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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복만땅] 전세계에서 가장 많은 성씨는? 이씨

[원종문의 오복만땅] 85.이씨

김의화 기자

김의화 기자

  • 승인 2018-02-04 10:19
이순신 1
충무공 이순신 장군
이씨(李氏)는 우리나라에서는 두 번째로 많은 성씨이고, 인구가 많은 중국에 이 씨가 많기 때문에 세계 전체로는 이 씨가 가장 많은 성씨가 된다.

김 씨가 우리나라 인구의 20%를 차지하고 이씨(李氏)는 우리나라 전체 인구의 15%를 차지하는 두 번째로 많은 성씨가 된다. 김 씨와 이 씨를 합하면 우리나라 인구의 35%이니까 우리나라 사람의 세 명중에 한명은 김 씨 아니면 이 씨가 되는 셈이다.

우리나라에선 김 씨가 더 많으나 전 세계에서는 가장 많은 성씨가 이씨(李氏)이며 중국과 화교를 합쳐서 일억 명 이상이 이 씨를 성으로 쓰고 있다. 이 씨의 본관은 550 여 가지이며 우리나라에서도 백 여 가지에 이르고 약 700만 명에 이르는 이 씨가 살고 있다.



김씨(金氏) 성이 신라계열과 가야계열이 있고, 임금에게서 하사받은 김해김씨가 있듯이, 이씨 성에도 각각 조상이 다른 여러 이 씨들이 있다. 이 씨도 경주계열의 이 씨와 전주계열의 이 씨로 구분되지만 전혀 다른 계통의 이 씨도 있다.

신라 여섯 부족중의 하나인 이알평(李謁平)을 시조로 하는 경주 이 씨 계열과 중국에서 우리나라로 와서 우리나라에 귀화한 이 한(李 翰)을 시조로 하는 전주 이 씨 계열이 있으며 그

밖에도 연안 이씨, 고성 이씨, 상산 이씨, 안성 이씨, 태안 이씨, 평산 이씨, 원주 이 씨 등은 월남계통의 이 씨이다.

김 씨 중에 김알지(金閼智)의 후손인 경주 김 씨 중에서 갈라져 나온 광산(光山)이 씨가 있으며, 가야국의 김수로왕 계통의 모성(母姓)인 김해 허씨(許氏)로부터 갈라져나온 인천 이 씨도 있다. 그뿐만 아니라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은 성씨인 김 씨는 쇠금(金)자 김씨(金氏)하나뿐이나 이 씨는 이 씨(李氏)외에도 이 씨(異 氏) 도 있으며, 이 씨(伊 氏)도 소수이지만 존재한다.

이 씨의 주요본관으로는 경주이씨, 전주이씨 외에 연안이씨, 광주이씨, 전의이씨, 한산이씨가 있으며, 덕수 이씨, 용인이씨, 여주이씨, 성주이씨 등이 있으며 일본이 우리나라를 강제 침략한 임진왜란 때 나라를 구한 충무공 이순신 장군은 덕수 이 씨이다.

중국에 이 씨가 아주 많은데 "장삼이사(張三李四)"라는 고사 성어 가 전해질 정도로 이씨가 많다. 장삼이사란 말은 일반 백성들 중에 장 씨가 셋이면 이 씨는 넷이란 말이다.

중국의 성씨는 이 씨가 가장 많고 두 번째는 왕 씨가 많으며, 장 씨가 세 번째로 많은데 그러면 왕 씨가 셋이면 이 씨가 넷이므로 왕삼이사(王三李四)라고 해야 옳으나 왕삼(王三)은 왕이 셋이라는 듯도 되므로 역모의 의미도 있고, 왕에 대한 불충이 되어서 장삼이사라는 고사성어가 성립되게 되었다.

하여간 이 씨는 중국에서 가장 많은 성씨이고, "이세민"을 비롯하여 수많은 이 씨가 왕을 하였으며 처음 이씨(李氏)성을 쓴 것은 도덕경(道德經)을 저술한 노자(老子)로부터 시작되었다고 하는데 노자의 이름이 "이 이(李 耳)"였으며 우리나라에서는 신사임당이 노자를 훌륭한 성인으로 생각하여 아들을 낳아 이름을 노자의 이름 "이 이(李 耳)"를 본 따서 이(耳)자에 임금 왕(王)자를 더하여 "이 이(李 珥)"로 이름을 지었는데 "이율곡"의 이름인 것이다.

