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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도정회고록) “남기고 싶은 이야기” (26회) 참으로 기막힌 김학현 보령군수

김 용 교(前 충남도정책기회관/前 아산시 부시장)

한성일 기자

한성일 기자

  • 승인 2026-07-14 09:47

신문게재 2026-07-15 1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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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학현 군수는보령군과 대천시가 통합된 보령시장도 역임하였다. 사진=김용교 제공
김용교 부시장
김 용 교(前 충남도정책기회관/前 아산시 부시장)
(1) 부하직원의 개성과 주특기를 알아내어 적재적소에 활용한다

김학현 보령군수는 충남도와 보령군에서 행정가로 재직하실 때 ‘기막힌’ 군수로 닉네임이 붙어 다녔다.

‘기막힌’은 ‘김학현’의 본명과 발음이 유사할뿐더러 워낙 순발력이 뛰어나고 아이디어도 샘솟는 분이어서, 아이디어가 떠올라 말씀하실 때 들어보면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김학현 군수는 군수로서 권위는 세우되 지배와 복종의 권위주의는 찾아볼 수가 없었다. 소탈하고 부하직원들을 스스럼없이 대해주신다. 그러기에 군수가 무서운 분이 아니라 가까이 하고 싶은 분으로 여긴다.



마주치면 서로가 웃으며 인사한다. 웬만하면 화를 내지 않는다. 충남도청에서 새마을 과장으로 근무할 때는 부지런하기로 소문난 분이기도 하였다.

나는 1990년 3월 10일자 사무관 승진 요원으로 도청 지방과(행정계)에서 근무하다가 보령군으로 전출 발령이 났다. 당시 보령군수는 기막힌 김학현 군수였고 도지사는 심대평 지사였다.

지금의 사무관 승진제도는 대부분의 행정기관에서 심사를 거쳐 승진시키고 있으나, 그 당시는 6급 행정주사가 시군의 사무관 직급 자리에 직무대리로 발령을 받고 승진시험을 통과한 후 한 달 간 사무관 임관 교육을 수료해야 5급 사무관 사령장을 받을 수 있었다.



그런데 나를 곤혹스럽게 하는 일이 벌어졌다. 군수께서 나를 기획실장 직무 대리로 발령을 낸 것이다. 사무관 승진 요원으로 시군으로 전출하게 되면 대개의 경우 민방위 과장 직무대리나 문화공보 실장 직무대리로 발령하는 경우가 인사 관행이었다.

반면, 시군 기획실장은 내무과장과 함께 그 당시 15~16개가 넘는 실과장 중에서 서열 1위의 자리로 시군의 기획과 예산, 즉 시군 장기비전을 제시하고 살림살이를 맡는 비중이 큰 자리였다.

더욱이 그 당시 보령군 기획실장 자리는 공석도 아니었고 사무관으로 이미 승진된 분이 무난하게 직무를 수행 중이었는데 본인 의사에 불구하고 사회과장으로 전보조치하고 행정주사(6급)인 나를 기획실장 직무대리로 발령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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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반동안 보령군에서의 공직생활은 나에게 큰 보람을 안겨주었다. 사진=김용교 제공
나는 군수님의 의중을 알 수 없었고 인사권자에게 여쭤볼 수 있는 입장도 아니어서 부군수님과 내무과장께 "나로서는 부담스러운 인사다. 재고할 수만 있다면 재고해 주셨으면 한다"는 말씀을 드려봤지만 이미 발표된 인사발령을 취소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그러나 기획실장 직무대리 발령을 받은 지 한 달이 지나면서 나에 대한 인사발령에 대하여 김학현 군수의 의중을 파악할 수 있었다. 한마디로 비유하자면 "선물할 물건은 군수인 내가 직접 마련해 줄 테니 김용교 기획실장이 포장 좀 멋지게 해달라"는 것이었다.

김 군수께서 도청에 근무하실 때 나의 기획역량을 높게 평가하신 것 같았다. 일머리를 파악하는 능력이 뛰어난 시장, 군수들은 남다른 데가 있다. 김학현 군수도 기본적으로 일을 즐기는 분으로 퇴근 후 귀가해서도 일만 생각하는 분 같았다.

아침 간부회의 때 호주머니에서 쪽지를 꺼내 들고 말씀하시는 것을 지켜보면 밤새 이 궁리 저 궁리를 다 하신 것이 분명하였다. 특히, 군수님은 보령이 고향이어서 보령군의 지리적 여건과 지역적 특성을 꿰뚫고 있었다.

이러다 보니 지역별,지구별로 산, 들, 바다가 조화를 이루는 보령의 개발과 지역발전 구도를 모두 그려놓고 단계별 점진적으로 해결할 것은 해결하고 완성할 것은 완성해 나가는 스타일이었다.

또한 정치적으로는 3당 합당으로 거대 집권 여당이 된 민주자유당(민자당) 실세 3역 중 한 명인 정책위 의장에 대천시, 보령군을 지역구로 둔 김용환 의원이 맡고 있어서 대천,보령 지역의 현안사업을 중앙의 해당 부처에 부탁하여 해결하는 데 앞장서주고 있었다.

김용환 의원께서 대천 사가(私家)에 내려오시면 김 군수께서는 김 의원을 반드시 찾아뵌다. 방문할 때에도 빈손으로 가는 법이 없고 그 무엇이든 보고 자료를 지참하고 간다.

