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간의 취재 기록-37]속수(續修)승평계, ‘인사·재무팀’까지 갖췄다…현재 ‘국악관현악단’ 모습

세대교체하면서 직책 ‘9개→15개’로 증원… 직책 2배 가량 늘려
청풍승평계 ‘김용순·이춘홍·이긍연’, 속수승평계서 간부 단원으로 승진…의미는?
노재명 학자, "세습된 민속악 가문출신 예인, 소속될 가능성 높아"

손도언 기자

손도언 기자

  • 승인 2022-01-10 09:15
중도일보
'1893년 청풍승평계와 1918년 속수승평계의 비교 분석 자료'…청풍승평계(왼쪽)에서 율원으로 있었던 '김용순, 이춘홍, 이긍연(빨간색 부분)'은 속수승평계(오른쪽) 명단에도 포함돼 있다. 청풍승평계 창단 멤버였던 3명은 속수승평계로 자리를 이동한 것인데,이는 청풍승평계가 속수승평계로 진화했다는 증거다. 제천=손도언 기자 k-55son@
'제천 청풍승평계가 국악관현악단'이라는 구체적인 근거들이 하나둘, 제시되고 있다.

1893년에 창단한 제천 청풍승평계는 어떻게 진화됐고, 또 1918년 세대교체와 함께 업그레이드된 속수승평계의 조직 등은 어떻게 변화됐는지, 본지 추적 취재와 제천군지 기록을 비롯한 학자들의 견해를 분석해 봤다. 분석 결과는 놀라웠다.

먼저 율원(律員·단원)들의 세대교체는 어떻게 진행됐을까.



청풍승평계에서 율원으로 있었던 인물은 '김용순, 이춘홍, 이긍연'이다. 청풍승평계 창단 멤버였던 3명은 속수승평계로 자리를 이동한다.

특히 김용순(金用淳)은 속수승평계에서 통집(統執)으로 승진(승차)한다. 또 이춘흥(李春興)은 주찰(周察)로, 이긍연(李兢淵)은 영사(領司)로 각각 승진한다.

속수승평계 직책을 살펴보면 통집은 모든 단원들의 크고 작은 사무업무를 모두 감독하는 임무를 맡는다. 지금으로 말하면 국악관현악단의 단장쯤 된다. 주찰은 모든 단원의 우두머리인데, 지금으로 보면 지휘자 역할이다. 영사는 악기별 감독 업무를 맡는데, 지금의 '악기별 수석' 직책이다.

이렇게 '김용순, 이춘홍, 이긍연' 3명은 청풍승평계에서 속수승평계로 자리를 이동하면서 속수승평계의 가장 중요한 업무를 맡게 된다.

청풍승평계의 33명 단원 중 나머지 30명의 단원은 속수승평계 구성 당시, 평균 수명을 감안할 때 이미 세상을 떠났거나 은퇴해 참여하지 못한 듯하다.

류금열 제천 향토사학자는 "당시, 평균 수명을 보면 당시 50살을 넘기기 힘들었을 것"이라며 "그래서 당시 환갑(60세) 잔치를 거하게 했는데, 40대는 당시로 본다면 고령층으로 여겨진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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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27년 청풍 태생 현승청공(懸僧淸恭)이 왕사(王師)가 돼 청풍현이 군으로 승격된 것을 기념해 세웠다는 한벽루(寒碧樓)다. 1985년 충주댐 건설로 수몰돼 이전하기 전 모습이다. 제천 비봉산 아래 네 곳의 명당 중 가장 좋은 자리였다고 한다. 청풍승평계가 이 한벽루에서 정기적으로 연주, 강습했다.한벽루는 1983년 청풍문화재 단지로 복원 이전됐다. < 제천 청풍관광마을 홈페이지(http://cheongpung.invil.org)의 기록 사진>
속수승평계는 인원뿐만 아니라 직책도 더 늘어났다.

청풍승평계는 수좌와 통집, 교독, 총률 등 9개의 직책을 갖췄다. 이때부터 국악관현악단의 지휘자와 악장 등처럼 직급을 갖췄다는 게 전문들의 견해다.

반면, 속수승평계는 이보다 더 구체적인 조직을 만들어 간다.

속수승평계는 부교독(副敎督), 부통집(副統執), 장재(掌財)·재무 2명, 서기(書記), 연수(宴需), 연주(宴酬) 등 청풍승평계보다 직책을 추가로 증원시킨다. 속수승평계의 직책은 15개인데, 청풍승평계보다 2배 가량 많다.

주목할 점은 속수승평계의 '기능'이다.

조직을 개편하면서 기능을 강화한 것이다. '인사관리, 금전관리' 등을 추가로 신설한 것인데, 활동량이 많아지고 원정 연주까지 추진하다보니 직책이 늘어난 것으로 추측된다.

류금열 제천 향토사학자는 "단원들의 인사관리와 재무관리 등의 직책이 늘어난 것은 완벽한 국악단체를 만들기 위한 것으로 보여진다"며 "특히 제천 청풍지역은 역사적으로 교통 여건이 좋았기 때문에 속수승평계 단원들은 다른 지역으로 가서 '원정 연주'를 한 것으로 보여진다"고 말했다.

속수승평계의 인원과 직책 등만 본다면 지금의 국악관현악단과 다를 바가 없다. 더 나아가 지금보다 더 깊이 있고, 짜임새 있는 고급 음악을 연주했을 가능성도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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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몰되기 전 거문고를 닮은 제천 명오리(鳴梧里) 전경'…예로부터 풍류가 발달한 제천에는 이처럼 국악기와 관련된 이름의 마을도 있었다. 지형이 거문고를 닮고, 강이 담장 대신 울타리 역할을 해서 도둑이 없었던 마을로 알려졌다. 거문고 재료인 오동나무가 많이 자라 명오리, 즉 오동나무 위에서 새가 운다는 마을이다. 음악이 흐르는 지명, 멋스러운 고을 이름이다. <제천 청풍관광마을 홈페이지(http://cheongpung.invil.org)의 기록 사진>
이런 근거는 악기의 종류 등에서 찾아볼 수 있다.

특히 청풍승평계와 속수승평계는 풍류가야(정악 가야금), 산조가야(산조가야금), 양금, 현금(거문고), 당비파(현악·8음), 향비파(현악·8음) 등을 다뤘다. 반면, 현재의 국악관현악단 등은 양금과 피바 등은 좀처럼 사용하지 않는다. 무엇보다 전승자가 없기 때문인 것으로 분석된다.

라서 청풍승평계와 속수승평계는 현재의 국악관현악단보다 더 다양하고 정통국악에도 충실한 연주를 한 것으로 보여진다.

이용탁 국립국악원 창작악단 예술감독은 "현재의 국악관현악단은 비파 등을 거의 연주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노재명 국악학자는 "산조가야금의 경우 지금도 그렇지만 당시로선 거의 전문가 영역이다. 이 단체에 일명 '가비', '산이'로 불리는 세습 민속악 가문 출신의 예인이 소속돼 있었을 가능성이 많다"고 말했다. 노 학자는 이어 "지금도 선뜻 구입하기 쉽지 않은 고가의 거문고, 가야금, 양금, 비파 같은 고급 악기를 다수 보유 연주했다는 사실은 이 단체를 후원한 해당 지역사회의 애호가 유지들이 많았음을 의미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상당히 많은 악기들을 조율하고 관리했다는 점은 악기를 만들고 수리 내지, 연주까지 가능한 '국악기 명장'도 이 단체에 포함돼 있었거나 근거리에 존재했음을 나타내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제천=손도언 기자 k-55s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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