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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요논단] 고향사랑기부금, '신뢰계약'이 지방의 미래를 바꾼다

고두환 사회적기업 (주)공감만세 대표이사

송익준 기자

송익준 기자

  • 승인 2025-12-21 17:00

신문게재 2025-12-22 18면

고두환
고두환 대표
고향사랑기부제가 도입 3년 만에 중대한 변곡점에 섰다. 2025년 12월 20일 기준, 누적 모금액은 이미 1,100억 원을 돌파하며 지난해 총액(879억 원)을 훌쩍 넘어섰다. 12월에 기부가 집중되는 특성상 올해는 비약적인 성장이 예상된다. 이 성과는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제도의 안착을 위해 분투해 온 지방자치단체 공직자들의 노고가 일구어낸 값진 결실이다.

당장 그 결실은 우리 주변에서 일어나고 있다. 누군가에게는 절실하지만 예산의 우선순위에서 늘 밀려나던 과제들이, 고향사랑기부제를 통해 현실이 되고 있다. 반드시 필요하지만 다수의 공감을 얻기 어려워 못했던 일들이 시민의 선택으로 집행 여부가 결정되고 그 일들은 우리 삶을 변화시키고 있다.



▲일본 사가현이 증명한 '민관 협력'의 가치

인지도가 낮아 '사가를 찾아라(사가오さがお)'라고 불리던 일본 규슈의 사가현이 어떻게 고향납세로 매년 100억 원 이상을 모으는 혁신의 아이콘이 되었을까. 그 중심에는 1형 당뇨 치료제 개발을 위해 민간 단체와 손을 잡은 한 공무원의 절실함이 있었다.

사가현은 행정이 모든 것을 독점하지 않았다. 대신 민간 전문 조직과 기부자를 잇는 '거버넌스'를 구축했다. 치료제 개발이라는 명확한 주제에 기부자들이 열광했고, 이는 누적 100억 원의 기금과 함께 연구기관들이 몰려드는 '메디컬 클러스터' 조성으로 이어졌다. 지자체의 진정성에 민간의 전문 기획력이 더해질 때, 기부금은 단순한 복지 예산을 넘어 지역의 산업 지형까지 바꾸는 '혁신 자본'이 된다는 것을 보여준 사례다.



▲성공의 열쇠는 '기부자의 효능감'

우리나라에서도 지자체의 혁신적인 시도들이 빛을 발하고 있다. 전남 영암군은 24년 만에 소아청소년과를 복원해 기부자들에게 효능감을 증명했고, 올해 지정기부 목표액을 조기에 달성하며 그 신뢰를 확인받았다. 강원 양구군 역시 버려지던 '못난이 사과'를 사회적기업과 연계해 가치 있는 답례품으로 재탄생시키며 지역 경제의 새로운 가능성을 열었다.

최근 일부 지역에서 기금 사용처를 두고 발생하는 논란이나 의회와의 갈등은 제도 안착 과정에서 겪는 성장통이다. 이는 지자체의 의지 부족이라기보다, 기존의 예산 문법과는 다른 '기부금'이라는 특수한 재원을 다루는 정교한 전략과 데이터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행정이 미처 돌볼 수 없는 영역을 발굴하고, 이를 기부자들이 공감할 수 있는 서사로 만들어내는 일은 지자체 혼자만의 힘으로는 벅찰 수 있다.



▲정쟁을 넘어 '신뢰 거버넌스'로의 전환

기부금은 지자체의 일반 예산을 메우는 쌈짓돈이 아니다. 그것은 기부자가 지역의 문제를 해결해 달라고 맡긴 '사회적 자본'이자 지자체와 기부자 사이의 '신뢰의 계약'이다.

최근 의회 심의 과정에서 기부금 사업이 삭감되거나 논란이 되는 지점은, 역설적으로 더 전문적이고 객관적인 사업 설계의 필요성을 시사한다. 사가현처럼 민간 플랫폼과 전문 조직이 협력하여 사업의 당위성과 지속가능성을 데이터로 입증한다면, 의회의 우려를 불식시키고 기부자의 선의를 지역의 필요에 정확히 닿게 할 수 있다.

▲집행의 가치와 기부자 열망 읽어내야

고향사랑기부금은 단순히 '많이 모으는 것'보다 '어떻게 가치 있게 쓰느냐'에서 그 진가가 결정된다. 지자체는 이제 숫자라는 성과를 넘어, 집행의 가치와 기부자의 열망을 읽어내는 정교한 파트너십을 고민해야 한다.

민간의 창의성과 행정의 진정성이 결합할 때, 고향사랑기부금은 지역의 난제를 해결하고 소멸의 위기를 극복하는 가장 강력한 '혁신의 마중물'이 될 것이다. 지자체와 민간이 함께 그려나가는 이 신뢰의 계약이 대한민국 지방자치의 새로운 미래를 열어젖히길 기대한다.

/고두환 사회적기업 (주)공감만세 대표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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