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 문단과 한국 시문학계의 거두인 박용래 시인이 머물던 대전 오류동 '청시사(靑枾舍)'도 매각과 철거라는 비극적 운명을 비껴가지 못했다. '눈물의 시인'답게 작고 여린 존재들과 교감하며 극도로 정제된 언어 세계를 일구던 그 집은 2008년 무참히 허물어져 공영주차장으로 변했다. 박목월, 박두진 등 문인들이 드나들던 한국 서정시의 산실은 쓸쓸한 표지석 하나로 덩그러니 남았을 뿐이다. 토착적 모더니즘이라는 문학적 성취의 흔적도 그 아래 묻히고 말았다.
문학과 삶, 푸른 감나무가 숨 쉬던 그 집에서 '오류동의 동전' 등 대전의 근현대사적 가치를 지닌 시편들이 탄생했다. 이렇듯 소중한 유산들이 차가운 아카이브 속 기록으로만 떠도는 현실이 안타깝다. 소유권을 구실로 근대문학의 장소적 의미마저 저버린 처사는 온당치 않다. 비중을 생각할 때 지역 문화에 대한 몰이해를 넘어 문화적 직무유기나 다름없다. 오룡역 작은 문학관마저 접으면 시인에 대한 기억은 한동안 가물가물해질지 모른다. 잘못된 기억법 아닌가.
'북에는 소월, 남에는 목월, 중도(中都·대전)에는 용래'라는 말이 있다. 한국 현대 서정시의 한 계보를 당당히 세웠다는 방증이다. 대전도시철도 역명의 '박용래역' 병기는 비교적 쉬운 출발점이다. 춘천 '김유정역'의 선례처럼, 서정시의 한 획을 그은 거목을 기릴 자격은 차고 넘친다. 시인의 예술혼을 오롯이 간직할 기념관 건립도 미룰 이유가 없다. 그 궁극에는 옥천 정지용과 부여 신동엽의 생가처럼 박용래 생가(청시사)의 원형 복원이 있다. 쉽지 않겠지만 대전 문학의 국내적 위상은 물론, 문화적 영토를 세계로 넓히는 과업과도 직결되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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