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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성일이 만난 사람]임운석 씨알보석 대표

대전에서 50년동안 보석 가게 운영
가수 ‘운석’으로 활동 중
지역사회에서 다양한 사회공헌 활동
'운석'이란 예명으로 가수로 데뷔해 봉사활동 중

한성일 기자

한성일 기자

  • 승인 2026-05-03 21:55

신문게재 2026-05-04 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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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운석 씨알보석 대표는 대전에서 50년 동안 보석상을 운영해온 시계 보석 금은방계의 원조 중 원조로 그의 대를 이은 아들 임성근 씨알금거래소 대표와 함께 서구 둔산남로 174 씨알보석에서 환한 미소로 손님들을 맞고 있다. 친절 서비스 마인드가 몸에 밴 임운석 대표와 임성근 대표 부자는 오시는 손님들마다 얼마나 친절하고 상냥하게 상담을 해주는지 한번 온 손님들은 모두 단골 고객이 된다. 임운석 대표는 ‘운석’이라는 예명으로 가수 활동을 할 정도로 노래 실력이 빼어나다. 노래 봉사활동도 많이 다니고 있는 임운석 대표를 서구 탄방동 씨알보석에서 만나 지금까지 살아온 인생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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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 대표님, ‘박윤조와 함께하는 힐링버스데이’에서 뵙게 되었는데요. 한 달에 한번 씩 힐링버스데이에 오실 때마다 버스에 탄 모든 사람들에게 떡을 선물해주시잖아요. 보통 정성이 아니신 듯 합니다. 인정이 매우 많아 보이시고, 모든 사람들에게 워낙 살갑고 친절하셔서 인상적이었습니다. 그리고 버스 안에서 들려주신 조영남의 모란동백 노래도 너무너무 잘하셔서 깜짝 놀랐답니다. 지금까지 살아오신 인생 이야기가 궁금합니다.



▲저는 1958년 공주 태화산 분지 동해동 마곡사에서 출생했습니다. 고추와 포도, 딸기 농사를 지으신 아버님의 8남매 중 막내로 태어났지요. 청년 시절 서울로 상경해 제 형님은 시계 기사, 저는 금 기사 일을 배웠습니다. 다시 대전으로 내려와 대화공단(구 대전공단)에서 씨알사를 운영했습니다. 그런데 너무 외지이고 열악해 금은방을 하기엔 적합하지 않은 곳이었습니다. 구미나 인천 공단은 금은시계방이 들어가면 자리를 잡던 시기였는데 대화공단은 그렇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다시 중앙통으로 나왔지요. 제가 기술이 좋아서 손님이 많았습니다. 정남프로덕션에서 많이 도와주셔서 홍보도 많이 했습니다. 정남 사장님 소개로 탤런트 한인수 씨가 저희 업체의 모델을 해주셨죠. 손님들에게 정말 사랑을 많이 받던 시절이었습니다.

87년 은행동에서 93년 중동 혜민약국 자리로 옮겼고 97년 IMF를 맞아 귀금속 매출이 뚝 떨어졌습니다. 그때 한복집이 많았던 둔산으로 오게 돼 지금 이 자리에서 30년째를 맞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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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때 당시 TJB 이중기 사장님과 김상기 기자 등과 함께 금모으기 운동을 제안하게 됐는데 전국에 들불처럼 번져나가기 시작했죠. 이 때 당시 금을 싼값에 내놔 억울한 분들도 계실텐데 전 국민이 힘을 모아 엄청난 경제 효과를 거두게 됐고 우리나라가 제2의 경제 도약을 할 수 있는 계기가 됐죠. 이 때 당시 금 모으기에 협조해주신 국민들이 너무나 감사했습니다. 그리고 전 국민 캠페인이 될 수 있었던 것은 언론 덕분입니다. 언론이 살아야 인류가 생존합니다. 언론의 빛과 소금 역할이 매우 중요합니다. 어둠은 낮을 못 이깁니다. 언론의 펜 하나가 인류를 살리고 죽입니다.



저는 일론 머스크가 우주 로켓을 만들고 로봇 AI 세상의 첨병에 서는 모습을 보면서 저 사람이 현존하는 예수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답니다. 앞으로 우리 인류의 미래는 어떻게 될까 많은 생각을 하는데요. 평균 수명은 늘고 정부에서 주는 기본소득 연금도 늘고 있죠. 어떻게 긴긴 인생을 보람있게 살아갈 수 있을까 생각을 많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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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30년 전에 했던 주례 약속을 지켜 제 아들 주례를 서주신 강도묵 회장님과 같이 라이온스 활동하면서 친해졌는데요. 우리는 2002년 평송장학회 창립멤버입니다. 어려운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주고 있지요. 이웃사랑하면서 인간의 도리를 하고 사는 모습에 큰 존경심을 갖고 있습니다. 강 회장님이 주례 서주신 큰 아들이 대를 이어주어서 감사하죠. 배재대 정책교육대학원에서 1기 회장을 했는데 이때 만난 강 회장님을 비롯한 친구들과 지금까지 끈끈한 우정을 이어오고 있습니다. 작은 아들은 한화건설 다니다가 삼성물산으로 자리를 옮겨 잘 자리잡고 있습니다. 두 아들에게 정약용의 <목민심서>를 많이 읽도록 했습니다. 둘 다 인성이 좋아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내 가족들에게는 목민심서를 늘 가까이 하라고 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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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가톨릭노동청년회(JOC) 활동에 관심이 많으시다지요?



