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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人칼럼] 주권을 행사할 수 있는 시대에 살면서

최정민 미술평론가

최화진 기자

최화진 기자

  • 승인 2026-06-10 16:59

신문게재 2026-06-11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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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정민 미술평론가
선거철이 되면 사람들은 불평부터 한다. 이른 아침부터 울려 퍼지는 선거 음악이 시끄럽고, 거리마다 서 있는 선거운동원들은 때로 출근길을 번잡하게 만든다. 거리 곳곳을 채운 현수막과 반복되는 유세는 적지 않은 피로감을 안기기도 한다. 그럼에도 우리는 몇 년마다 이 과정을 반복한다. 선거가 민주주의를 움직이는 가장 기본적인 장치이기 때문이다.

조선시대만 해도 백성들은 왕을 선택할 수 없었고, 나라의 정책을 결정하는 대신들을 뽑을 권리도 없었다.

조선은 철저한 군주제 국가였다. 왕은 하늘의 뜻을 받아 나라를 다스리는 존재로 여겨졌으며 권력은 위에서 아래로 내려오는 구조였다. 물론 왕 혼자 나라를 운영한 것은 아니다. 영의정과 좌의정, 우의정을 비롯한 수많은 관리들이 국정을 담당했다. 그러나 이들 역시 현대 사회처럼 국민의 투표로 선출된 정치인이 아니었다. 과거시험을 통해 관직에 진출하거나 가문과 정치적 배경을 통해 권력을 얻었다. 백성들은 그들을 선택할 수 없었으며 정책 결정 과정에 직접 참여할 방법도 거의 없었다.

조선시대 백성들의 삶은 정치의 영향을 크게 받을 수밖에 없었다. 왕이 누구인지, 어느 정치 세력이 권력을 잡고 있는지에 따라 세금과 군역, 생활 환경이 달라졌다. 현대인들은 선거에서 마음에 들지 않는 정치인이 당선되더라도 다음 선거를 통해 심판할 수 있지만, 조선시대 백성들에게는 그러한 선택권이 없었다.



붕당정치 시기에는 권력을 차지한 세력에 따라 정책 방향이 달라졌고, 그 변화의 부담은 결국 평범한 백성들이 떠안아야 했다. 흉년과 전쟁이 닥치면 백성들의 삶은 더욱 크게 흔들렸다. 중요한 것은 그들이 그러한 정책과 부담을 결정하거나 바꿀 권리를 갖지 못했다는 점이다. 백성들은 정책에 동의하거나 반대할 방법이 없었고, 권력을 가진 이들을 교체할 수도 없었다. 정치의 결과는 늘 삶으로 돌아왔지만 정치에 목소리를 낼 기회는 거의 없었다.

이는 당시의 궁중기록화에서도 엿볼 수 있다. 왕과 대신들이 조회를 열거나 국정을 논의하는 장면을 담은 그림에는 나라의 중요한 결정을 내리는 인물들이 등장한다. 그러나 그 결정에 가장 큰 영향을 받는 백성들의 모습은 찾아보기 어렵다. 조선시대의 정치는 왕과 신하들의 공간에서 이루어졌고, 백성들은 그 결과를 받아들여야 하는 존재였다. 오늘날에는 낯설지만 당시에는 당연한 정치 질서였다.

21세기의 지방자치단체장과 지방의원들은 일상과 밀접한 정책을 결정한다. 투표는 정치인을 뽑는 일을 넘어 지역의 미래를 결정하는 과정이다.



다만 선거가 중요하다는 사실과 별개로 선거운동 방식에 대한 고민은 필요해 보인다. 선거철마다 선거 음악과 확성기 소리, 거리 유세는 시민들에게 피로감을 준다. 법적으로 허용된 선거운동이라 하더라도 시민들의 일상과 충돌하는 순간 불편함이 발생할 수 있다. 특히 온라인과 디지털 기술이 발달한 오늘날에는 보다 효율적이고 시민 친화적인 선거 홍보 방식을 고민할 필요가 있다. 선거의 가치를 지키면서도 시민들의 불편을 줄이는 선거문화에 대한 고민이 필요한 이유다.

조선시대 백성들은 나라의 방향을 결정할 수 없었고, 왕과 신하들의 결정을 받아들여야 했다. 그러나 오늘날의 시민은 다르다. 우리는 한 표를 통해 정치에 참여하고 사회의 방향에 의견을 보탤 수 있다. 선거는 때로 번거롭고 시끄럽게 느껴질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표를 행사할 수 있다는 사실은 결코 당연한 권리가 아니다. 그것은 오랜 시간에 걸쳐 얻어낸 시민의 권리이자 민주주의를 움직이는 가장 기본적인 힘이다.

최정민 미술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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