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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버라이프]절영지회(絶纓之會)

현옥란 기자

현옥란 기자

  • 승인 2020-10-29 09:00

신문게재 2020-10-30 11면

강충구 (2)
강충구 명예기자
춘추시대 중국 초나라 장왕의 일화에서 만들어진 '절영지회(絶纓之會)'라는 고사성어가 있습니다.

장왕이 나라의 큰 난을 평정한 후 공을 세운 신하들을 치하하기 위해서 연회를 베풀었습니다.

신하들을 아끼던 장왕은 이 연회에서 자신의 후궁들이 시중을 들게 했습니다.



연회가 한창 진행되던 중, 갑자기 바람이 불어서 연회장의 촛불들이 일순간에 꺼졌습니다.

그 순간 한 여인의 비명이 앙칼진 목소리로 크게 외쳤습니다. 어둠을 틈타서 누군가가 자신의 가슴을 만졌고, 자신이 그 자의 갓끈을 뜯어 두었으니 장왕께서는 어서 불을 켜서 그 무엄한 자를 처벌해 달라는 내용이였습니다.

자신의 후궁을 희롱한 무례한 신하가 괘씸하고 자신의 위엄이 희롱당한 것 같은 노여운 생각이 들 수도 있었겠지만 그 순간 장왕은 큰 소리로 다음과 같이 이야기합니다.

"이 자리는 내가 아끼는 이들의 공을 치하하기 위해서 만든 자리이다. 이런 일로 처벌은 온당치 않으니 이 자리의 모든 신하는 내 명을 들어라! 지금 자신이 쓰고 있는 갓의 끈을 모두 잘라 버리도록 해라! 지금 이 자유로운 자리에 후궁들을 들게 한 나의 경솔함에서 빚어진 일이니 불문토록 하겠다."

장왕은 먼저 후궁들의 마음을 다독여 연회장에서 내보냈고, 모든 신하가 갓끈을 자른 뒤에야 연회장의 불을 키도록 했으니 범인이 누구인지 확인할 수 없었고, 자칫하면 연회가 깨지고 한바탕 피바람이 몰아칠 수도 있는 상황이 가벼운 해프닝으로 넘어가게 되었습니다.

그 시대의 분위기에서 왕의 여인을 희롱한 것은 왕의 권위에 도전한 역모에 해당하는 불경죄로 죄인은 물론 온 가문이 능지처참을 당할 수도 있는 중죄였습니다.

몇 해 뒤에 장왕의 초나라는 진나라와 나라의 존폐가 달린 전쟁을 치르게 되는데 그 전쟁에서 장왕이 죽음의 위기에 처했을 때 장왕의 앞으로 나서서 자신의 목숨을 아끼지 않고 초나라의 수호신이 되어 온몸이 붉은 피로 물 들며 흡사 지옥의 야차처럼 용맹하게 싸워서 장왕을 구하고 초나라를 승리로 이끈 장수가 있었습니다.

전쟁이 끝난 후 장왕은 그 장수를 불렀고 용상에서 내려와 그 손을 감싸 쥐고 공로를 치하하며 목숨을 아끼지 않고 용맹하게 싸웠음을 치하하였다.

그 장수는 장왕의 손을 풀고 물러나 장왕에게 공손하게 큰절을 올리면서 "몇 해 전에 있었던 연회 자리에서 술에 취해 죽을죄를 지은 소신을 폐하께서 살려주셨습니다. 그날 이후로 소신은 새롭게 얻은 제 목숨은 폐하의 것으로 생각하고 살았고 오늘 이 전쟁에서 제 목숨을 폐하를 위해서 바칠 각오로 싸웠습니다."

'절영지회(絶纓之會)' '갓끈을 자른 연회' 라는 뜻으로 남의 잘못을 관대하게 용서하고 자신의 허물을 깨우친다는 의미의 고사성어 입니다.

어느 날 우리아파트 관내에서 자전거 도난사고가 발생하였다. 긴급 동대표회의가 열렸고 도적을 잡기위해 CCTV확인이 결정되었다. 그런데 동 대표 회장(회장 서 명길)이 반대하고 나섰다.

"우리아파트는 CCTV시설이 매우 잘되어있는데 만약 확인결과 우리아파트 주민 특히 자라나는 청소년으로 밝혀질 경우 심각한 문제로 발단될 수 있으니 CCTV확인을 보류합시다."라고 주장하였다.

결국 이날 회의에서 CCTV확인은 보류하기로 결의되었고 더 이상의 문제를 삼지 않기로 하였다.

'내로남불' '나는 되고 남은 안 된다'는 식의 정치풍토가 만연하고 있는 현실 사회에서 선비마을 아파트 동 대표회 서 회장을 비릿한 동 대표님들의 남을 존중하는 그런 정신이 절영지회(絶纓之會)의 사자성어를 교훈삼아 남을 배려할 줄 아는 포근한 사회풍토를 만들어 가고 있는 것이다.

강충구 명예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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