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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상자 속의 양' 포스터. |
영화는 많은 질문과 생각을 갖게 합니다. 죽은 자를 되살리는 것은 윤리적인가? AI 기술로 복원된 로봇은 가족 구성원이 될 수 있는가? AI 로봇의 자율성은 인간이 통제할 수 있는 것인가? 감정은 적절히 절제되고 스토리는 부드럽게 진행되지만 품고 있는 주제는 묵직하기 짝이 없습니다. 멀지않은 미래라고 미리 못박아 둔 영화의 시점은 관객인 우리가 처한 현실과도 근접해 있습니다.
영화는 답을 쉽사리 하지 않습니다. 질문을 진지하게 던질 뿐입니다. 살아 돌아온 듯 말하고 행동하는 로봇을 오토네는 말할 수 없이 따뜻하고 친근하게 대합니다. 그 애절함과 애틋함을 부모 된 이라면 차마 이기적이라고 치부할 수 없습니다. 이른바 인지상정입니다. 그러나 그들에게는 미래가 없습니다. 로봇의 육체가 성장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는 AI가 과거의 산물이라는 것을 분명히 보여줍니다. 학습의 결과물이고, 앞으로 더 많은 학습을 할지라도 몸은 만들어진 로봇일 뿐입니다. 그러니 어느 시점에 이르러 버려지는 로봇들이 생겨납니다. 더 큰 윤리적 문제를 제기합니다. 마치 반려동물의 유기와 같습니다.
슬픔의 위로는 어디까지여야 할까요? 끝내는 수용하고 극복해야 하며 그것을 성숙이라고 일컫습니다. 영화는 종국에 이르러 이별을 선택합니다. 그러면서 결국 자식은 떠나보내는 것 아닌가 하고 말합니다. 부모의 숙명이라고 말입니다. 그리고 영화는 버려진 로봇들과 인간 아이로 구성된 새로운 가족을 보여줍니다. 고레에다 히로카즈가 줄곧 천착해 온 가족의 문제로 귀결됩니다.
영화 속 인상적인 장면. 2층 난간에 앉아 먼 곳을 바라보는 카케루와 그를 지켜보는 오토네. 열차를 좋아했던 카케루가 멀리 열차를 바라볼 때 죽은 아들의 추억과 AI 로봇의 미래가 겹칩니다. 결국 엄마는 집에 남고 아들은 떠날 것입니다. 슬픈 성장 영화입니다.
김대중 영화평론가/영화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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