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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있는 여행] 104-부여 진달래꽃 피면 '우어회무침'도 제맛이 난다.

김영복 식생활문화연구가

김지윤 기자

김지윤 기자

  • 승인 2026-04-13 16:45

신문게재 2026-04-14 10면

필자는 4월 초 부여 옥녀봉을 찾아 만개한 진달래를 감상하며, 옛 문인들이 시를 읊고 화전을 즐기던 고유의 봄 풍경과 역사적 정취를 회상했습니다. 이어 조선시대 왕실 진상품이자 '충어'로 불리는 제철 웅어를 맛보기 위해 세도면 우어회 거리를 방문하여 웅어의 유래와 지역별 식문화를 고찰했습니다. 미나리와 함께 새콤달콤하게 무쳐낸 우어회는 봄의 미각을 깨우는 별미로, 이번 여정은 자연의 아름다움과 전통의 맛이 어우러진 풍성한 봄맞이 여행이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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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여 세도면 청포직영식당. (사진= 김영복 연구가)
지난 4월4일 부여 옥산면 '옥녀봉진달래꽃십리길축제'가 있다 해서 제철을 맞은 세도면 '우어회' 맛을 볼 겸 부여를 향해 길을 떠났다.

옥산면에 다다르니 축제 날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썰렁했다.

잘 못 왔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축제장이나 진달래길 군락지에 대한 안내가 전혀 없었다.

그래도 기왕에 왔으니 하는 마음으로 지나가는 사람에게 우선 옥녀봉이 어디냐고 길을 물어 차를 타고 조금 더 가니 옥산 저수지가 눈에 들어온다.

저수지 주변 군데군데 낚시를 하는 강태공들은 보이는데, 진달래가 보이지 않는다.

마을로 들어 가는 길가에 다행히'옥녀봉 등산로'라는 작은 이정표가 보인다.

마을에 들어서자 450여년이 된 노거수(老巨樹)가 지킴이처럼 우뚝 서 있다.

마을 길에 오래된 벚꽃 나무 한 그루에 벚꽃이 활짝 피었다.

진달래와 벚꽃은 개화 동기라 할 정도로 비슷한 시기에 꽃이 핀다.

높은 산길에 오르니 마치 초겨울이듯 매섭고 강한 바람이 불어온다.

그렇지만 진달래 십리 길이 눈에 들어오니 발걸음을 재촉하게 된다. 노욕(老慾)일까 진달래 꽃길을 옥녀봉까지 반 정도 가고 있는데, 젊은이 한 쌍이 산을 내려오며 "어르신 이제 내려가시는 게 좋을 것 같아요. 날도 저물었고 옥녀봉까지는 한 참은 더 가야 합니다."라고 한다. 그래서 잠시 생각에 잠기다가 여기서 멈추기로 했다. 진달래는 핸드폰 카메라에 담기 충분했다.

진달래꽃을 두견화(杜鵑花) 또는 산석류(山石榴)라고도 하는데, 준말로 산류(山榴)라고도 말한다.

조선 후기 문신이며 학자인 무명자(無名子) 윤기(1741~1826)는 영재(穎才)라 불릴만큼 학문이 뛰어난 사람이다. 나이 여덟 살 되던 해인 (영조24) 1748년 봄 '진달래[杜鵑花]'라는 시를 지었다.

"薰風麗日氣淸和(훈풍여일기청화)훈풍 불고 햇살 맑아 날씨가 화창하니 起拓南窓玩物華(기척남창완물화)일어나 남창(南窓) 열고 경치를 감상하네 一夜雨聲春滿眼(일야우성춘만안)간밤 내내 비 듣더니 봄빛이 눈에 가득 山紅錦杜鵑花(요산홍금두견화)산을 두른 붉은 비단 저건 바로 진달래?"

여덟살 어린이가 썼다고 하기에는 믿기지 않을 정도의 시(詩)다. 무명자(無名子)는 비 온 뒤 따스한 바람 부는 화창한 봄날 아침 창문 열고 바라본 경치를 읊었다. 산에 핀 진달래를 '산을 두른 붉은 비단'에 빗대었는데, 이처럼 만발한 꽃을 비단에 빗대는 것은 옛 문인들이 즐겨 사용했던 수사(修辭)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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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여 세도면 청포직영식당. (사진= 김영복 연구가)
한편 무명자(無名子) 윤기는 봄이 되면 진달래 붉은 꽃을 따다가 화전(花煎)을 부쳐 먹으며 시(詩)를 지었다.

