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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 버스다반사

유지은 기자

유지은 기자

  • 승인 2021-01-27 16:08
  • 수정 2021-05-12 15:04

신문게재 2021-01-28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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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호선 지옥철이란 말이 있다. 서울의 지하철 노선들 중 이용객이 너무 많아서 붙여진 다소 불명예스러운 별칭으로, 정말인지 네모난 박스 속에 사람들이 콩나물시루처럼 들어찬다고 했다. 한숨과 곡소리가 난무한달까.

물론 9호선 지옥철이 꼭 서울에만 있는 건 아니다. 바로 출퇴근 시간 버스. 대전의 버스도 그 시간만큼은 지옥철 저리가라다. 눈이나 비로 대중교통 이용량이 증가하게 되는 날은 더하다. 가끔 기사님이 '5분 뒤면 새 버스가 온다'고 다음 차를 권하기도 하지만 (주로 퇴근 시간에 그렇다) 그리 의미 있는 말은 아니다. 어쩔 수 없지 않은가. 회사 혹은 학교, 그리고 집에 가려면 이 버스를 꼭 지금, 타야 하는걸. 그래서 승객들은 스스로 자신의 버스를 만원버스로 만든다.

버스를 좀 타본 사람이면 알거다. 희한하게 5분, 10분의 차이가 버스 속 사람의 밀도를 바꾼다. 때론 그 빽빽함을 넘어 버스의 속도까지 바꾼다. 그렇기에 필사적이다! 스스로가 경험에 의해 체득한 알맞은 시간에 버스에 오르도록 달린다. 지금 눈앞의 버스를 놓친다면 어떤 버스가 내 앞에 올지 너무도 잘 아니까.



그날도 필사적으로 버스를 타려는 사람들이 가득한 한날이었을거다. 여느때처럼 버스가 정류장에 들어서자 사람들이 쏜살같이 달려갔고 단 몇 초 사이에 긴 줄이 만들어졌다. 문제는 찰나가 각자의 순서를 결정한 그때였다. 기사님이 누군가를 향해 소리쳤다. 알고 보니 한 아주마니가 하차하는 뒷문으로 버스를 탄 거였다. 순간 놀랐다. 생각지도 못한 방법이라서.

여러모로 편한 방법이 분명했다. 뒷문으로 타면 기다릴 필요도 없을뿐더러 자리도 누구보다 먼저 선점할 수 있었다. 버스에 오른 뒤 발견한 아주머니는 역시 좌석에 앉아 있었다. 누군가에겐 생각조차 못 할 방법이었고, 누군가는 생각에서 멈췄을 방법이었다. 그치만 그 기발한 방법을 실행에 옮긴 순간, 사람들은 불편해졌다. 너무 정직하게 살면 바보가 된다는 말이 버스를 탈 때 적용될 준 몰랐달까.

다행히 바보가 되는 불상사는 기사님의 호통에 막혔다. "그렇게 뒷문으로 타면 편한 거 누가 몰라요! 이 사람들 바보라서 기다려서 탑니까!"

아주머니는 바로 다음 정류장에서 내렸다. 진짜 목적지가 그곳이었는지 알 순 없지만 여튼 내리셨다. 덕분에 아주머니가 앉았던 자리는 앞문으로 바르게 탄 다른 아주머니가 차지했다.

어쩌면 그 버스 안에서 바보가 된 게 누구인지 깨달으셨을지도 모른다. 진짜 바보는 미련하게 줄을 선 우리가 아니라 자기 꾀에 넘어간 그 아주머니였을 테니까.
유지은 기자 yooje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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