▲예. 저는 77년 서울 돈암동성당에서 영세를 받았는데요. 제가 가톨릭 신자이다 보니 자연스럽게 관심을 갖게 됐죠. 1958년 JOC를 창설한 조셉 까르딘 추기경의 방한에 맞춰 설립된 한국 가톨릭노동청년회는 1968년 강화도 심도직물 사태를 계기로 노동운동에 참여하면서 사회와 교회의 주목을 받았습니다. 열악한 노동현장에서 노동자의 권익 향상과 제도 개선을 위해 활발히 활동한 시기에 JOC정신을 살며 이끌어온 가톨릭노동청년회 회원들의 삶을 통해 우리 시대의 복음 정신을 다시 한번 되짚어보게 됩니다.

땀흘려 일한 기쁨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습니다. 노동의 신성성을 강조하게 되죠. 지금이 오히려 JOC정신이 더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이 땅에서 설움을 받는 외국인 노동자들, 그리고 갈수록 척박해지는 노동환경에서의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힘을 얻고 희망을 가질 수 있도록 함께하는 노동사목, 노동운동, 그리고 JOC운동이 펼쳐졌으면 좋겠어요. JOC운동은 평신도운동입니다. 교회는 이 땅에 오신 노동자 예수님이 아파하는 모습을 볼 수 있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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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이들이 청소년기에 노동현장에 들어와 청년의 꿈을 생각할 겨를도 없이 장시간 노동과 잔업에 시달리고, 인생을 설계하기는커녕 바깥 세상을 바라볼 여유조차 없이 하루하루 지친 삶을 보내게 되죠.

JOC 교육을 통해 '신앙은 말이 아니라 행동으로 실천하는 것'이라는 것을 배우게 됐습니다. 노동자를 착취하고 억압하는 것을 교회가 나서 해결해야 하며,그 안에서 하느님이 어떻게 활동하고 계신가를 배웠죠. JOC는 노동계의 복음화, 노동자들의 인간성숙을 위한 것입니다. 인간으로서의 자기 존재감을 인식하고, 사회일원으로서의 정당성을 찾는 것이기도 합니다.

내가 변화되고, 내 주위가 변화하고, 또 직장이 변화하면서 사회가 변화되는 것, 이것이 바로 복음이 아닐까 생각했어요. 노동현장에서 복음을 전하는 것은 노동자들이 인간다운 삶을 살 수 있게 변화시켜 주는 것이며, 그것이 JOC의 참가치입니다. 노동자들의 내면을 변화시키고 양성시키는 JOC 본연의 모습을 생각해봅니다. JOC운동은 노동운동이지만 곧 생활운동이기도 합니다.

한국 가톨릭노동청년회를 통해 노동자들의 삶을 변화시킬 동력을 만들어낼 수 있기를 희망합니다. 그런 면에서 노동자들의 어려움을 깊이 깨닫고 노동이 존중받는 나라를 강조하는 이재명 대통령은 하늘이 낸 사람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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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님이 보석계에서 일하시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청년시절 서울 종로에서 4년 동안 일하면서 금호동 보석당에서 금 기술일을 배웠습니다. 제게 손재주가 있었죠. 세공기술이 뛰어나 인정을 많이 받았습니다. 기술을 다 배운 뒤 부모님을 모시고 살려고 77년 대전으로 내려와 앞으로의 발전 가능성을 보고 대화공단에 자리를 잡았는데 너무 열악했습니다. 그 뒤로 중동과 은행동에서 씨알보석을 운영하다가 30년 전 이 곳 탄방동으로 왔지요. 50년 동안 금은보석 일을 해오면서 우여곡절이 참 많았습니다. CCTV가 없던 시절 강도도 여러 차례 당했고 같이 일하던 분이 강도에 의해 많이 다치기도 했습니다. 98년 강도에 의해 전기충격을 받고 그때 당시 시가 3억 원에 달하는 금품을 강탈당했는데 지금으로 따지면 30억에서 40억 가치는 될 것입니다. 강도는 잡혔지만 도난물품은 회수하지 못했습니다. 그때 당시는 말 못할 부정부패 비리가 무궁무진 많았던 시절이었습니다. 지금의 대한민국은 얼마나 감사한지 모르겠습니다.

