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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정말로 친일파 무덤을 파낼 작정이냐?

홍경표 민족문제연구소 대전지부 사무국장

임효인 기자

임효인 기자

  • 승인 2021-03-29 08:39
홍경표 사무국장
홍경표 민족문제연구소 대전지부 사무국장
얼마 전 정월 대보름날 윷놀이를 하면 어떻겠냐는 지인의 제안에 시골로 멍석을 가지러 갔다. 시골에 사는 고향 후배에게 미리 부탁했더니 마침 집에 하나 남아있다는 연락을 받아 기쁜 마음으로 다녀왔다. 후배에게 전달할 철 지난 선물세트 하나 차에 싣고 시골에 가니 집 앞에서 기다리고 있다. 고마운 마음에 멍석을 얼른 차에 싣고 동네 어귀를 빠져나오다 보니 눈익은 산에 벌목하는 모습이 보인다.

갑자기 시골서 벌목일을 하는 초등학교 친구가 생각나서 전화를 걸었더니 그곳은 다른 사람이 하고 있고 자기는 다른 곳에서 하고 있으니 보고 싶으면 그곳으로 오라 하면서 위치를 알려 줬다. 이 친구가 걸작이다. 내가 평소에 주장하는 친일청산 운동에 '감 놔라 배 놔라' 잔소리를 거드는 걸 재미로 생각한다. 화목보일러에 필요한 땔감도 얻을 겸 그 친구 작업현장으로 갔다. 서로 근황을 이야기하다가 현충원에 있는 친일반민족행위자를 이장하기 위한 국립묘지법 개정에 노력한다는 내 이야기를 듣더니 대뜸 다음과 같이 나의 주장에 대해 반론을 제기한다.

"언제까지 그런 주장을 할 것인가? 괜히 국립묘지에 있는 사람들 건드린다고 고생하지 말고 독립유공자들을 따로 모셔서 거기서 국가기념일 행사를 하는 게 보기도 훨씬 좋다. 우리나라 사람들에게는 자기 할아버지나 아버지 무덤을 건드리는 건 대단한 수치로 생각한다. 그래서 남의 산에 몰래 만든 묘지조차도 함부로 건드리지 않는 게 우리나라 정서다. 하물며 국립묘지는 오죽하겠나? 그래서 부관참시 이야기도 나오는 것이다. 제대로 하지도 못하면서 찔끔찔끔 이야기할 것이 아니라 아예 독립유공자 묘역을 따로 만드는 것이 좋다."



나는 친구의 곰 발바닥 같은 큰 주먹으로 뒤통수를 한 대 맞은 느낌이 들었다. 그렇다. 내 친구와 같은 평범한 사람들의 말 속에 답이 있을 수 있다. 그래서 제안한다. 백범 김구 기념관과 묘역, 임정요인과 삼의사(이봉창·윤봉길·백정기) 그리고 안중근 의사 묘역 등이 있는 효창원 일대를 독립유공자 묘역으로 조성해 독립유공자들을 따로 모시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이다.

효창원은 정조대왕의 애틋한 사연과 일제에 의한 조선왕조 능멸의 역사가 있었던 곳이며, 이승만과 군부독재 정권에 의해 철저히 파괴돼 유원지화와 골프장, 축구경기장 등 체육시설이 건설된 곳이다. 당초 이곳은 백범 김구 선생이 독립유공자 묘역을 만들면 좋겠다는 생각을 가졌던 곳이다. 백범은 자신과 의기투합해 독립투쟁에 목숨을 바친 삼의사 묘역 기단에 '유방백세(遺芳百世)'란 친필을 새겨 삼의사의 이름이 '후세까지 길이 향기롭게 전해지리라'는 뜻을 새긴 의미심장한 곳이며 본인도 그곳에 묻히기를 희망한 곳이다.

이와 같이 역사적 의미와 고귀한 목숨을 바친 독립투사들이 모셔진 곳에 독립유공자의 묘역을 조성하는 것이 지금처럼 독립유공자와 친일행적이 있는 자들을 같은 묘역에 동거하고 있는 모양새를 보이는 것보다는 훨씬 의미가 있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국립묘지법을 개정해 친일인물들을 이장하는 과정에서 생기는 이념 갈등과 국민 분열보다는 훨씬 추진하기 쉽고 이와 관련된 많은 이해 당사자들을 쉽게 설득할 수 있는 방안이 될 수 있을 것이다.

102번째 돌아온 3.1절을 맞아 과거의 모든 치욕스런 역사를 지우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라는 것을 새삼 깨우쳐 준 친구에게 고마운 마음을 느낀다. 치욕의 역사든 영광의 역사든 그 의미를 잊지 말고 반드시 기억하여 영광스런 모습은 되살리고 치욕스런 역사는 반복되지 않도록 노력하는 자세가 더 중요하다는 생각이다. 홍경표 민족문제연구소 대전지부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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