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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도춘추]세월의 품격

임서령 목원대 교수

임서령 목원대 교수

임서령 목원대 교수

  • 승인 2015-05-06 14:17

신문게재 2015-05-07 18면

▲임서령 목원대 교수
▲임서령 목원대 교수
중국의 고대 초상화가들은 사람의 얼굴을 여러 가지 유형으로 나누고, 각종 얼굴의 특징을 종합 정리하여 그림을 배우는 이의 관찰능력을 발전시켰다.

또 중국의 전통화론에서는 사람의 두상을 그 특징에 따라 팔격(八格)으로 나누었는데, 팔격이란 전(田), 유(由), 국(國), 용(用), 목(目), 갑(甲), 풍(風), 신(申)을 말한다. 원나라 초상화가 왕역(王繹)이 '사진비결'(寫眞秘訣)에서 설명한 팔격은 다음과 같다.

“머리의 모양이 납작하고 네모난 것을 전(田)이라 하고, 위는 뾰족하고 아래가 모난 것을 유(由)라 한다. 사각의 네모난 얼굴을 국(國)이라 하고, 위가 네모나고 아래쪽이 큰 모양을 용(用)이라한다. 이와 반대로 위가 크고 아래쪽이 모난 것을 목(目)이라 하고, 아래가 갸름한 얼굴은 갑(甲)이라 한다. 광대뼈가 넓은 모양은 풍(風)이라 하고, 위가 갸름하고 아래가 뾰족한 것은 신(申)이라 한다.” 이른바 팔격이란 이러한 여덟 종류의 머리 윤곽의 기본형을 밝힌 것이다. 옛 동양화가들은 인물화를 그릴 때 이렇듯 사람의 기본형을 읽은 후 비로소 눈썹, 눈, 콧대, 입술 등의 부위를 확정하여 머리의 해부구조를 이해하였다.

이 팔격에 비추어 보면 요즘 현대인들은 남녀를 불문하고 모두 신(申)의 구조를 제일로 친다고 보아야겠다. 그들은 뼈를 깎는 아픔을 불사하며 성형을 통해 하나의 유형을 추종한다. 연예인들이야 그렇다 치고, 매학기 개강 때가 되면 여학생들의 얼굴이 완연히 달라져 있는 경우를 심심치 않게 접한다.

그런데 참 민망한 것은 개인적 견해로는 그 학생이 예전보다 더 예뻐졌다는 느낌이 결코 들지 않는다는 것이다. 요즘 여대생들은 헤어스타일도 자신의 얼굴형에 어울리는지 아닌지를 떠나 모두 긴 생머리를 하고 있어서, 멀리서 보아 풍채만 비슷하면 내가 아는 아무개인 줄로 착각하는 경우가 다반사다. 몰개성의 시대, 모두 예뻐졌다고 느끼는지는 모르나 멋진 개성녀가 없다.

특히 20~30대 연예인들의 얼굴에서는 개성이 완전히 사라진지 오래다. 그들의 이미지는 TV를 끄는 순간 기억 속에서 사라지며 형상 기억 속에 존재감이 없다. 중장년층도 마찬가지다. 현대 의술의 도움으로 너나없이 주름은 펴졌는지 모르지만, 그들의 모습은 늘 부종을 앓고 있는 듯 부풀어 있어서, 자연스러운 표정이 나오지 않으니 안쓰러운 마음마저 든다. 왜 주름 사이에 배어있는 연륜의 미, 품격 미를 생각하지 않는 것일까.

예전에는 곱게 나이 드신 할머니들을 뵈면 젊을 때 참 고우셨겠구나 싶은 분들이 계셨다. 그런데 요즘에는 그런 할머니들을 찾기 어려워졌다. 63세로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 보여 주었던 아름다운 행적의 오드리 헵번이 지녔던 깊은 주름, 40대 중반을 바라보는 영국배우 샤를로트 갱스부르(Charlotte Gainsbourg)나 60대 프랑스 여배우 이자벨 위페르(Isabelle Huppert)에게서 읽을 수 있는 자연스러운 세월의 품격을 우리는 왜 삭제하는 것일까. 그녀들은 우리에게 그녀들의 젊은 시절을 떠올리며 아쉬워할 만한 틈을 주지 않으며 자신들의 나이든 아름다움을 품격으로 드러낸다. 그래서 그녀들의 현재는 늘 아름답고 멋지다.

우리는 시간만이 줄 수 있는 것에 대한 진가를 너무 간과하며 산다. 시간이 걸려야 나오는 곰삭은 장맛의 미감, 세월이 만들어 낸 목재나 종이의 색감, 시간의 발자국이 만들어낸 숲길의 여유, 얼굴의 생김새도 이와 다르지 않다.

오랜 세월이 만들어낸 깊은 주름의 품격은 억만금을 주어도 만들어낼 수가 없다. 이제 나이가 들수록 오롯이 자신의 색깔을 드러낼 결정체가 되기 위하여, 그 색깔에서 격조 있는 향기까지 맡을 수 있는 사람이 되기 위하여, 팔격의 개성을 자랑하며 철든 사람처럼 품격의 세월을 보태가는 것은 어떨까 한다.

임서령 목원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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