중앙통에서 10년, 다른 곳에서 10년, 그리고 지금 현재 이 곳 탄방동에서 30년 동안 이 업무에 종사하면서 MBC,TJB 방송 자막광고도 많이 했었네요. 지금은 현역에 있는 금은방 보석당이 많이 사라졌죠. 저는 마진이 적게 나도 고객님들 입장에서 서비스해드리는 게 참 기쁘고 보람도 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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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알보석이라는 상호는 어떻게 탄생한 건지요.

▲제가 청년 시절 서울에 살 때 살던 자취집이 동작동 국립묘지 근처 흑석동이었는데 버스를 타고 한강을 건너면서 물속에 풀이 자라있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씨앗이 붙어 있으니 어디든 사는구나 싶었죠. 씨앗은 모든 것의 시작이라는 생각에 씨알이라는 이름을 쓰게 됐습니다. 그전에 함석헌 선생의 <씨알의 소리> 가 있어서 낯설지 않았죠. 사람이 인생을 살면서 여러 아픔도 겪게 마련인데 저에게도 그런 아픔이 3차례 있었습니다. IMF 때 보증을 많이 서서 제 아내가 고생을 많이 했습니다. 아내는 5년 전 하늘나라로 이사 갔지요. 엄지와 검지 손가락에 은반지를 끼면 건강이 좋아지는데 아내에게 은반지를 끼워주지 못했던 게 많이 후회스럽습니다. 지금도 아내를 생각하면 너무 미안하고 아들에게도 미안합니다. 제가 손가락에 아토피가 심했는데 엄지와 검지에 은반지를 끼면서 아토피가 사라졌습니다. 제가 LA에서 비행기를 타고 오던 중 꿈에 현몽을 꿨는데 수지침과 사상의학과 풍수 공부를 오래 하면서 깨닫게 되었지요. 제가 편도가 약했고 기관지가 약해 수지침과 뜸을 뜨면서 건강공부를 하다 보니 알게 된 겁니다. 큰 아들도 어릴 때 백선이 심했는데 간과 심장을 보해주는 은반지를 끼면서 좋아졌습니다. 엄지와 검지에 은반지를 끼고 간과 심장에 도움을 받으시길 바랍니다. 약지와 중지, 새끼 손가락엔 금반지를 끼어서 몸을 건강히 보호하시기 바랍니다. 오링테스트를 해보면 금방 알 수 있습니다.

수많은 희로애락을 겪으면서 우리 씨알보석만의 영업방식으로 지금까지 살아남았습니다. 저렴하고 친절하게 해드리는 것이 비법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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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님의 재테크론을 들려주실까요?

▲돈의 가치는 계속 떨어지니까 금과 은에 투자하시는 게 재테크 측면에서 매우 유리하다고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코인은 안 믿습니다. 어두운 돈은 결국 다 토해내게 돼 있다는 게 제 생활신조입니다. 모든 일은 사필귀정입니다. 금은 앞으로 좀 더 많이 오를 거라 봅니다. 앞으로 1돈에 300만 원 대까지 오늘 가능성이 있고, 더 오를 수도 있다고 봅니다. 금 1KG이 500만 원인데 앞으로 3년 안에 2000만 원대까지 오늘 가능성이 있다고 봅니다. 금과 은의 값이 올라서가 아니라 화폐가치가 금의 가치에 비해 떨어지기 때문입니다. 자동차 운전 보험 들듯이 금과 은을 보험 형식으로 들어 재정을 튼튼히 하는 것을 권합니다. 자기 자산의 10~30%는 금과 은으로 보유하는 게 좋다고 봅니다. 투자는 토지 10%, 주식 10%, 나머지 80%는 금과 은으로 하는 것을 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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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님은 가수로 데뷔하셔서 활동 중이신데요. 가수 이야기를 들려주실까요?

