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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고사 산책](18)통일운동의 대부들은 왜 환단고기에 매혹되었는가?

오정윤 단학회 제7대회원

김의화 기자

김의화 기자

  • 승인 2026-05-18 11:00


1993년 8월 14일, 광복절 전야(前夜)에 한양대학교 노천극장에서는 제4차 범민족대회가 열리고 있었다. 이 날 통일운동의 아버지 문익환 목사는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사자후를 토하였다. 중앙무대의 단상에 오른 문익환 목사는 북한의 김일성 주석과 만나 남북한 통일운동의 지향과 방법론에 대한 여러 가지 대화를 나누고 하나의 의견일치를 모았다고 전하였다. 그리고 충격적인 발언이 나왔다.



그것은 '단군'이었다. 남북한이 통일을 하는데 구심체가 바로 '단군'이어야 한다는 외침이었다. 모두들 놀랐다. 20세기 끝자락에 갑자기 신화속 '단군'이 등장하였기 때문이었다. 단군은 역사속 실존인물, 곧 고조선의 건국자를 말하지만, 당시에 한국지성계의 풍토는 '단군은 신화'라는게 일상적 인식이었다. 남북한이 통일을 하자면 "단군"으로 통일을 해야 합니다. 짧지만 간단명료한 지침이었다,



문익환 목사, 범민족대회에서 단군을 외치다

일제 식민사학을 계승한 남한의 강단사학 통설은 '단군을 신화속 상상의 인물'로 규정하고 있었고, 한국기독교에서는 신화속 인물을 받드는 것은 우상숭배라고 주장하고 있었다. 이런 분위기에서 진보적 기독교계의 매우 존경받는 정통신학자이며 충실한 목회자인 문익환 목사의 '단군' 발언은 전야제의 전체적인 분위기를 충격으로 몰아넣었다. 어느 지도부는 '그게 무슨 말이오? 단군이라니"라면서 반발하였고, 일부는 자리를 박차고 대회장을 나가는 풍경을 연출하였다, 그날 범민족대회 전야제에 민족단체의 일원으로 참여하고 있던 필자조차도 예상치 못한 발언에 엄청 당황하였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문익환 목사는 왜 '단군'을 말했을까? 그리고 그것이 남한 통일운동 전선에서 고조선과 단군이 갖는 역사적 의미를 되새기고, 통일운동의 다른 전환점이 되리라는것을 예상하였던 것일까? 이제 시간을 90년대로 되돌려 기억의 뚜껑을 열고 복기를 하려고 한다. 약간의 오류가 있을 수 있다. 통일운동의 전선에서 활동한 많은 이들은 이 복기에 오류가 있다면 아낌없이 지적해 주기를 바란다. 이미 고인이 되신 분들이 많아서 그분들의 증언과 채록을 하지 못한 아쉬움이 있지만, 진실에 가깝도록 그 때의 일들을 역사에 남기고자 한다,

1990년 10월 3일에 독일이 통일되었다. 베를린장벽이 이 날 공식적으로 무너졌다. 독일통일은 분단국가인 남북한 모두에게 불안과 어지러움, 희망과 기대로 다가왔다. 문제는 북한이었다. 독일통일의 실제는 공산국가인 동독(東獨)이 자본주의 국가인 서독(西獨)에게 흡수통일을 당한것이기 때문이었다. 90년대에 이르러 도미노처럼 퍼진 소비에트연합(소련)과 동유럽 공산권 국가, 중국의 개혁개방도 결국은 자본주의의 우위를 나타내는 표지였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북한에서 들고 나온것인 남북한과 해와동포는 '단군의 자손'이라는 공통분모였다. 단군은 통일운동과 남북한의 주도권 다툼을 우선적, 선제적으로 확보하는 통일전전의 구호였다. 남한의 재야운동권이 굳이 북한에서 주창한 '단군' 구호를 배제할 이유가 없었다. 오히려 '단군'이라는 민족적 구심체가 체제의 이질성, 체제의 대결 등을 극복하는 합리적 수단이 될 것이라는 믿음도 한 몫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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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회의의 공동대표 이수갑 의장의 "이수갑평전"과 생존의 모습
이수갑, 박순경, 환단고기의 인연

이때 해방공간에서 전평(全平)의 활동가이셨던 노동계의 대부 민족정기수호협의회 이수갑 의장님의 추천으로 민족단체인 맥이민족회, 신시민운동연합, 한국민족청년회, 대종교청년회 등이 범민족대회에 참여를 결정하였다. 1993년 한양대에서 거행된 제4차 범민족대회였다. 드디어 재야세력, 민주세력에 민족세력이 결합하는 민족민주운동의 새로운 길이 하나 더 열렸던 것이다.