"松濤巖瀑滿山(송도암폭만산수)솔바람과 폭포 소리 온 산에 가득하고 噴沫空中玉雪浮(분말공중옥설부)물보라가 허공에 눈처럼 날리누나 却摘紅花盈素(각적홍화영소거)붉은 꽃 따 담아 흰 광주리 가득하자 更將白粉和淸油(갱장백분화청유)쌀가루 반죽하고 맑은 기름 두르네 細吹殘焰初開鼎(세취잔염초개정)남은 불씨 살살 불고 드디어 솥을 열어 團作濃香入喉(단작농향조입후)짙은 향의 둥근 화전 얼른 목에 삼키누나 此日勝遊猶有恨(차일승유유유한)오늘 유람 훌륭해도 아쉬움이 남으니 柰無從事到靑酒(나무종사도청주)흥취 돋울 좋은 술이 없음을 어이하랴"?

이처럼 옛 선비들은 진달래를 보면 삼월삼짇날이 되면 시절음식으로 진달래 화전을 해 먹었으며, 이 화전은 웃기떡으로 쓰기도 했다.

조선후기 문신이었던 김경선(金景善, 1788~1853)이도 1832년 동지겸사은사(冬至兼謝恩使行)의 서장관(書狀官)으로 참여하여 청나라를 방문했을 때인 순조33 (1833) 3월 10일 청나라 안시성(安市城)의 산봉우리인 '고장대(古將臺)'를 올랐다.

그는 '바위 서쪽에 숲이 우거진 경치 좋은 절벽이 있는데? 진달래꽃이 막 만발하였다.' 고 썼다. 그러면서 '주방(廚房)이 화전(花煎)을 부쳐서 올리는데, 은연중 고향의 풍미(風味)가 있어 기뻤다.' 고 했다.-『연원직지(燕轅直指)』제5권 회정록(回程錄)-

옛 선비들은 진달래화전을 대하면 외국에 나가서도 고향의 풍미가 떠 오를만큼 우리의 영혼을 감싸주는 솔푸드(soul food) 였다.

그러나 진달래화전의 멋과 맛이 깃든 풍미도 예전 같지 않고 지금쯤 부여에 가면 '우어회무침'이 제맛을 내는 계절이다.

필자는 5시30분 쯤에 산에서 내려와 세도면 사무소 앞 우어회 거리로 갔다.

이곳 작은 면소재지 길가에 서너집의 우어회 집들이 있다.

'우어'하면 어떤 고기인지 잘 모르는 사람들이 있다.

'우어'는 멸칫과에 속하는 바닷물고기인 웅어의 사투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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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허 회. (사진= 김영복 연구가)
강화에서는 '깨나리', 해주에서는 '차나리'라고도 하며, 부산지방에서는 낙동강 하구의 갈대 숲을 헤치며 산다는 뜻의 '위어(葦魚)'로도 불리고, 전라도 신안, 무안, 영광 등에서 '웅에', '우어', 충청도 바닷가에서는 '우여', '위여', '우어' 등으로 불린다. 싱에라고도 하는데, 비슷한 어류 중에 '싱어'가 있어 이름이 헷갈린다. 이외에도 '난서' '강다리'라는 이름도 갖고 있다.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는 함경도와 강원도를 제외한 전 도에 웅어가 산출되는 것으로 되어 있다.

지금도 '우어'는 주로 한강, 금강, 낙동강, 영산강 등지에서 산다.

특히 한강의'우어'는 고양시 능곡역 앞이 유명한데 옛날에는 조선시대에는 웅어를 잡아 진상하던 위어소(葦魚所)라는 곳이 한강하류의 고양에 있었다.

웅어는『세종실록(世宗實錄)』「지리지(地理志)」경기도(京畿道) 양천현(陽川縣)의 토산조에는 양화도(楊花渡)에서 웅어가 나는 것으로 되어 있고 그 밖의 지방에도 웅어가 토산에 들어 있는 곳이 있다.

조선후기 실학자 영재 유득공(柳得恭:1748~1807)이 쓴 『경도잡지(京都雜誌)』에 보면 "제어의 속된 이름을 위어(葦魚)라고 한다. 한강의 하류 지역인 행주에서 나온다. 늦은 봄이나 초여름에 사옹원(司甕院)에서 관원들이 그물로 잡아 진상한다. 민간에서는 생선장수들이 거리를 돌아다니면서 웅어를 사라고 소리친다. 라 했고,"웅어는 횟감으로 좋다"고 적혀 있다. 4~5월이면 궁중요리를 주관하는 사옹원 관리들이 행주나루에 위어소(葦魚所)를 만들어 그 곳에 상주하면서 행주나루에서 위어 잡는 어부들에게 위어를 잡게 하여 궁으로 보내는데, 그 위세와 횡포가 심했다고 한다. 위어소에 나온 관리들은 위어를 잡아 왕에게 진상하고 자신과 연줄이 닿는 재상들에게 상납하는 등 그 행패가 심했다고 한다.

