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운동가 출신인 안사영 선생은 광복 후 17년간 대전형무소 의무과장으로 재직하며 소외된 수용자들의 건강과 위생을 위해 헌신했습니다. 대전교도소는 고인의 공로를 기리기 위해 '교도소에 사랑을 베풀었다'는 의미의 호인 '혜옥(惠獄)'을 헌정하는 추호식을 개최하며 그의 희생정신을 재조명했습니다. 이에 대전시의사회도 고인의 뜻을 이어받아 대전교도소와 업무협약을 체결하고 교정시설 내 의료 공백 해소와 환경 개선을 위해 적극 협력하기로 약속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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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독립운동가이면서 광복 직후 대전형무소에서 수용자를 살핀 의사 안사영 선생의 뜻을 기억하기 위해 대전교도소와 대전시의사회 후배들이 교정의료 발전 협약을 맺었다. (사진=임병안 기자) |
대전교도소는 4월 6일 청사 2층 대회의실에서 안사영 대전형무소 의무과장의 추호식을 개최했다. 이날 김재술 대전교도소장과 전병구 의료과장, 정식영 총무과장, 노순천 보안과장 등이 참석하고 임정혁 대전시의사회장과 장남식 대전시의사회 고문 그리고 심정임 필한방병원 정신의학과 전문의가 함께 했다.
안사영 선생은 광복 직후 1946년부터 1962년까지 대전형무소 수용자들의 건강 관리, 질병 치료, 보건 위생 업무를 전담하는 의사이면서 의무과장이었다. 공주 영명학교(1회)에서 수학하고 서울에서 세브란스연합 의학전문학교를 1917년 졸업한 청년의사로서, 병원을 차리기보다 가장 낮고 존중받지 못하던 당시 형무소 수형자를 돌보는 길을 걸었다. 그는 대전형무소 의무과장으로 지내는 동안 '대전 중촌동 1번지'에 거주했는데, 이 역시 대전형무소 내에 있었던 숙소로 파악됐다.
민족문제연구소에 따르면, 그는 1919년 초 국권회복의 뜻을 품고 중국 길림성의 서간도로 망명해 신흥무관학교 의무감을 지낸 독립운동가다. 그곳에서는 독립운동을 위해 이주한 수많은 조선청년들을 진료했으며 이때 총상을 입은 이범석 장군을 치료했다. 안사영 선생은 길림성의 독립운동 거점이었던 삼원보 항일운동단체인 '독립단'의 검찰(檢察)을 지냈고 1920년께 일본 경찰에 검거돼 평양형무소에서 2년간 복역한 것으로 전해진다.
대전교도소는 독립운동가이자 교정인으로 봉사한 안사영 선생의 생애를 재조명하며 그가 교도소에 사랑을 베풀었다는 의미에서 '혜옥(惠獄)'이라는 호를 지어 선사했다.
김재술 소장은 "고인은 단순한 의사를 넘어 수용자들의 마음까지 치유하려 노력했던 참된 공직자였다"라며 "그가 남긴 헌신과 희생정신은 대전교도소 모든 직원의 가슴속에 영원히 기억될 것"이라고 애도의 뜻을 표했다.
이어 대전시의사회도 의사로서 광복 직후 열악한 형무소 의료처우에 봉사한 안사영 선생의 뜻을 이어받아 교정시설 내 의료 공백 해소에 힘을 보태기로 약속했다. 시의사회는 이날 추호식 직후 대전교도소와 업무협약을 맺고 교도소에 요구되는 의료인 충원과 장비 보강에 협력하기로 했다.
임정혁 시의사회장은 "안사영 의무과장의 숭고한 희생이 헛되지 않도록, 지역 의료인들이 힘을 보태 교도소 내 의료 환경이 실질적으로 개선될 수 있도록 적극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임병안 기자 victorylb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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