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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하추동] 기승전(起承轉), 다음은 선거?

김유진 기자

김유진 기자

  • 승인 2020-01-21 16:23

신문게재 2020-01-22 22면

김호택
김호택 삼남제약 대표.
살면서 빚을 지지 않고 살기는 어렵다. 비단 금전적인 부채 말고도 인간적으로 얽힌 빚을 지지 않고 살 수는 없다. 진 빚을 다 갚아가며 살기는 더욱 어렵다.

10년 전 대전과 충남의 남부 지역을 아우르는 국제로타리 3680지구 총재를 역임하면서 함께 고생하면서 지구의 커다란 살림을 맡아준 많은 회원들에게 큰 빚을 졌다. 그 덕분에 그런대로 나쁜 평판은 면할 수 있었고, 총재 임기 후에 국제로타리의 임원으로 지금까지 10년 가까이 활동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할 수 있었다.

안타깝게도 젊은 나이에 먼저 하늘로 떠난 김현옥 사무총장과 친 형님같이 뒤에서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 주었던 정해천 재무국장의 신세를 가장 많이 졌다. 정해천 국장이 금산군 체육회장 선거에 출마를 결심했다고 하기에 그 빚을 조금이라도 갚을 수 있을까 하는 기대로 선거판을 들여다보게 되었다. 이미 5-6년 전에 지자체장 선거에 조금 발을 들여 놓았다가 많은 실망을 한 적이 있기에 다시는 선거는 바라보지도 않겠다고 생각했지만 작은 고장에 살다 보니 뜻대로 되지 않았다.



대의원 100여 명이 투표권을 가진 작은 선거였지만 선거는 역시 선거였다. 많은 유언비어가 돌아다니고, 앞에서는 돕겠다고 했지만 뒤에서 다른 생각을 갖고 있는 사람들도 여럿 보았다. 그렇지만 그 사람 입장에서 생각해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한 동네에서 평생 얼굴 보며 살 사람들인데, 나와는 직접적인 관계도 없는 선거로 척을 질 이유가 없으니 당신을 지지하지 않는다는 내 생각을 드러내서 얼굴 붉히기 보다는 '좋은 게 좋은 것'이다.

우여곡절 끝에 열흘간의 선거운동 기간을 거쳤고, 내가 지지한 정해천 후보가 당선되었다. 보람은 있었지만 크게 기쁘지는 않았다. 낙선한 후보와도 개인적으로 가까웠기 때문이다. 지역의 체육회장을 지자체장이 당연직으로 맡고 있다가 민간인이 맡아야 한다고 법이 바뀌어서 만들어진 선거였다. 법이 바뀐 이유는 잘 모르겠다. 선거를 치르고 나니 크고 작은 부작용과 뒷 얘기들이 돌아다녔기에 승리했음에도 불구하고 '선거 없이 임명하는 제도가 더 낫지 않았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대전과 같은 대도시라면 모르겠지만 한 다리만 건너면 모든 주민들을 다 알 수 있는 인구 5만 조금 넘는 작은 고장에서 선거를 통해 맺어지는 인간관계는 아군과 적군을 가르는 편가르기일 뿐이다. 그리고 그 후유증이 상당히 오래 가는데 조금 잊힐 만하면 또 다른 선거가 기다리는 시간들이 지방자치제 시행 이후 20여년 간 계속 반복되는 것을 보아 왔다.

선거는 최선의 방책이 아닌 차악(次惡)일 뿐이라는 사실을 다시 한 번 확인했다. 지역구 국회의원이 TV에서 주로 얼굴을 보이다가 북 콘서트와 주민설명회를 한다는 문자를 보내왔다. '다시 선거의 계절이 돌아왔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태평성대로 알려진 요순시대에 지어졌다고 알려지는 격양가(擊壤歌)는 '내가 살 만 하니 황제가 누구인지 알 필요 없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살 만한 세상이라면 대통령이 누구인지, 시장·군수가 누구인지 알 필요 없는 그런 세상이라야 하지 않을까? 편이 갈려서 선거에 목숨 거는 사람, 세력을 불려 '우리가 남이가?' 하는 사람들을 모아 이권을 독점하려는 사람들이 많아지면서 세상이 더 어려워지는 것은 아닐까? 거꾸로 세상이 어지럽고 살기 힘든 사람들이 많으니 선거를 통해 세력을 확장하고 이익을 '우리' 것으로 만들려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일까?

여러 사람들이 한 자리를 놓고 다툴 때 선거라는 방식이 가장 승복할 수밖에 없는 제도이다. 나도 잘 알고 있다. 다만 선거를 통해 이루어지는 편가르기와 지역사회의 어려움이 안타까워 중얼거린 것뿐이다. 다행스럽게도 선거법은 대단히 엄격한 규정을 제시하고 있다. 이 규정에 따라 페어 플레이를 한다면 선거 후의 부작용을 많이 줄일 수 있을 것이다. 이번에는 우리를 실망시키지 않을 많은 좋은 인재들이 페어플레이를 통해 정치권에서 활동할 수 있는 선거가 되기를 바란다.
김호택 삼남제약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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