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순욱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KISTI) 책임연구원 |
현재 AI 산업 생태계는 막강한 자본력과 우수 인력을 보유한 소수의 미국 빅테크 기업들에 의해 주도되고 있다. 구글, 마이크로소프트, 아마존, 메타, 오픈AI와 같은 기업들은 방대한 데이터와 최첨단 컴퓨팅 자원을 바탕으로 AI 연구 개발을 선도하며, 글로벌 AI 시장을 장악하고 있다. 이들 빅테크에 의한 기술 집중, 데이터 독점, 인재 유출, 기술 종속 상황은 AI 주권과 국가 경쟁력 측면에서 각 국에게 심각한 도전이다. 이 때문에 AI 기술 강국인 중국은 물론이고 EU, 일본, 중동 국가들까지 정부가 적극적으로 나서 자국 브랜드 초거대 AI 모델 개발에 전력을 다하고 있다.
EU에서는 프랑스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고 있는 파리 소재 스타트업 '미스트랄 AI'이 AI 주권 운동을 선도하고 있다. 미스트랄 AI는 프랑스어, 스페인어, 독일어 등 EU 회원국 언어를 지원하는 오픈소스 LLM 개발을 통해 미국 오픈AI의 대항마로 나서고 있다. 2023년 4월 창업한 미스트랄 AI은 설립 반년 만에 유니콘 기업에 등극했으며, 현재 기업 가치는 60억 유로(약 8조 7000억 원) 이상으로 추산된다.
중동 국가 중 아랍에미리트(UAE)의 AI 주권 움직임이 활발하다. 2023년 11월 첨단기술연구위원회(Advanced Technology Research Council, ATRC) 산하 AI 기업인 'AI71'을 설립해 UAE 자체 LLM인 팰컨을 기반으로 의료, 교육, 법률 등 다양한 분야 AI 서비스를 출시할 예정이라고 한다. AI의 변병으로 여겨지던 UAE가 2022년 5월 ATRC 산하 기술혁신연구소(TII)에서 오픈소스 사전학습 LLM인 팰컨을 '오픈 LLM 리더보드' 정상에 올리면서 세계적인 주목을 받은 바 있다.
AI 경쟁 후발주자로 여겨지던 일본의 최근 일련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다. AI 스타트업 사카나AI는 3월에 일본어 전용 LLM을 출시했다. 8월에는 LLM을 사용해 아이디어 창출, 실험, 논문 작성 등의 복잡한 과학 연구를 자율적으로 수행하는 AI 에이전트인 'AI사이언티스트'를 공개했다. 2023년 7월에 설립된 사카나AI는 기업 가치 10억 달러(약 1조 3500억 원) 이상으로 추산된다. 창립 1년 만에 유니콘 기업으로 성장했다.
지난 7월 엔비디아는 일본 산업기술총합연구소(AIST)의 ABCI 3.0 슈퍼컴퓨터에 수천 개의 엔비디아 H200 GPU가 통합된다고 발표했다. 이번 AI 슈퍼컴퓨터 구축은 일본의 AI 주권과 연구 개발 역량을 강화하려는 일본의 노력임을 강조했다. AIST 오랜 지인을 통해 확인한 바에 의하면 6000여 개의 GPU가 장착된다고 한다. 이번 AIST와 엔비디아 협력은 지난해 엔비디아 CEO 젠슨 황이 일본을 방문해서 일본 총리를 비롯한 정재계 인사들을 만나 일본의 AI 주권과 미래에 대해서 논의한 이후 경제산업성(METI)과 교육과 연구 분야 협력이 꾸준히 이어진 결과다.
한국의 상황은 어떠한가? AI 주권 운동을 선도하는 네이버와 같은 IT 기업들이 자체 LLM 개발에 투자하고 있으며, 정부도 'AI 국가전략'을 통해 AI 기술 발전을 지원하고 있다. 하지만 국가 AI 주권과 연구개발 경쟁력을 강화할 수 있는 국가 슈퍼컴퓨터 6호기 구축이 지연되고 있는 점이 우려스럽다. 젠슨 황을 일본에 초청해서 일본 AI 주권과 미래에 대한 논의 후에 ABCI 3.0 구축을 추진한 METI와 AIST의 전략적 접근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AI 주권 경쟁 시대에 국가 AI 슈퍼컴퓨터 구축은 필수다. 한국도 일본처럼 주무 부처인 과기정통부와 담당 기관인 KISTI가 적극적으로 나서 엔비디아와 같은 칩 제조사와의 긴밀한 협력을 통해 슈퍼컴퓨터 6호기 구축과 국가 AI 연구개발 지원에 박차를 가해야 한다.
황순욱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KISTI) 책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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