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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은석 목원대 교수·국제디지털자산위원회 이사장 |
이름이 바뀐 이 지상 7층 건물은 이제 더 이상 수백 개의 시선을 하나의 스크린에 모으는 단편적인 콘텐츠를 제공하지 않는다. 층마다 서로 다른 공간을 켜켜이 쌓아 올려 어디든 갈 수 있고, 모든 것에 시선을 둘 수 있는 예측 불가능한 '체험의 미로'를 제공한다. 이머시브(Immersive), 즉 관객이 완전히 몰입하는 방식의 공연으로 세계적 명성을 얻은 '슬립 노 모어(Sleep No More)'에 대한 이야기다.
공연은 시작부터 관객을 방심하게 두지 않는다. 입장을 위해 흰색 가면을 쓰고, 스마트폰이 밀봉된 가방을 든 관객들은 안내원, 즉 배우를 따라 엘리베이터에 오른다. 얼마 지나지 않아 문이 열리고, 안내원은 관객 중 한 명의 손을 잡아 밖으로 이끌더니 곧바로 엘리베이터 문을 닫고 떠난다. 함께 온 지인과도, 익숙한 세계와도 단절된 채 낯선 공간에 홀로 던져지는 순간이다. 이렇게 급작스럽고 다소 불친절한 방식으로 몰입은 시작된다.
눈앞에 펼쳐진 공간은 숲이었다. 어둑한 조명 아래, 실제 숲처럼 정교하게 구현된 공간을 가면을 쓴 관객들이 이리저리 떠돌고 있다. 무엇을 해야 할지 알 수 없기에, 그저 공간을 탐색하며 걷게 된다. 숲의 끝자락에는 작은 오두막이 있고, 그 주변을 둘러보던 중 한 여자가 비틀거리며 다가온다. 배우다. 여자는 열쇠로 문을 열고 오두막 안으로 들어간다. 관객들은 일정한 거리를 두고 그 장면을 지켜본다. 곧 여자가 급히 오두막을 나서 어딘가로 향하면, 관객 역시 가면의 무리에 섞여 그 뒤를 따라 움직이게 된다. 여자는 계단을 오르내리며 여러 공간을 넘나들고, 다른 인물들과 만나 사건에 개입한다.
우리는 그동안 영화나 연극을 감상할 때, 작품을 전지적으로 내려다보는, 이른바 '신의 시점'에 익숙해져 있었다. 등장인물의 감정과 행동, 시간과 공간에서 벌어지는 사건을 총체적으로 파악하며 원인과 결과를 이해할 수 있었다. 그러나 현실의 삶은 다르다. 우리는 내 시야 밖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모른 채, 눈앞의 상황만을 붙잡고 하루를 살아간다. 누가 주인공인지, 무엇이 원인이고 결과인지, 지금 이 순간에는 알 수 없다.
이머시브 공연에서 관객은 바로 이러한 인간의 시점에 놓인다. 관객은 주어진 상황의 일부가 되어, 눈앞에 펼쳐지는 맥락만을 더듬으며 움직인다. 이 경험은 불편하고 어렵지만, 그렇기에 더욱 강렬하다.
매키탄 호텔에서는 약 20여 명의 배우가 각자 맡은 역할과 동선을 따라, 정해진 러닝타임 안에서 서사를 루프 구조로 반복해 선보인다. 관객은 7층 건물 전체를 자유롭게 이동하며, 자신만의 경험을 통해 작품을 이해해야 한다. 장면과 장면은 명확하게 연결되지 않은 채 제시되고, 관객은 머릿속에 물음표를 안은 채 서사의 조각을 맞추어 나간다. 시간이 지나 동일한 상황이 반복된다는 사실을 알아차릴 즈음이면 공연은 마무리에 가까워지고, 관객의 머릿속에는 자신이 보지 못한 장면에 대한 또 다른 물음표가 남는다. 공연이 끝난 뒤 가면을 벗고 지인과 경험을 나누는 순간, 아쉬움과 궁금증은 오히려 더 커진다.
이 작품은 현재 중국 상하이와 한국 충무로에서 이어지고 있으며, 충무로 공연은 약 14년간 뉴욕에서 이어진 오리지널 공연을 기반으로 한 공식 라이선스 프로덕션이다.
장자의 '호접지몽'은 내가 나비가 되어 꿈을 꾸는 것인지, 나비가 내가 되어 꿈을 꾸는 것인지 분간할 수 없는 상태를 의미한다. '슬립 노 모어'는 관객이 발을 들이는 순간, 또 다른 현실에 들어섰다고 인식하도록 세심하게 설계된 공간을 마련한다. 그리고 그 공간을 떠도는 동안 관객은 하나의 꿈속을 헤매게 된다. 강렬한 꿈을 쉽게 잊지 못하는 사람들은 결국 N차 관람을 위해 다시 매키탄 호텔로 발걸음을 옮긴다. 원은석 목원대 교수.국제디지털자산위원회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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