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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 때 아닌 원피스 논란(2)

김시내 기자

김시내 기자

  • 승인 2020-08-12 10:54
  • 수정 2020-08-12 13:53

신문게재 2020-08-13 18면

김시내
거무튀튀한 정장 차림 속 붉은색 원피스가 눈에 들어왔다. 92년생 국회의원 류호정의 등장이다. 내로라하는 연륜의 선배들 틈에서 햇병아리 초선의 깜찍한 반항(?)이 놀라울 만도 하다. 게임BJ 경험·비례대표·최연소 의원 등 범상치 않은 타이틀에 이래저래 보는 눈도 많을 터인데. 어쩌다 문제의 그 옷을 입고 출근하게 됐을까. 사실 류 의원은 반바지나 청바지 등 캐쥬얼한 차림으로 출근한 적이 꽤 있다. 튀는 색감 때문인지 이번에 유독 더 화제가 된것 뿐이다. 의도했던 이벤트라고는 하지만 성희롱성 질타까지 쏟아질 거라고는 예상치 못했을 수도 있다. 아무튼 이렇게 긁어 부스럼(?)을 만들어 전달하고 싶었던 메시지는 뭘까. 단언컨대 그 원피스는 사회를 비판하는 상징적인 도구로 잘 작용했다.

한 의원은 "국회의 지나친 엄숙주의, 권위주의를 깨줘서 고맙다"며 류 의원의 당찬 행보를 옹호했다. 핵심은 정확하게 거기에 있었다. 국회는 소수의 좀 배운 사람들이 모여 무게잡는 장소가 아니다. 나라 전반에 걸친 정책을 마련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다양성이 허용돼야 하는 공간이다. 자유롭고 공평한 발언의 장 이어야 한다. 지위고하, 세대, 여야를 막론하고 말이다. 어쩌면 그날의 원피스는 이른바 정치의 고수들이 판을 치는 그 곳에서 살아남기 위한 초선 의원의 묘수가 아니었을까?



국회법에 '권위'는 없다고 한다. 의원으로서의 품위를 유지해야 한다는 조항만 있을 뿐이다. 품위는 존경할만한 인격이다. 인격은 그 사람의 겉치레로 대변되지 않는다. 언행 그 자체다. 옷 차림을 놓고 왈가왈부 하기보다는 동료들에게 종잇장을 뿌리고 언성을 높이는 등의 거친 정치 문화를 바꿔야 할 때다. 투쟁이 아닌 토론에서 진정한 '격식'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국회에는 '양복 출근'이라는 규정이 없다. 그저 관행이다. 양복은 남성 중심의 집단을 떠올리게 하는 대표적인 의복이다. 그 집단의 다수가 오래전부터 입어왔기 때문에 익숙한 것 뿐이다. '원피스 출근'은 원칙적으로 틀리지 않았다. 하지만 고수해왔던 틀에서 벗어났다는 이유만으로 논란거리가 됐다. 때로는 규칙보다 암묵적인 분위기가 더 무서울 수 있는 이유다. 좁게는 집단, 넓게는 사회 속에 자리 잡은 고루한 문화는 단기간에 바뀌지 않는다. 화이트 칼라, 블루 칼라처럼 직업군을 계급으로 규정짓는 상징성이라든지 선민의식은 사라져야만 한다.

최근 류 의원은 국회 회관 곳곳에 노란 대자보 100장을 붙였다. '비동의 강간죄' 법안 통과 호소문이다. 비동의 강간죄란 강간의 정의를 폭행과 협박으로 한정하지 않고 상대방의 동의 여부와 위계와 위력으로 확장하는 것이다. 가까스로 발의 정족수인 10명은 채웠지만 입법 과정에서 더 많은 의원들의 관심이 필요하다. 원피스로 받은 스포트라이트가 그가 '하는 일'까지 비춰주기를 바란다.

편집 2국 김시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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