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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규용 교수 |
▲최근 유럽의 재정과 정치 상황은 복지국가의 지속가능성에 중요한 질문을 던진다. 프랑스는 국가채무와 재정적자가 확대되는 가운데 연금개혁과 예산을 둘러싼 갈등을 겪고 있다. 이를 두고 일각에서는 '복지천국의 실패'라고 말한다. 그러나 재정의 어려움을 복지 탓으로만 돌리는 것은 성급하다. 성장 둔화와 누적된 부채, 조세와 지출 구조, 정치적 합의의 어려움이 복합적으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복지는 비용인 동시에 건강과 생활안정, 사회적 신뢰를 지탱하는 기반이다.
유럽의 경험에서 주목해야 할 것은 복지의 실패 여부가 아니라 변화하는 경제·사회적 여건 속에서 국가의 약속을 어떻게 지속할 것인가라는 문제다.
▲우리나라의 상황은 국가채무와 가계부채라는 두 가지 과제를 안고 있다. 유럽의 일부 국가가 높은 국가채무와 재정적 부담에 직면해 있다면, 한국은 장기적인 국가채무 증가 가능성과 함께 주택담보 대출 등으로 높은 가계부채를 안고 있다. 국가의 재정 여력뿐 아니라 국민의 실제 부담능력까지 살펴야 하는 이유다.
▲인구구조의 변화는 미래세대의 부담을 더욱 불확실하게 만든다. 저출생과 고령화로 연금과 의료, 돌봄 수요는 증가하지만 이를 뒷받침할 생산가능인구는 감소하고 있다. 여기에 주택금융을 중심으로 형성된 가계부채는 국민의 소비와 생활안정을 제약할 수 있다. 현재의 복지 약속을 뒷받침할 재원이 부족하다면 미래세대는 더 높은 세금과 사회보험료를 부담하거나 다른 공공투자의 축소를 경험할 수 있다. 국가의 재정 부담과 국민의 가계 부담이 함께 커질 때 사회적 불안도 깊어질 수 있다.
그렇다고 복지를 단순한 비용으로만 볼 수는 없다. 건강과 교육, 자립을 지원하는 복지는 미래사회의 생산성과 안정성을 높이는 사회적 투자이기도 하다. 중요한 것은 복지의 확대와 축소가 아니라, 어떤 복지를 누구를 위해, 누구의 부담으로 지속할 것인가라는 질문이다.
▲복지의 불확실성보다 더 경계해야 할 것은 정치적 불신이다. 복지의 혜택은 당장의 성과로 내세우면서 비용과 책임은 뒤로 미룬다는 인식이 쌓이면 국가의 약속도 의심받는다. 반대로 재정건전성만 앞세워 복지의 가치를 외면해도 신뢰를 얻기 어렵다. 복지와 재정은 양자택일의 대상이 아니라 함께 지켜야 할 책임이다.
무엇보다 불확실성이 커지는 만큼, 사회적 책임에 기반한 리더십이 절실하다. 미래의 인구와 경제, 재정 여건을 정확히 예측할 수는 없지만, 그 불확실성을 국민에게 정직하게 설명하고 함께 대응할 책임은 국가에 있다. 국가 리더십은 당장의 정치적 유불리를 넘어 정책의 장기적 영향을 살피고, 서로 다른 세대와 계층이 수용할 수 있는 공정한 부담의 원칙을 마련해야 한다.
▲미래세대의 권리와 기회를 대변하는 것 역시 오늘의 국가가 감당해야 할 책임이다. 아직 태어나지 않은 세대는 오늘의 결정에 참여할 수 없지만 그 결과를 살아가야 한다. 장기재정 전망과 사회적 효과를 투명하게 공개하고, 국가와 가계의 부담능력을 함께 고려하며, 정권을 넘어 지속될 사회적 합의를 만들어야 한다. 정치적 리더십의 가치는 표를 더 얻기 위해 더 많은 것을 약속하는 데만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약속을 지킬 책임을 국민과 함께 나누는 데 있다.
유럽의 불안은 복지의 가치가 사라졌다는 증거가 아니다. 오히려 사회적 약속을 지탱할 경제적 기반과 정치적 신뢰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준다. 오늘의 복지는 미래세대에 부담으로 남을 수도, 더 나은 사회를 위한 자산이 될 수도 있다. 그 차이는 국가가 어떤 책임으로 제도를 운영하느냐에 달려 있다.
복지의 신뢰는 안녕하십니까? 이제 국가의 약속뿐 아니라 그 약속을 지탱할 국민의 삶과 미래세대의 부담까지 함께 물어야 할 때다.
/김규용 충남대 스마트시티건축공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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