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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동길의 문화예술 들춰보기] 벌초하며, 자연과 문명

양동길 / 시인, 수필가

김의화 기자

김의화 기자

  • 승인 2019-09-06 00:00
걱정도 팔자다. 예초기 칼날이 돌에 부딪혀 불꽃이 튀자 화염에 휩싸인 아마존 밀림이 떠오른다.

순전히 사람 기준이지만, 초목이 있어야 할 곳을 벗어나면 잡초나 잡목이 된다. 자연 숲이 문명 숲으로 바뀐 까닭이다. 문명이 자연을 끊임없이 침해한다. 자연은 자연대로 숨쉬기를 희망한다. 무조건 개발할 일도 보호할 수도 없는 일이다. 조화롭게 어울림으로 공존하여야 한다. 문명으로부터 자연이 보호되어야 우리 생활이 쾌적해지고 풍요로워진다. 자연과 문명, 구분이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다.

자연은 자정 능력이 있다. 그 자정 능력을 상실해 가는 것이 문제다. 자정 능력이 훼손되지 않는 지구의 적정인구가 400만이라는 주장도 있다. 최대로 높여 산정하더라도 1억 명을 넘지 않아야 한다고 한다. 현실은 어떤가? 2019년 7월 기준 77.166억 명이 살고 있다고 한다. 가히 지구는 만원이다. 환경론자들은 오래전부터 폭발적인 인구 증가를 염려해 왔던 바다. 기후변화 중심에도 인구문제가 있기 때문이다.



지구의 허파라고 불리는 아마존유역이 산불로 세계적 이목을 집중시키고 있다. 8월 초부터 시작된 불이 진정 기미를 보이지 않는 모양이다. 볼리비아와 파라과이 등 이웃 국가로 불길이 번지며, 남미 대부분 지역이 연기와 화재 열기로 공포에 휩싸여 있다고 전한다. 이미 서울시 15배 되는 면적인 9500㎢가 화염에 휩싸였다. 남미 문제로 국한되는 것이 아니다. 지구 전체의 기후변화에도 영향이 미칠 기세다. 따라서 강 건너 불구경하듯 해서도 안 될 일이다.

남미는 오래전부터 경고를 받던 지역이다. 유럽의 육류 공급처인 아메리카가 초지 조성을 위해 아마존 숲을 불태워 야금야금 밀림을 잠식해 들어간다는 것이었다. 최근엔 중국도 육류소비가 많아져 대량의 콩을 미국으로부터 수입, 사료로 사용해 왔다 한다. 미국과 중국 무역갈등으로 중국이 수입 다변화를 도모하게 되었고, 그 대상 중 하나가 브라질이 되자, 아마존 밀림을 경작지로 만드는데 가속도가 붙었다는 것이다.

비슷한 유형의 산림 훼손이 세계 도처에서 벌어져 왔다. 사람이 사는 곳은 다르지 않다. 특히 1990 ~ 2015년 사이 동남아시아에서도 밀림의 71%가 사라졌다는 보고가 있다. 이유는 좀 다르다. 기름야자 나무를 통해 팜유(palm oil) 얻기 위한 것이었다. 숲이 농장으로 바뀐 것이다. 식용, 향수 등 다양한 용도로 쓰여 경제적 이득을 안겨주었지만 숲은 회복되기 어려운 상처를 입었다.

국제사회의 바람은 지구 허파가 잘 보전되는 것이었다. 브라질에 파리기후협정 준수를 요구해 왔다. 브라질은 개발이익 때문에 소극적이었다. 대형산불로 국제사회가 관리부실을 비판하자 브라질 정부는 '주권 침해'라고 반발했다. 국제적 관심 사항이지만, G7의 산불 진화 지원 제안도 거부했다. 내정간섭 부담에 다른 나라 역시 진화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못했다. 도움의 손길조차 외면하면서 산불이 더욱 확대되었다. 얼마나 오랜 기간, 얼마나 많은 숲이 화마에 시달릴지 예측이 어렵다는 전갈이다.

인간사 모두 상충 되는 경우가 많다. 브라질 보고 자국의 이익을 버리라 할 수 없는 일이다. 인류 공존의 숨통을 끊으라고 할 수도 없다. 어느 것이 정답일까? 지금이라도 문명이 미치지 않은 부분은 자연 그대로 두어야 하지 않을까?

숲속에 묘지가 있다. 산 아래 곳곳에 차들이 주차되어있고, 예초기 돌아가는 소리가 초가을 햇살을 맞는다. 벌초하는 중이다. 처서가 지나면 풀이 더 이상 자라지 않아 논두렁이나 산소의 풀을 깎는다. 조상의 묘를 정리하는 풍습이다. 봄에는 한식, 가을에는 추석 무렵이 된다. 백중인 음력 7월 15일경부터 추석인 8월 15일 사이 가을 벌초를 한다. 집안에 따라 더 자주 깎아 주기도 한다. 필자같이 게으른 사람은 그리하지 못하나, 일반적으로 잡풀 없이 잔디가 잘 자라기를 소망하기 때문이다. 묘지뿐이랴, 사람 손길이 닿은 곳은 항상 깨끗하게 정리해 놓는다.

일가친척이 한자리에 모여 벌초만 하는 것은 아니다. 함께 일하는 즐거움이 있다. 조상을 기리고, 조상이 배려해준 은덕으로 서로의 안부를 묻고 소식을 전하며 행복을 나누는 만남의 장이다. 꼭 필요한 문화이기도 하다. 그런데 머지않아 사라질 문화이다.

장묘문화도 많이 바뀌고 있다. 국토가 모두 묘지로 바뀔까 두려운 모양이다. 면적도 제한되어 있다. 봉분 기간도 한정되어 있다. 물론, 한정하지 않아도 봉분은 자연으로 돌아간다. 매장이 아예 사라진다. 존재에 대한 이해가 수반되어 법이 계속 진화하고 있다. 흙에서 와서 흙으로 가는 것은 퍽 자연스러운 일이다.

양동길 / 시인, 수필가

양동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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