민심 동향, 주요 현안사업 진행 상황, 군정 수행과정에서 대두되고 있는 문제, 지역주민 숙원사업, 중앙 정부에서 해결해 주어야 할 사업 등 그때 그때 마다 필요한 사항을 정리하여 직접 뵙고 보고 드린다. 보고서는 물론 내가 작성하였다.

군수님께서는 제목만 주신다. 보고서를 작성하여 드리면 매우 흐뭇해 하시는 표정을 역력히 느낄 수가 있었고, 김용환 의원 사가에 나를 꼭 데리고 가셨다. 내가 김 의원님 댁에 가서 해야 할 역할은 없었지만 "중앙정부의 장·차관만을 상대하는 지체 높으신 분을 뵙고 자긍심을 가져라"하는 군수님의 배려로 이해되었다.

과거 대규모 탄광이 있었던 보령 성주면에 석탄박물관을 건립하였다. 그 당시 재정여건으로는 사치스러운 시설 같기도 하였지만, 김학현 군수의 건립 명분과 힘쓸 수 있는 김용환 의원이 계실 때, 물 들어올 때 배질하듯 국비 지원을 받아 관광시설을 확보해 놓자는 전략이었다.

김용환 의원이 동력자원부 장관과 한 통화 전화는 동자부 실무진까지 모두 움직여 주었다. 나도 동자부에 몇 차례 오르내렸지만 모두가 긍정적이었다. 석탄박물관은 한 예에 불과하지만, 김용환 의원과 김학현 군수와의 케미는 대천,보령지역에 많은 업적을 남겼다.

그 당시 시장 군수는 임명직 관선제였다. 시장 군수의 인사권이 도지사에게 있었다. 김학현 군수는 지역 출신 국회의원과 공직 상사인 도지사를 깍듯이 모셨다. 결코 아부하지 않았다. 일로써 입증하였다.

김용환 의원 입장에서 보면 자기 지역구 군수가 이처럼 알뜰살뜰 세심하게 챙겨주니 얼마나 고마웠겠는가? 따라서 김 의원의 김 군수에 대한 신뢰는 무한 신뢰였다. 이처럼 해당 지역구 국회의원과 시장 군수와는 동반협력관계로 사이가 좋아야 한다. 관계가 좋을 때 지역 숙원사업 해결에 큰 도움이 된다.

국회의원 회관을 수십 수백 차례 들락거리다 보면 국회의원의 영향력이 생각보다 대단하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따라서 지역구 국회의원의 힘을 빌려 국비 지원을 받아낼 때 주민 숙원사업 해결에 큰 도움을 받을 수 있게 됨을 알 수 있게 된다.

시장 군수와 당해 지역 국회의원과 소속 정당을 달리할 때 종종 갈등을 빚고 배타적 관계가 될 경우가 있는데 이렇게 되면 그 피해는 고스란히 시 군민에게 돌아가기 마련이다. 나는 이 같은 갈등의 1차적 책임은 시장 군수에게 있다고 본다.

정치적 소신과 신념은 달리할 수 있다. 그렇지만 지역 출신 국회의원과 시장 군수가 여야를 떠나 협력 동반자 관계가 유지될 때 시장 군수가 손해 볼 일은 없다고 보는 것이다. 서로를 아껴주고 위해줄 때 시 군정은 원활하게 돌아갈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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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광개발로 폐허가 된 성주산 화장골을 여름휴양지로 가꾸었다. 사진=김용교 제공
다음은 나와 김학현 군수와 지휘 보고에 관한 얘기다.

지휘 보고의 취지는 1980년대 중반으로 거슬러 가는데 대개 이러하였다. 시 도와 내무부(중앙부처) 시군과 시도의 조직구조는 예나 지금이나 계장~과장~국장~부지사~지사 또는 계장~과장~국장~차관보~차관~(내무부) 장관 등 계층제의 원리로 운영되고 있다.

이러다 보니 전자결재가 이루어지는 디지털시대가 아닌 아날로그 시대로 시도에서 내무부에 보고를 하면 계장부터 장관에 이르기까지 수일에서 십수일이 걸리기도 한다. 모든 문서는 손으로 작성하고 손으로 결재하는 시대였다.

한번은 어느 시도지사가 내무부에서 시급히 조치해 줘야 할 사안이 있어 보고를 하였는데 십수일이 지나도록 아무런 반응이 없자 장관께 직접 전화를 걸기에 이른다.

장관은 보고를 못 받았기에 내용을 모르고 있고… 이런 일이 있고 나서부터 우선 시급한 일은 시도지사가 직접 서명해서 내무부의 중간관리층을 거치지 않고 장관께 직접 보고하는 관행이 만들어진 것이었다.

또한, 지휘 보고에 담아야 할 내용에 있어서도 법령, 제도를 개선해야 할 사항, 창발시책으로 전국 다른 시도와 공유하고 전파가 필요한 사항, 예방행정 차원에서 중앙부처가 직접 챙기고 나서 줘야 할 사항 등으로 범위가 정해져 있었다.

임명직 관선시대로 시도지사는 내무부 장관에게 지휘보고 경쟁이 이루어졌고, 시도에서 가장 무겁게 여기고 심혈을 기울여 작성하는 것이 지휘 보고였다.

시도와 내무부 간에 이렇게 지휘 보고가 운용되다 보니 자연스럽게 시장·군수·구청장이 시도지사에게 직보하는 지휘 보고도 같은 취지로 운용되었는데, 한마디로 시급하고 중요한 사안을 지휘관과 지휘관이 직접 소통하여 소 잃기 전에 외양간을 고치자는 예방행정 차원의 행정 수단이었던 것이다.

김 용 교(前 충남도정책기회관/前 아산시 부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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