조선후기 까지만 해도 행주에서는 봄에서 초여름까지 이 웅어가 많이 잡혀 궁중의 진상품은 물론 고기장수들이 서울 장안을 돌아다니면서 "웅어 사려!"라고 소리치며 장사를 했다고 한다.

소설가 박종화(朴鍾和 1901~1981)씨는 "웅어는 한강 중에도 꼭 행주산성 부근에서만 난다. 5월 단오 상치 쌈을 먹을 때 웅어가 고조 된다. 이것도 서울 사람만 얻어먹는 맛의 하나다. "라고 했다.

19세기 전반 정약전(丁若銓 1758~1816)과 이청(1792~1861)이 흑산도를 포함하여 서남해에 서식하는 생물을 연구한 최초의 수산학서이자 해양생물학서『자산어보(玆山魚譜)』에는 웅어를 도어(澾魚)라 하고 속명을 위어라 하였으며 빛깔이 희고 맛이 좋아 회의 상품이라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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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허 회. (사진= 김영복 연구가)
낙동강은 부산 하단에 웅어식당이 있는데, 봄이면 '웅어축제'를 열기도 한다.

영산강에서는 웅어가 3~5월 강을 거슬러 올라와 구진포(九津浦) 즈음 이르게 되고 주민들은 웅어를 잡아 나주읍성 동문 안의 미나리를 캐서 새콤달콤 묻혀 먹는데, 뼈도 연하고 고소하니 맛이 좋다. 고 했다.

그러나 지금은 금강 하구 부여를 비롯해 논산 강경, 서천 익산 등지에 봄이면 우어회를 하는 집들이 많다.

금강의 웅어가 중국에서는 최고급 생선으로 평가받아서 1인분에 20만원 가까이 하기도 한다. 특히 봄철 금강 하구에서 잡히는 웅어는 중국으로 보내는 추세라고 한다.

백제의 고도를 끼고 흐르는 금강에서는 '우어'를'충어(忠魚)'라 했다고 한다.

당(唐)나라 소정방(蘇定方)이 백제와 싸울 때 백마강에서 웅어를 찾았지만 한 마리도 잡지 못한다. 그러자 그는 "고기마저 의리를 지키려고 모두 사라졌구나"라며 그 고기를 충어라 불렀다고 한다.

백제고도 부여군 부여읍이나 세도면에 가면 '우어회'를 하는 집들이 종종 눈에 띈다.

특히 금강 하구에 위치한 세도면 소재지에는 '우어회무침'이 유명한 곳인데, 그 중에서도 '청포직영식당'은 '우어회무침'맛집으로 소문난 집이다. 부여읍내 관광지나 국립부여박물관에서 온다면 차로 30분 정도 걸리지만 이 정도의 시간을 투자해 찾아와도 후회되지 않는 맛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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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허 회. (사진= 김영복 연구가)
금강하구와 가까운 이 집은 잡은'우어'를 직접 손질하여 미나리 줄기와 오이를 넣고 양념에 무친 회무침이다. 이 집 메뉴에 '우어회'라고 써 있지만 정확히 말해서 '우어회무침'이다.

큰 대접에 나오는 미역국은 압권이었다. 이 정도이면 밥 한 그릇 시키어 먹고 가도 될법하다.

조금 있으니 뼈째 자른 '우어'를 미나리와 오이 등 각종 채소를 넣고 새콤달콤하게 무친 '우어회'가 둘이 먹기는 벅찰 정도로 양이 많이 나온다. 매운 것을 잘 먹지 않는 필자로서는 약간 매운 듯 하지만 날 김에 싸 먹으니 미나리향이 제법 입안에 봄 맛을 느끼게 한다.

'우어회'를 먹다 남으면 공기밥을 시켜 먹을 수도 있고 참기름을 넣고 볶음을 해 그 위에다 김 가루를 올린 볶음밥을 해 주기 한다.

볶음밥을 시킨 옆 사람에게 양해를 구하고 다행히 사진 한 컷 찍고, 필자는 다 먹지 못하고 남은 '우어회'를 포장을 해 집에 와 비빔밥을 해 먹었다.

오늘도 성공적인 맛있는 여행이었다.

김영복 식생활문화연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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