아울러 이 대회를 기점으로 기존의 범민련이 구상한 민간통일 운동의 방식을 새롭게 바꾸어야 한다는 공감대가 재야, 여성, 종교, 노동계 등에 널피 퍼지고 공유되었다. 그리고 탄생한 민간통일 조직이 '자주평화통일 민족회의'였다. 지금은 보수진영으로 건너간 하태경, 함운경, 최홍재, 홍진표 등이 실무국장으로 활동하였고, 필자는 민족단체 몫으로 운영위원에 참여하였다. 1994년 1월에 민족회의를 제창한 문익환 목사가 급서하였다. 그래도 민간통일운동의 조직체 건설은 멈추지 않았고, 민족회의는 그 해 7월 2일에 창립하였다.

이때부터였다. 민족정기수호협의회 이수갑 의장(1925-2013)의 주선으로 여성신학자이면서 통일신학의 대부인 박순경 박사(1923-2020)를 만났다. 이때 박순경 박사는 민족회의 공동의장이셨다. 그리고 이수갑 의장은 범민족대회, 민족회의 일본문제대책위원회(의장 이수갑, 간사 오정윤), 아시아공동선언(AWC:미국과 일본의 아시아 지배를 반대하는 범아시아 공동선언, 공동의장 이수갑, 한국간사 오정윤)에서 함께 한 동지이셨다. 늘 '청년 이수갑'이시길 바라서 동지라는 호칭을 좋아하셨다. 아울러 민족회의 공동대표이면서 저를 통일운동으로 이끈 대선배이셨다.

민족회의 운영위원회 회의가 열리기 직전, 또는 하루전에 종로5가 기독교회관 인근의 카페에서 여러차례에 걸쳐 환단고기에 대한 토론과 1인 강연이 이루어졌다. 노학자 여성신학자와 청년 민족주의자의 격없는 토론과 질문이 이어졌고, 이수갑 의장은 늘 배석하셨다. 박순경 박사는 1991년부터 주체사상을 집중적으로 연구하였고, 서구의 기독교신학과 주체사상, 그리고 우리겨레의 전통사상을 융합한 통일신학의 정립이 신학적 목표였다.

그래서 찾은 것이 기독교의 창세론, 삼위일체론과 연결된 천부경, 삼일신고, 태백일사의 소도경전본훈이 주요한 토론의 재료였다. 기독교 신학의 대부답게 질문이 날카로워셨다. 나의 답이 얼마만큼 충족했는지는 모른다. 그후 박순경 박사는 여러 강연, 저술 등에서 환단고기의 철학을 기독교신학, 통일신학에 융합하여 표현하셨다. 박순경 박사와 환단고기의 다른 인연은 단행본 <환단고기에서 희망의 빛을 보다>(강희남, 최진섭 외, 도서출판 말, 2022)에서 확인이 가능하다. 여기서 하나의 질문을 던진다. 세계적인 신학자 박순경 박사는 왜 환단고기를 찾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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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수경 박사, 강희남 목사의 환단고기 만남을 기록한 "환단고기에서 희망의 빛을 보다"와 이일봉의 "실증 환단고기>
강희남, 환단고기를 가슴에 품다

통일운동의 대부이면서 범민련 남측의장이셨던 강희남 목사(1920-2009)는 남북한의 민족적 동질성과 주체성을 단군과 고조선에서 찾고자 하였다. 북한에서 단군정통론을 내세우고 단군릉을 재건하는것에 정신적 충격을 받으셨다고 하셨다. 통일운동 과정에서 숱한 옥고를 치룬 강희남 목사는 단군의 역사를 보다 알고 싶어 하셨다.

