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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복 81주년 앞두고 대전서 5번째 황국신민서사비 확인

성북동 하천둑 석재… '기원 2600년·황국신민' 적혀
진잠초 비석 추정… 주민 증언 토대로 경위 역추적
대전에만 5기째 발견… 종합 조사·보존 논의 필요

이현제 기자

이현제 기자

  • 승인 2026-08-13 17:53

신문게재 2026-08-14 1면

대전 유성구의 한 하천 제방에서 일제강점기 황국신민화 정책의 상징인 다섯 번째 '황국신민서사비'가 석재로 사용된 채 발견되었습니다. 해당 비석은 수십 년간 방치되어 온 것으로 보이며, 대전 내 다른 비석들과 마찬가지로 발견 경위와 보존 형태가 제각각이라 정확한 이동 경로에 대한 조사가 필요한 상황입니다. 전문가들은 이번 발견을 계기로 지역 내 일제 잔재에 대한 종합적인 기록과 함께 향후 보존 및 교육적 활용 방안에 대한 심도 있는 논의가 이루어져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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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시 유성구 성북동 성북천 둑방 중 일부로 사용되고 있는 황국신민서사비. 이번에 발견된 비석은 대전에서만 5번째 발견된 황국신민서사비다. (사진=이현제 기자)
제81주년 광복절을 앞두고 대전에서 일제강점기 황국신민화 정책의 상징인 '황국신민서사비'가 또다시 확인됐다.

대전 유성구 성북동의 한 하천 제방을 이루는 석재로 사용된 채 발견됐는데, 회덕초 인근과 한밭교육박물관, 대전여고, 유성초에 이어 대전에서 확인된 5번째 황국신민서사비다.

특히 비석마다 발견 경위와 해방 이후 남겨진 모습이 제각각인 데다, 이번에는 수십 년간 하천 제방의 석재로 사용돼 온 사실까지 드러나면서 비석의 이동 경위와 보존 방안 등에 대한 조사 필요성도 커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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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 성북동 황국신민서사비 옆면에 보이는 기원2600년. 기원 2600년은 일본이 초대 천황의 즉위년을 원년으로 삼아 계산하는 기년법이다. (사진=이현제 기자)
13일 중도일보 취재에 따르면 대전 방동저수지 인근 성북2통 마을회관 앞 버스정류장 뒤편 하천 제방에서 황국신민서사비가 확인됐다. 비석은 제방을 이루는 여러 석재 가운데 바닥 부분에 놓인 비교적 큰 돌로 사용되고 있었다.



겉으로 드러난 옆면에는 흐릿하게 '기원 2600년'이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다. 기원 2600년은 일본이 초대 천황으로 여기는 진무 천황의 즉위년을 원년으로 삼아 계산한 기년법으로, 서기 1940년에 해당한다. 비석 아랫부분이 지면에서 살짝 들떠 있는 틈을 따라 아래에서 올려다보면 '황국신민'이라는 글자도 확인된다. 이 돌이 황국신민서사비였음을 보여주는 흔적이다.

비석은 하천 제방을 조성하는 과정에서 다른 돌들과 함께 석재로 사용된 것으로 추정된다. 해당 제방이 1990년대 후반에서 2000년대 초반 조성된 것으로 알려진 만큼, 일제강점기에 세워진 비석이 적어도 20여 년 동안 별다른 주목을 받지 않은 채 하천 둑을 이루는 석재로 사용돼 온 셈이다.

황국신민서사는 일제가 중일전쟁 이후 조선인의 민족적 정체성을 말살하고 일본 천황에 대한 충성을 강요하기 위해 1937년 만든 맹세문이다. 일제시대 학교 조회와 각종 집회 등에서 암송을 강요했으며 학교와 관공서 등에는 맹세문을 새긴 황국신민서사비와 서사지주가 세워졌다.



문화유산 전문가들은 이번 비석 역시 과거 진잠초등학교에 세워졌다가 오랜 세월 여러 과정을 거쳐 현재의 하천 제방으로 옮겨진 것으로 추정하고 있지만, 정확히 언제, 어떤 경위로 옮겨졌는지는 아직 확인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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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밭교육박물관에 홀대전시 방식으로 보존되고 있는 황국신민서사비. 중도일보 DB.
대전에서 확인된 황국신민서사비는 발견 경위와 해방 이후 모습도 제각각이다.

현재 한밭교육박물관에 있는 황국신민서사비는 1995년 9월 산내초등학교 운동장이 홍수로 패이면서 땅속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이후 1997년 한밭교육박물관으로 옮겨져 비석을 바로 세우지 않고 비스듬히 눕힌 이른바 '홀대전시' 방식으로 보존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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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 회덕초등학교 옆에 세워진 비석. (사진 제공=안여종 대전문화유산 대표)
회덕초 황국신민서사비는 세워진 채 오랫동안 남아 있다. 2009년 회덕초와 대덕문화원 사이 회덕현 관아터 인근에서 확인됐으며 비문 일부가 훼손된 상태였다. 당시 대덕문화원은 일제강점기 학교 정문에 세워 학생들에게 황국신민서사를 외우게 했던 황국신민서사지주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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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여고에서 발견된 황국신민서사비 모습. 중도일보 DB.
대전여고에서는 2019년 교사 신축 공사 과정에서 구관 앞 화단 아래에 엎어진 채 묻혀 있던 황국신민서사비가 발견됐다. 이후 2023년 교내 운동장 한쪽으로 옮겨 눕혀 전시하며 역사교육 자료로 활용하고 있다.

유성초의 사례는 또 다르다. 학교 내 해방기념비로 알려졌던 비석이 일제강점기 황국신민서사비였다는 사실이 1941년께 촬영된 것으로 추정되는 옛 단체사진을 통해 뒤늦게 확인됐다. 광복 이후 기존 황국신민서사비를 해방기념비로 재활용한 것으로, 일제의 황국신민화 상징물을 광복을 기념하는 비석으로 바꿔 사용한 사례다.

이처럼 대전에서는 황국신민서사비가 원형에 가까운 상태로 남거나 땅속에 묻히고, 교육자료로 전시되거나 다른 기념비로 재활용되는 등 서로 다른 모습으로 남아 있다.

이에 이번 발견을 계기로 대전에 남은 황국신민서사비에 대한 종합적인 조사와 기록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개별 비석의 설치 장소뿐 아니라 광복 이후 어떤 과정을 거쳐 현재의 위치와 형태로 남게 됐는지를 함께 살펴볼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안여종 대전문화유산울림 대표는 "현재 주민들을 상대로 제방이 조성된 시기와 당시 상황 등을 확인하며 비석이 이곳으로 옮겨진 과정을 역추적하고 있다"며 "대전에서 황국신민서사비가 여러 형태로 확인되고 있는 만큼 각각에 대한 제대로 된 조사와 함께 앞으로 어떤 방식으로 보존하고 기억할 것인지에 대한 논의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현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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