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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역사]3월17일:1970년 '그 여인' 정인숙

김은주 기자

김은주 기자

  • 승인 2016-03-16 16:42

1970년 한 여인의 죽음이 호사가들의 입에 오르내렸다.

46년 전인 3월 17일 밤 11시께 서울 마포구 절두산 인근 강변도로에 세워진 차에서 총성이 울렸다. 소리가 난 코티나 차량에는 26세 여인이 총상을 입고 피를 흘리고 있었으며 한 남성은 넓적다리를 관통당하는 상처를 입었다. 지나가는 택시기사의 도움으로 남성은 목숨을 구했지만 여성은 끝내 사망하고 말았다. 총을 맞고 죽은 여인은 당시 고급 요정 ‘선운각’ 출신의 정인숙 이었고, 부상당한 남성은 그녀의 오빠 정종욱이었다.

선운각은 삼청각, 대원각 등과 더불어 ‘밀실 정치’의 상징이었던 곳으로 정인숙은 선운각에서 접대부로 일했었다.

고급 요정의 접대부가 총을 맞고 죽었다면 치정과 관련된 살인 정도로 넘길 수 있는 사건이었다. 그러나 수사과정 중 그녀의 빨간 가방에서 수두룩하게 나온 사회 저명인사의 이름과 전화번호가 죽음이 평범한 것이 아니라고 말하는 듯 했다.

사건은 서울지검 공안부에 맡겨졌고 검찰은 사건 1주일 뒤 오빠 정종욱씨를 범인으로 지목했다. 살해 동기가 정인숙의 문란한 행실을 지적하다가 서로 폭언이 오가는 와중에 살해한 것으로 발표됐다. 정인숙이 그 충고에 심한 폭언을 하자 동생을 살해하고 자신을 쏴 강도당한 것처럼 위장하려 했다는 것이다. 검찰은 정종욱 단독범행으로 배후가 없다고 강조했지만 믿는 사람은 많아 보이진 않았다.

그리고 소문은 더 산더미가 됐다. 바로 정인숙의 세 살 난 아들이 권력층의 자식이라는 이야기가 떠돌기 시작했다. 당시 정일권 총리에서부터 최고 권력자였던 박정희 대통령의 이름까지 오르내리면서 의심을 샀다. 야당인 신민당에서 의혹을 제기 했고 박 대통령은 정 총리를 자리에서 떠나게 하는 것으로 마무리를 지었다.

한 여인의 죽음은 그렇게 수면 아래로 내려가는 듯 했지만 아이의 아빠에 대한 세간의 관심은 수그러들 기미가 없었다. 국민들의 호기심은 ‘사랑은 눈물의 씨앗’이라는 나훈아의 노래를 개사해 부르면서 급속하게 퍼지기도 했다.


"아빠가 누구냐고 물으신다면/ 청와대 누구라고 말하겠어요.

만약에 그대가 나를 죽이지 않았다면/ 영원히 우리만 알았을 것을…"


진실은 그녀의 죽음과 함께 묻혔다. 권력의 끝에 그녀의 죽음이 있었다는 의혹만을 남긴 채 역사의 물결 속으로 흘러갔다./김은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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