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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동길의 문화예술 들춰보기]국태민안, 심사정의 <묵모란도>

김의화 기자

김의화 기자

  • 승인 2025-01-10 13:49
학창시절 민속학 수업의 일환으로 무속 조사에 참여한 일이 있다. 당굿으로 기억되는데 당집에서 1박 2일 동안 진행되었다. 지금같이 영상도구가 흔치 않았던 시절이라 소리 녹음만 했다. 법당, 마당, 부엌, 장독대 등을 돌며 행해지는 무가 또는 축원이 대부분이다.

제일 많이 등장하는 단어가 대길대덕(大吉大德), 국태민안(國泰民安)이었다. 대길대덕은 개인에 대한 기원으로, 무병장수(無病長壽), 자손번창(子孫繁昌)등과 함께 등장한다. 국태민안과 함께 시화연풍(時和年豊), 태평성대(太平聖代) 등도 많이 들린다. 믿음체계가 아닌 문화적, 의식적 측면을 살펴보자. 대길대덕은 기복 신앙적 측면이 있지만, 국태민안은 지향점이 다르다. 공동체 의식이다. 상부상조의 아름다운 정신이다. 개인보다 전체를 생각하는 대의와 배려의 미덕이다. 무속뿐 아니라 각종 기원제, 대부분의 세시풍속과 민속놀이에 빠짐없이 등장한다.

조선왕조실록 등 왕가의 문서에도 국태민안과 그와 유사한 말이 수없이 회자된다. 통치이념 역시 다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나라가 태평하고 백성이 편안한 것이 염원이요, 우리가 추구해온 이상향의 하나란 말이다.



국태민안은 행복의 기본 조건이다. 나라가 혼란하고 개인이 불안한데 그 무엇으로 행복이 가능해지랴. 인간적 고통 없이 만족감을 느끼며 살고 싶은 것은 불문가지다. 때문에 오늘날 국가들 역시 행복 추구의 권리를 법으로 보장하고 있다. 그를 행복 추구권이라 한다. 우리 헌법 제10조는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가 전하는 헌법재판소가 구체화한 내용은 이렇다. "행복추구권은 행복을 실현 내지 추구할 수 있는 권리로서, 자기가 추구하는 행복관념에 따라 생활하는 것도 포함하며, 쾌적한 환경 속에서 살 권리, 행복한 사회적·경제적 생활을 할 권리로서, 개개의 구체적 권리로는 생명권, 신체의 자유, 정신적·문화적·기술적 창조의 보호, 인간 고유의 개인적 영역에서의 권리(명예권·성명권·초상권 등), 자유로운 생활 영위, 생존권 등이다." 이러한 행복추구권 행사의 전제 조건이 국태민안이란 말이다.

국태민안의 기원 또는 상징하는 꽃으로 '모란'이 소환된다. 모란은 '화왕(花王)', '부귀화(富貴花)'로 불린다. 크고 풍성하며 아름다워서 부귀영화의 상징으로 보았기 때문이다. 소망과 희망의 표현인 한편 복과 덕으로 보기도 하였다. 왕가에서는 본래의 의미를 뛰어넘어 국태민안, 태평성대의 상징으로 병풍을 만들어 중요 의례에 사용하였다. 신분에 관계없이 활용되어, 원삼, 활옷 등의 의상과 침구, 병풍 등에 그려졌다.

그림은 현재 심사정(玄齋 沈師正, 1707 ~ 1769, 화가)의 <묵모란도>이다. 현재는 겸재 정선에게 그림을 배운 문인화가이다. 문인화가 이면서도 가문의 상황 때문에 그림에만 몰두한, 요즘말로 전업 작가이다. 남종화풍을 수용하여 자신만의 화풍을 구축하고 정착시켰다.

묵모란도
<묵모란도>, 심사정(1706~1769), 1767, 종이에 수묵, 136.4×58.2cm, 국립중앙박물관
모란 두 송이가 먼저 눈에 들어온다. 몰골 발묵법으로 그린 농담만으로 꽃잎에서 풍성함과 화사함이 느껴지는 빼어난 그림이다. 줄기와 잎을 따라 위쪽으로 향하면 봉오리가 하나 있다. 그 위쪽으로 목련 가지가 이어지고, 목련꽃 사이에서 새 한 마리가 노래하고 있다. 마치 태평가를 부르는 듯하다. 모란꽃송이 아래에는 바위와 난초가 있다. 세련되고 절제된 품격이 아름답게 다가온다. 오른편에 "정해년 겨울 먹으로 놀다. 현재(丁亥冬墨戱 玄齋)"란 관지가 있어, 말년인 1767년 겨울에 그렸음을 알 수 있다.

우리는 전통적으로 자연 또는 세상의 일부라는 인식이 강하다. 어울림이 아름다운 삶의 근간임을 체득하고 있다. 어디서고 국태민안을 기원하는 이유다. 혼자서 행복하기는 어렵다. 함께하면 행복이 배가된다. 그런데, 정치가 국태민안을 깨고 있다. 자리싸움에만 몰두하며 국민의 행복추구권을 짓밟고 있다. 어떻게 해야 국태민안이 될지, 모든 가치판단의 기준으로 삼기 바란다.

양동길/시인, 수필가

양동길
양동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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