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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 세계 여성의 날에

임효인 경제사회교육부 기자

임효인 기자

임효인 기자

  • 승인 2021-03-10 14:32
  • 수정 2021-05-02 12:30

신문게재 2021-03-11 18면

임효인
임효인 경제사회교육부 기자
월요일 아침 출근 준비 중 눈물을 쏟을 뻔했다. 거의 매일 듣는 교통방송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오랜만에 그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그날은 세계 여성의 날이었다. 매년 3월 8일이면 빨간 장미를 주변 여성들에게 선물하던 사람이 있다. 몇 해 전 세상을 떠난 고 노회찬 의원이다. 그의 비보를 들었던 그날은 아직도 선연하다. 그러고 보니 노회찬 의원을 가장 많이 접하던 것도 그 라디오 프로그램이었다. 노회찬재단 한 직책을 맡고 어떤 변호사가 그를 언급하며 세계여성의 날을 전하자 눈물이 살짝 찼다. 순간 그리움이 사무쳐서. 그가 꿈꾸던 세상은 아직도 오지 않아서.

세계 여성의 날을 맞아 대전 여성 노동자들이 목소리를 냈다. 여당인 더불어민주당 당사 앞에서 정부의 노동정책을 비판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코로나 재난이 가져온 변화는 여성에겐 더 가혹했다. 필수노동이라는 이름으로 더 격해진 노동에 투입되거나 아예 노동시장에서 사라져야 했다. 몸이 불편한 장애 여성에겐 이 모든 게 다른 세상 얘기다. 여성과 남성의 차별은 여전히 존재하고 여성이 설 곳은 아직도 미미하다. 문재인 대통령 말마따나 매우 부끄러운 수준이다.



이날 기자회견에서 들었던 얘기는 충격적이거나 슬펐다. 한 명의 여성으로, 한 명의 엄마로 그도 아니면 그저 한 명의 인간으로 세상을 열심히 살고 싶었던 여성들의 이야기도 마찬가지였다. 9년째 최저임금을 받고 있지만 국민건강과 밀접한 제도를 안내해 주는 일에 보람을 느낀다는 여성 노동자는 덤덤하게 자신과 동료들의 이야기를 전했다. "이 동네 직원들은 잘 못 노니 테이블 위에 올라갈 수 있는 사람을 데려 오라"는 정규직 남성의 비상식적 언행과 육아휴직을 내면 팀장에서 팀원, 그러니까 과장에서 대리로 직급이 떨어지는 말도 안 되는 일이 2021년에도 전해지고 있다. 2021년. 그러니까 빵과 장미, 참정권과 임금을 말하던 존엄과 생존의 목소리가 발현된 지 113년이 지난 오늘날까지 말이다.

2004년 1월 5일부터 3월 15일까지 고 노회찬 의원이 17대 총선을 준비하며 쓴 일기를 책으로 엮은 '힘내라 진달래'에는 이런 대목이 나온다. 3월 8일 세계여성의 날로부터 나흘 전, 그가 '아내에게 줄 붉은 장미를 사기로 한다'는 제목의 일기에 적은 부분이다. "각 나라의 노동운동이 메이데이를 어떻게 기념하는가를 보면 그 나라의 노동운동의 상태와 수준을 알 수 있는 것처럼, 3·8절을 어떻게 기념하는가를 보면 그 나라의 여성운동과 민중운동의 여성관을 알 수 있다." 2021년 대한민국이 가야 할 길은 아직 멀기만 하다. 노회찬 의원이 꿈꾸던 '3월이면 꽃값이 3배 오르는' 그런 날을 기대한다. 임효인 경제사회교육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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