그래서 단군역사와 한국상고사 연구에 깊은 관심을 가진 사단법인 한배달의 이일봉 사무국장을 찾았다. 이일봉 사무국장은 <실증 환단고기>의 저자였다. 어느날 강희남 목사가 환단고기를 전한 단학회 관련인물, 한암당 이유립의 제자를 만나고 싶다고 하여 한배달 사무실에서 몇차례 만났다. 이일봉과 강희남 목사, 그리고 필자와의 만남은 이런 인연으로 시작되었다.

연도는 정확히 기억하지 못하지만 몇시간씩 진지하게 토론하고 인근에서 막거리를 하였다. 건강이 안좋으셔서 물만 드신 기억이 난다. 그리고 얼마후 강희남 목사는 <새번역 환단고기(2008)>를 내셨다. 만일 북한에서 출판된 여러 고조선, 단군, 환단고기 관련한 논문과 단행본을 만났다면 더욱 깊은 연구가 이루어졌을 것이란 아쉬움이 남는다, 강희남 목사의 글은 단행본 <환단고기에서 희망의 빛을 보다>(강희남, 최진섭 외, 도서출판 말, 2022)에서도 박순경 박사의 글과 함께 찾을 수 있다.



통일운동의 대부들, 왜 환단고기에 매혹되었는가

통일운동은 상대적이다. 남과 북이 주축이고, 중국과 러시아, 미국, 일본 등에 사는 해외동포들이 또 한 축을 이룬다, 그런데 서로 체제와 이념, 국적이 다르다, 정치적 입장도 다르고, 종교적 관점도 다르다. 이들을 하나의 공동체적 정서로 만드는 구심체가 필요하다. 환단고기는 수많은 학자들이 위서라고 해도, 거기에 담긴 역사와 철학은 쉽게 부정할 수 없는 무엇인가 존재한다. 위서는 일부의 주장이고, 해답을 주는 자료는 믿음이다. 환단고기는 통일운동의 대부들에게 민족통일의 구심체로 가는 답을 보여주는 믿음의 자료였던 것이다.

통일운동의 전선에서 고조선과 단군은 항일운동의 공통적 정체성을 가진 남북한의 정통

성을 상징한다. 민족에게서 혈연과 역사만큼 중대하고 확실한 공통성은 없을 것이다. 3년간 이념으로 나뉘어 동족상잔의 전쟁을 치룬 남북한이 과거의 상처를 치유하고, 통일의 미래로 나아갈 때 혈연적 동일성과 역사의 공유성은 너무나도 중요하고, 환단고기가 그걸 증명해준다는 믿음, 이것이 통일운동의 대부들을 매혹시키지 않았을까?

그래서 그런지 2010년대에 통일운동 진영, 노동계, 여성계, 문화계, 예술계 등에서 고조선, 단군, 환단고기에 대한 관심과 공부가 열품처럼 일어났다. 작은 공부모임에서부터 대중강연에 이르기까지 단군을 배우고, 고조선을 알고자 하였으며, 한단고기가 어떤 역사책인지 궁금해했다. 많은곳에 강연하고, 소모임에 나갔다. 이곳에서 강조한것은 환단고기에 대해 무조건 믿음보다는 실증적이고 과학적인 관점에서 통일운동의 자료로 활용하고, 비판하고, 실증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지금도 그것은 유효하다. 어떤 사서라도 완벽한 것은 없다, 한단고기도 그 문제점은 계속 나올 것이며, 그것을 상쇄하는 증거들도 계속 등장할 것이다. 비판과 비난, 거짓과 진실, 위서와 진서의 논쟁은 바람직한 토론이고 방향이다. 부정하는것도 믿음이거, 긍정하는것도 믿음이다. 과학과 신앙의 위치일 수도 있다.그렇지만 통일운동의 길에서 만난 통일대부들의 환단고기에 대한 애정과 믿음은 진정성이었다. 지금도 그분들의 한 말씀이 들린다. 누가 무어라해도 '환단고기는 매혹적'이다.

오정윤 단학회 제7대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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