▲예, 제가 목소리가 좋다는 이야기를 많이 듣는데요. 어릴 때부터 노래 부르기를 좋아했습니다. 대한가수협회에 등록된 가수입니다. 주말엔 오전 10시부터 오후 4시까지 보문산 숲속 공연장에서 버스킹을 하기도 하고, 초청해주시는 곳이라면 어디든 가서 노래를 불러드리지요. 충남대 평생교육원에 가서 노래지도사 자격증을 따면서 노래를 본격적으로 부르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저는 골프와 당구 등을 못합니다. 고객님들을 직접 상대하는 일을 하다 보니 그럴 시간이 없었지요. 대신 취미 생활을 바쁜 와중에도 할 수 있는 노래로 하게 된 겁니다. 레크리에이션 강사인 우옥환 교수에게 1년간 노래를 배웠습니다. 금산가수협회 이영환 님에게 노래 트레이닝을 받았죠. 이동원 대한가수협회 대전중부지회장과 친교를 맺으면서 같이 버스킹을 하게 됐고, 탄방동 주민자치회에서 노래 두 곡 부른 뒤 금산에 가서 다시 2곡을 부르고 보문산 숲속 공연장 가서 2곡을 부르고 은행동으로 가서 2곡을 부르고 정말 바쁘게 이동하며 노래를 불렀죠. 힐링버스데이를 운영하는 박윤조 대표가 하루 로드매니저 역할을 해주면서 “형님, 동에 번쩍 서에 번쩍 정말 바쁘시네요” 그러더군요.(하하하). 김성완 미래정치아카데미 이사장과는 JC와 라이온스 활동을 같이 하면서 많이 친한 사이입니다. 180세까지 이 일을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하하하). 버스킹 공연과 더불어 요양원 봉사활동을 많이 다니고 있습니다. 제 단골 레퍼토리는 ‘인생의 승리자’와 가거나 말거나’,친구야’, ‘허무한 마음’, ‘모란동백’ 등 수십여곡에 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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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가수 이름은 예명이 성을 빼고 이름만 담은 ‘운석’인데요. 수풀림에 구름운, 클 석입니다. 큰 구름이죠. 구름에서 떨어진 큰 사람이랄까요. 운석은 하늘에서 떨어진 별이잖아요. 우주에서 지구별로 봉사하러 온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사람들에게 저를 소개할 때 “하늘에서 떨어진 운석, 가수 운석입니다”라고 소개합니다. 제가 제일 존경하는 연예인은 가수 남진입니다. 팬이 부르는 곳이면 어디든지 가는 모습이 좋습니다. 조그마한 벚꽃축제도 가죠. 제가 정말 닮고 싶은 가수입니다. 그의 소박함이 좋습니다. 저도 어디든 불러주시는 곳이라면 다 가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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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님 좌우명이 뭔가요?

▲제 좌우명은 ‘존경받는 부자로 살자’랍니다. 김승호 작가의 책 <알면서도 알지 못하는 것들>을 좋아합니다. 제가 다니는 성당에 강연하러 온 김승호 작가의 특강을 들으며 팬이 됐죠. <사장학개론>, <돈의 속성>, <김밥 파는 CEO>,<김승호의 100번 노트>, <생각의 비밀> 등을 쓴 베스트셀러 작가, 가난한 이민자에서 슈퍼리치가 된 김승호 스노우폭스그룹 회장이 찾고 깨달은 행복과 부의 비밀을 담은 책이죠. 성공과 실패, 부와 가난의 양극단을 오가며 존경받는 리더를 생각했던 그가 돈, 사업, 가족, 행복, 죽음, 행복, 사회에 대한 모든 생각은 삶의 다양한 경험을 유의미하게 해주고, 삶에 대한 새로운 태도를 갖게 해주었다고 말했죠. 성공은 평범한 일을 비범한 일로 받아들일 때 찾아오니 생각을 전환하라고 한 말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애민사상이 없는 사람은 털끝만한 권력만 생겨도 남용합니다. 2002년도에 담배를 끊었는데 하루에 4갑씩 피우던 담배에 구속되는 삶이 싫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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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님, 앞으로의 계획을 들려주실까요?

▲오래도록 저를 좋아해 주시는 모든 분들께 노래를 불러드리며 살고 싶습니다. 저는 어릴 때 철강왕 엔드류 카네기 책을 많이 읽고 철이 들었는데요. 카네기 책을 읽으면서 꿈을 키웠습니다. 고객님들께 정성을 다해 베풀고 사랑을 전해 드리는게 꿈입니다. 30년째 단골 고객님들도 계신데 그 분들이 얼마나 감사한지 모릅니다. 기념일이나 좋은 일이 있을 때면 언제던지 찾아주시죠. 그래서 저는 저의 매장을 방문해주시는 고객님들께 씨알금은거래소 카톡방을 열어드리고 늘 금 시세 정보를 알려드리고 있죠. 우리 지역 최고의 일간지 중도일보의 더 큰 발전과 비약을 기원드립니다. 감사합니다.


대담, 정리 한성일 편집위원(이사) hansung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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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운석 대표는 누구?

▲1958년 공주 출생, 평송장학회 창립멤버. 대전충남라이온스 지대위원장 역임. 배재대 정책교육대학원 1기 회장. 금은보석계의 원조격 씨알보석 대표. 가수 ‘운석’이란 예명으로 활동하며 여러 곳에서 사회활동과 노래 봉사 중.



























































-임운석 대표는 누구?

▲1958년 공주 출생. 씨알보석을 운영하며 지역 사회 내에서 다양한 사회공헌 및 단체 활동을 병행해 왔다.

중경라이온스클럽 제13대 회장. 지대위원장 역임. 가수 ‘운석’으로 활동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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