이씨(李氏)의 이(李)자는 중국의 노자(老子)로부터 처음 시작되었는데 노자가 오얏나무 밑에서 태어나서 오얏 이(李)자를 성씨로 쓰게 되었으며, 오얏나무는 요즈음말로 자두나무를 말한다.

중국의 고서인 "사기정의(史記正義)"에 "현묘내편(玄妙內篇)"에서 기록하기를 "노자의 어머니가 노자를 임신하고 81년 동안 임신한 상태로 있었는데 자두나무아래를 지나다가 왼쪽 겨드랑이를 갈라서 노자를 낳았다"고 기록하여 전해진다.

또한 81년 동안 임신해서 낳은 노자는 태어날 때부터 백발이 성성하고 얼굴에 주름투성이인 노인(老人)의 모습이어서 노자(老子)라고 불렀다한다. 그리고 태어날 때부터 귀가 특별히 커서 "귀이( 耳)"자를 이름으로 써서 "자두나무 아래서 낳은 귀가 큰 아이"라는 뜻으로 노자의 이름이 "이 이(李 耳)로 부르게 되었다고 전해진다.

은나라 말기에 집안대대로 대리(大理)라는 관직을 오랫동안 해 와서 이(理)라는 성씨를 얻게 되었는데 이징(李懲)의 아내가 난리를 피해 달아나다가 자두를 따먹고 목숨을 부지하게 되어 고마운 마음에 아들을 낳자 성씨인 이(理)자를 자두나무를 뜻하는 이(李)자로 바꾸어서 이름을 이이정(李利貞)이라고 한 것이 이씨(李氏)의 시초라는 설도 전해진다.

이러한 이야기들은 중국 최고의 시인 이백(李白)의 집에도 도리원(桃李園)이라는 정원이 있고 이 씨가 세운 왕조 당나라의 황궁 뜰에도 자두나무가 유난히 많아 전해지는 이야기라고 볼 수 있는 것이다. 제갈량도 서남지방의 소수민족을 평정한 다음 그들에게 조씨, 장씨, 양씨, 이씨 등 성씨를 하사하였으며, 선비족 중에서도 한족이 된 이후에 성씨를 바꾼 경우가 많은데 이들은 낙양이씨가 되었다.

대체로 이씨(李氏)의 시초는 이징의 아들인 이이정(李利貞)으로부터 시작되었고 이이정의 후손 노자(老子) 이이(李耳)로 이어져 오다가 당나라 황실을 비롯해서 12개의 정권을 이어오면서 약 60여명의 왕을 배출하였고 우리나라에서도 이성계로부터 오백년간 이씨 왕조가 이어 내려왔으니 중국의 역사도, 우리나라의 역사도 이씨(李氏)의 역사가 된 것이나 다름없다.

우리나라에서는 경주이씨가 가장 오래된 본관이고 성씨이며 시조가 되는 "이알평(李謁平)"은 서력 기원전 117년 에 태어나서 신라의 여섯 부족 중에서 지금의 양산지역인 급량부에서 촌장을 지내며 박혁거세를 왕위에 추대한 인물이라 한다.

삼국사기(三國史記)나 삼국유사(三國遺事)에 전해지는바에 따르면 알천 양산촌은 서기32년에 유리왕 9년에 신라 6촌을 6부로 개편하고, 이름을 고칠 때 급량부가 되었으며, 여섯 부장(촌장)들이 박혁거세를 왕으로 추대하여 신라개국공신이 되었으며, 이때 유리왕으로부터 이씨(李氏)성을 하사 받았다고 한다.

전주이씨는 신라 때 사공(司空)벼슬을 지낸 "이 한(李 翰)"이 시조이며 조선을 건국한 태조 이성계(李成桂)는 이한(李翰)의 22세손이라고 전해진다.

원종문 명인철학원 원장
원종문-명인철학관-원장
원종문 명인철학원 원장은 한국동양운명철학인협회 이사, 한국작명가협회 작명시험 출제위원장, 국제뇌교육대학원 성명학 교수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연세대 명리학 전문과정과 경희대 성명학 전문과정을 수료했습니다. '이름 전문가'로 활동하며 '한국성명학 총론', '명학신서', '이름과 성공' 등의 저서를 발표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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