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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도정회고록) “남기고 싶은 이야기”(34회) 겸손왕 이명수, 행정부지사에서 4선 국회의원으로(하편)

김 용 교
前 충남도정책기회관
前 아산시 부 시 장

한성일 기자

한성일 기자

  • 승인 2026-09-08 15:33

신문게재 2026-09-09 1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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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도 행정부지사를 지낸 이명수 전 의원은 사랑과 자비심으로 동료를 대해주었다. 사진 제공=김용교
김용교 여름사진
김 용 교
前 충남도정책기회관
前 아산시 부 시 장
(1) 이명수는 ‘자비심(慈悲心)’이 충만하다

이명수는 강자한테 결코 약하지 않고 약자에게는 아낌없는 사랑을 주고 싶어 한다. 약자와 사랑의 눈높이를 맞추려고 무던히도 애를 쓴다.

남을 위하는 일에 이익과 손해를 계산하지 않는 것 같다. 이명수 모친께서는 사고를 당하고 잘못 되어서 이명수 다섯 살 때 세상을 뜨셨다고 한다.

이에 영향을 입어서인지 할머니 품에서 자란 이명수는 가여워 보이는 사람에게 나눔과 베품에 인색하지 않다. 개발담당관으로 재직할 때인 1991년 12월에 연말 정산 세액 공제를 받기 위해 불쑥 영수증을 꺼내 놓는데 매월 봉급에서 어느 고아원에 10만원 씩 송금하여 120만 원이 적혀있었다.



10만 원이면 지금도 적은 돈이 아닐진데 33년 전, 매월 10만 원씩 부모가 없는 고아원에 기부하였던 것이다. 사모님과 갈등도 있었을 법한 일이다. 이따금씩 선물을 받게 되면 집에 가져가지 않고 사무실에 보관해 두었다가 필요할 때 필요한 사람에게 다시 선물하기도 한다.

1993년도에 임명직 금산군수 발령을 받았다. 이른 새벽에 군청 청소차 조수석에 승차하여 시가지 청소가 어떻게 이루어지고 있는지? 청소 미화원의 안전확보와 고충은 어느 정도인지?를 파악하면서 함께 청소 작업 후 목욕 샤워와 아침 식사도 함께하며 애환을 나눈 일들은 두고두고 금산군 일화로 남아있기도 하다.

지금부터 30여 년 전에도 홀로 사는 독거노인들이 살고 계셨다. 그 독거노인들이 밤새 안녕하셨는지? 일상에 별일은 없는지? 궁금히 여겨지자 이명수 군수는 공무원들이 매일 방문 확인할 수는 없다 보니 야구르트를 구입하여 이를 배달하는 아주머니들에게 독거노인 집을 방문케 하여 안부를 확인케도 하였다.



지금처럼 노인복지 시스템이 갖춰지지 않고 노인복지 개념조차 희박할 때 인간의 존엄과 가치, 생명존중 사상, 어르신을 존경하는 이명수 군수의 인본행정이었다.

하위 공직자들은 소외받기 쉬운 위치에서 근무한다. 이명수는 행정 부지사로 재직할 때에도 충남도청의 하위직 여성들에게 먼저 인사하고 그녀들을 위한 여성 직원 별도의 화장실을 도청 각층마다 설치케 한 일도 있다.

도청사 건물은 일제강점기에 지어진 건물이다. 당시 도청 근무자들은 대부분 남성들이어서 여성 화장실을 별도 설치할 수요가 없었을 것이다.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고 보니 한두 명씩 여성 공직자가 늘어나게 되어 1980년대에는 수십 명으로 늘어났고, 여성공직자는 계속 증가되는 추세로 여성화장실 설치가 절실한 때였다.

당시 화장실 구조는 남자 소변기가 있고 뒤로는 대변기 화장실이 있었으며 대변기 마지막 한 칸에 ‘여자화장실’이라는 푯말을 붙여 구분해 놓고 사용하고 있었다. 여성 공무원이 막상 용변을 보러 화장실에 도착했을 때 남자 공무원이 용변을 보고 있으면 화장실에 들어가지 못하고 멈칫하며 밖에서 기다리고 있어야만 하였다. 여직원 입장에서는 여간 불편한 일이 아니었다.

이같은 실정을 알게 된 이명수 사무관은 1984년도에 용기를 내어 당시 이봉학 부지사를 찾아가 건의하여 지금과 같은 여자 화장실을 설치하게 되었다. 결코 작은 일이 아니었다.

그 바쁜 시간을 쪼개서 소리소문 없이 하위직들을 돌아가며 식사 초대를 하고 자유발언을 유도하며 애로사항을 적극 해결해주는 노력도 게을리하지 않았다. 이 같이 이명수는 그 누구보다도 겸손했고 성실한 공직자였다. 나는 겸손의 대가(大家)인 심대평 지사와 겸손왕 이명수 부지사를 가까이서 오랜 기간 모시면서 ‘겸손’을 배울 기회와 시간이 충분했었다.

그러나 나는 겸손의 소중한 가치와 중요성을 깨우치지 못하고 간과하였다 "일 앞에 무엇을 더 고려한다는 말인가?", "일이 만사다", "일 우월주의와 일 지상주의"에 빠졌던 것 같다. 참으로 어리석고 부끄러운 태도였다. 겸손은 나를 낮추고 남을 존중해 주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겸손하면 손해본다"는 생각이 들 수도 있다.

그러나 겸손은 손익의 문제가 아니다. 손익을 떠나 다만 ‘겸손’할 뿐이다. 겸손은 남을 위한 것이지만 결과는 ‘나를 위한 것’이라는 것을 뒤늦게나마 깨닫게 되었다. 겸손에는 남녀노소나 지위고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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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수 전 의원은 정책실 직원들과 한마음대회에 참여하였다. 사진 제공=김용교


(2) 이명수의 총명(聰明)한 기운은 끊임없이 감돈다. 왜 그럴까?

