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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충식 문화칼럼] 박근혜 신데렐라 이야기가 지겹다

최충식 논설실장

최충식 논설실장

  • 승인 2016-11-30 11:14

신문게재 2016-12-01 22면


▲ 최충식 논설실장
▲ 최충식 논설실장
12시는 마법으로 통하는 시간이기도 하다. 현대인에게 밤 12시는 애매한 시간이다. 휴대폰 알람 설정할 때 오전인지 오후인지 몰라 11시 59분으로 맞춘다. 자정 1초라도 지나면 12 a.m.(오전)이고 정오 1초라도 지나면 12 p.m.(오후), 이렇게 외워봐도 닥치면 헷갈린다. 국민의 의식과 딴판인 동어반복 수준의 박근혜표 시계 맞추기는 훨씬 더 헷갈린다.

이번에는 4차원의 공을 던졌다. 요약하면 “나 물러나게 하려면 개헌해서 임기 단축을 하든지”이다. 조건 없는 하야가 아닌 '조건부 조기 퇴진'이다. 애매한 민심은 11시 59분에 시간을 맞춘다. 12시는 그러고 보니 신데렐라 마법을 위한 시간이었다. 대통령이 아닐 적부터 '박근혜'라는 이름은 신데렐라를 자주 소환하게 한다. 검찰 출두 때 벗겨진 '순데렐라' 최순실의 72만원짜리 프라다 신발이 그랬고, 대통령이 사랑한 신데렐라주사(치옥트산주)도 그랬다. 국민이 입을 다물지 못하는 국정 농단 혐의가 양파껍질 벗기듯 드러나는데 “사익 안 챙겼다”는 상황 인식도 그렇다.

연속극을 무척 즐기는 박근혜 대통령은 인생 자체가 드라마 같고 신데렐라 이야기 같다. 남자 한 번 잘 만나 인생 역전한 원본 텍스트와 뭔가 다른 신데렐라를 기대한 건 국민 잘못이었다. 원하는 대로 개헌 논의가 길어져 황금마차와 벗겨진 신발, 그런 것만 희미한 잔상으로 남기를 바라는 것일 게다. 차라리 세상의 수많은 아류작 신데렐라 중 제임스 가드너의 새 버전으로 끝난다면 어떨까. 밤 12시가 되자 파티복과 구두가 사라지고, 속옷 바람에 맨발로 춤추는 신데렐라를 따라 여자들이 떼춤을 추는, 왕자 만나 팔자 고치는 텍스트를 부정하는 이야기 같은 것 말이다.

다른 점도 있지만 박근혜·최순실 국정 농단은 신라 진성여왕과 묘하게 패턴이 닮아 있다. 진성여왕에게 그녀가 사랑한 작은아버지 위홍이 있었다. 그런데 진성여왕은 실정과 문란에 책임지고 조건 없이 왕위를 버렸다. 위홍을 비롯해 신돈, 장녹수, 진령군, 십상시, 라스푸틴 등 역사적 비선 실세들이 21세기 대한민국에 실재한다. 전 세계가 주목한 희대의 막장 드라마는 100년 뒤, 1000년 뒤까지 미학적 충격으로 덧칠한 드라마나 영화 소재가 될 것이다.

3차 담화를 다시 한 번 돌려보니 신데렐라 스토리가 신데렐라 자작극인지부터 의심해봐야 할 것 같다. 실제로 2008년 4·9총선에서 친박 진영의 약진은 박근혜=신데렐라, 이명박=계모 이미지 각인 때문이라는 뒷이야기가 있었다. 그때 그랬듯이 국민과 대통령 간 싸움을 정치권으로 옮겨서 핍박받는 재투성이 이미지를 띄우려 했다면, 그걸로 '왕자'의 연심을 자극하려 했다면 영악한 신데렐라다. “더 밝혀질 필요 없다. 이미 충분하다. 뭐한 말로 야동까지 나와야 하느냐”(정두언) 할 만큼 탄핵 사유는 차고 넘친다. 국회 이간질과 시간 끌기 술책은 11시 59분에 신발 한 짝을 슬쩍 벗어놓은 신데렐라의 트릭일 수 있다.

정해주면 물러난다, 그냥은 안 물러난다는, 이상한 공을 던진 대통령은 탄핵 시계를 막아서며 마법의 12시라는 시간 제약을 희롱하지만 단 한 장 남은 카드는 퇴진이다. 정해달라고 말한 임기 단축의 '법적 절차'는 탄핵임이 확실해지고 명백해졌다. 동화 속 밤 12시의 시간 설정은 마법이며 마법은 반드시 풀린다. 문제를 도맡아 해결해줄 요술할머니도, 신발 한 짝 주워 구원해줄 왕자도 없다. 그보다는 대한민국의 헌정질서 회복이 급하다. 망설이지 말고 최순실 기획, 박근혜 주연의 신데렐라 이야기를 결말짓는 것이 그 첫 단추다.

최충식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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