을 모이고 있다.사진=이현제 기자 |
유천동 모텔촌 일대 영업중인 성인용품점.사진=이현제 기자 |
2014년 역사와 경계에 발표된 논문인 '대전 매춘공간의 형성과 변화(저자 김희식·손일란)'에 따르면, "유천동 텍사스촌 폐쇄는 겉으로 보기에는 성공한 것처럼 보이지만, 그 사이에 매춘여성들은 또다시 도심의 성산업 공간으로 흡수돼 사회공간을 혼종시키고 말았다"고 실었다. 대전시와 경찰은 유천동 집결지 해체 후 후속 대책으로 탈매춘 여성 보호 대책과 자활시설 마련, 주거환경 정비 계획, 생계지원금과 의료지원금, 직업훈련 수강료를 지원하겠다고 했으나, 예산 확보조차 못해 흐지부지됐다. 유천동이 문을 닫자 행정당국으로부터 어떤 후속대책도 받지 못한 여성들은 유천동 외 지역에서 미아리식', '유천동식'이란 이름으로 다시 거리에 나올 수밖에 없었다.
대전 여성단체 관계자는 "칼국수 거리나 선화동 꽃단지 등 다른 업종을 유치하는 방법과 그중 가장 소극적이지만 영업장 중 한두 곳이라도 매입해 시민들의 공간을 만들어 장기적 알박기를 하며 균열을 만들기 위한 방안도 나왔었지만, 결국 문제의식 자체가 없던 시청과 구청 등 행정기관의 무관심이 지금의 유천동을 만들었다"고 비판했다. 과거 성매매 집결지였던 유천동 감금·폭행, 그리고 인권 유린당하던 여성들만 일부 사라진 상태, 그리고 모텔의 휘황찬란한 불빛이 골목으로 가득 채우고 있는 공간으로 남아있다.
이현제 기자 guswp3@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위원회의 지원을 통해 작성됐습니다.
유등천변에서 자녀와 운동하는 아버지(왼쪽)와 산책하는 시민(앞), 그리고 그 뒤로 모텔이 영업을 알리는 조명을 비추고 있다.사진=이현제 기자 |
오는 23일이면 지난 2004년 성매매특별법 시행 이후 딱 17년째를 맞이하는 가운데 유성시내 일대는 늦은밤까지 유흥가의 네온사인이 화려하게 빛나며, 홍등가였던 유천동 일대는 철퇴를맞아 조명이꺼진지 오래돼 암흑가를 이루고 있다.사진=중도일보 DB |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