밤을 새우기도 하고 몇 차례씩 토론도 하며 다각도로 검색도 하여 보고서를 작성하면 그 분량이 수 페이지 또는 십수 페이지가 되기도 한다.

이 보고서를 이명수에게 보고하면 서서 훌훌 넘겨 보며 십수초 또는 2~3분 내로 모두를 다 읽는다. 작성한 사람의 심정을 모르는 듯 보고자가 섭섭할 정도로 가볍게 읽어보는 것처럼 보인다. 그런데 기가 막힌 것은 그렇게 순간적으로 읽는 보고서에서 오자가 있으면 반드시 찾아낸다는 것이다.

연필로 그 ‘오자’를 딱 찍어낸다. 그렇다면 훌훌 넘겼다고 하지만 사실은 한글자 한글자를 모두 읽었다는 증거다. 확인해보지 않았지만 별도로 속독법을 배운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였다.

또, 이명수의 총명의 기운은 브리핑이나 대중연설에서도 그대로 드러낸다. 행사 등이 있어 말씀 참고 자료를 작성하여 드리면 몇 군데 정도만 인용할 뿐 어디서 언제 입력을 시켜 놓았는지 때와 장소와 대상에 맞추어 청산유수로 발언한다.

평소의 작은 말수, 낮은 목소리는 온데간데없이 음성은 맑고 발음은 정확하며 논리는 명쾌하다. 이러한 바탕이 이명수를 아산에서 내리 4선의 국회의원으로 역임케 한 동력이 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다.

얌전·조용·겸손 모드로 국회 의정활동을 하다 보니 이명수 의원에게 ‘존재감’이 없다는 유권자들도 있다. 양보하고 겸손하고 나서지 않다보니 그러한 인식이 있었을 것이고 그러기에 손해도 많이 봤을 것이다. 그러나 해야할 말은 때를 놓치지 않고 당당하게 하였을 것이다.

조용히 앉아있다가도 막상 TV 카메라가 비춰지면 벌떡 일어나 고함지르고, 삿대질하고, 몸싸움하는 유치(幼稚)한 국회의원들에 빗대어 이 의원에게 ‘존재감’이 없다고 평한다면 그 유권자의 정치의식 수준을 다시 평가해야 할 것 같다.

유권자들은 현명하다. 생각 없이 투표하지 않을 것이다. 많은 유권자들은 인격을 갖추고 ‘상황판단능력과 문제 해결 능력’을 갖춘 정치력 있는 사람을 선호할 것이다. 한 지역에서 내리 4선을 하였다는 것은 결코 행운이나 우연이 아니었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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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수 그레고리오 영세식에는 경갑룡 주교, 유흥식 도청솔뫼회 지도신부(현 추기경), 조성옥 교리교육담당 신부님께서 참석하였다.
사진 제공=김용교
(3) 이명수는 독실한 천주교(天主敎) 신자다.

내가 개발담당관실에 근무할 때 이명수 개발담당관께서 나에게 천주교 입문 의사를 물어 흔쾌히 답변하고 이명수 담당관과 함께 대전 대사동 성당에서 매주 토요일 밤에 6개월 간 교리 공부를 받은 후 1992. 5. 19 영세(세례)를 받았다. 교리와 영세는 대학교수 + 기업인 + 전문가 등 22명이 함께 받았다.

이명수 담당관의 세례명은 ‘그레고리오’요, 나의 세례명은 ‘빈첸시오’다.

영세식에는 당시 경갑룡 주교님, 유흥식 충남도청 가톨릭 신자 모임 지도 신부님(현재 추기경, 로마 성직자성 장관)께서도 참석하셨다. 차제에 대전 가톨릭 대학교 설립 인가에 대해서 남기고 싶은 말이 있다. 천주교는 교구별로 성직자(신부)를 양성 배출하는 신학대학교를 설립 운영하고 있다.

대전교구도 1989년 로마 교황청으로부터 신학대학교 설립 인가를 받아 학교 신축에 들어갔고 1992년 하반기에는 인가를 받아야 1993. 3월 신입생 모집을 할 수 있는데 교육부가 선뜻 설립 인가를 내주지 않고 차일피일 미루고 있었다. 대전 교구에서는 이미 신입생 모집을 공지한 상태로 몸이 달아오를 수밖에 없었다.

경갑룡 주교께서 심대평 국무총리 행정조정실장께 당부하여 심 실장은 교육부 장관께 신속하게 설립인가를 해주도록 부탁하였다.

이런 가운데 이명수 담당관은 수차례에 걸쳐 교육부 국장, 과장을 찾아가 대전 가톨릭대학 신축 현장을 직접 방문하여 건축상황 진도를 확인하고 인가 여부를 판단해달라며 설득 노력을 기울였다.또한, 천주교 대전교구청사는 대전광역시에 위치하여 수십년간 운영해오던 중 30년 전 성직자(신부) 수가 100명 수준이었다면 현재는 400명에, 신도 수도 33만 명으로 크게 늘어나는 등 교세가 확장되어 교구 청사 신축 이전의 필요성이 절실하였다.

2019년 4월 공사에 착공, 2020년 11월 준공하였다.

이 같은 과정에 그 당시 이명수 그레고리오 국회의원께서 세종시청과 채널을 가동하여 교구청사의 원만한 신축이 이루어지도록 크게 힘쓴 바가 있다. 참으로 감사한 일이다.

이명수 의원께 (가칭) ‘겸손과 인간관계’에 대한 저술(著述)을 권유하고 소망해본다.

김 용 교(前 충남도정책기회관/前 아산시 부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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