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0년 1월 26일 오후 11시 45분경. 서울역발 목포행 호남선 601편 완행열차를 타려던 승객들이 서울역 3번 계단에서 집단으로 넘어진 사건이 발생했다.
최종 집계는 31명 압사와 41명 중·경상으로 확정됐다. 압사한 31명은 교통병원(서울철도병원)에 안치되고, 부상자들은 세브란스병원, 서울적십자병원, 국립중앙의료원으로 분산 수용하여 입원 후 치료를 받았다.
사망자 대다수가 부녀자이며 귀향객으로, 무거운 짐을 들고 있어 사고를 한층 더 키운 것으로 파악됐다.
사고 발생의 원인은 설 명절 이틀 전인 1960년 1월 26일, 이른 아침부터 귀향하려는 승객들이 서울역에 몰려 인산인해를 이뤘다. 평소보다 3배가량 많은 3926명이 열차표를 예매했고, 이로 인해 이날 오후 10시 50분에 출발하는 서울역발 목포행 호남선 601편 완행열차의 차량을 8량에서 18량으로 증차했다. 애초에 발차 35분 전인 10시 15분에 개찰할 예정이었으나 차량 증차로 인해 출발 5분 전인 10시 45분에 개찰을 시작했다. 당시 완행열차에는 좌석제가 아니고 자리에 먼저 앉는 게 임자였다. 먼저 타려는 마음과 열차가 출발할까 우려하는 마음에 폭이 좁은 4·5번 플랫폼 전용 3번 계단으로 무질서하게 몰려들면서 승객 한 명이 앞으로 쓰러지자 연쇄적으로 승객들이 밀려 넘어지기 시작했다. 이 과정에서 31명이 압사하고 41명이 부상을 입었다.
서울역 관계자는 한꺼번에 개찰을 한 것에 대해 승객들의 편의를 위해 한 것이며 기차 출발이 지연된다는 점을 여러 번 안내방송을 했고, 혼잡을 덜기 위해 부녀자들을 먼저 내보냈고 이어 열차의 정원을 넘겨 표를 판매한 점에 대해서는 열차표를 산 사람이 전부 타지 못했을 경우를 대비하여 임시 편성을 준비할 계획이라고 답변했다.
사고 발생 직후 70여명의 역무원들과 다른 사건에 출동 중이던 경찰관 30여명이 즉시 사고 현장에 투입돼 사망자와 부상자들을 인근 병원으로 분산 이송하도록 정리했고, 교통부 장관 등 교통부 관료가 총출동해 사건 현장의 수습책을 지휘했다. 서울역에는 곧바로 사고대책본부가 설치됐고 사망자들의 합동위령제를 사고 다음 날인 27일 오후 3시 교통부 앞 광장에서 치르고 사망자들의 시신을 유가족에게 인계하고 위자료를 지불하기로 결정했다.
2022년 10월 29일 밤 11시 45분. 서울 이태원 핼러윈 축제 현장에서 154명의 사망자와 33명의 중상자와 116명의 부상자 발생했다. 대부분이 장래가 촉망되는 젊은이들이라고 하니 부모들의 마음은 얼마나 아플지 가늠이 안된다. 조용히 기도하며 고인의 명복을 빈다.
서울역 참사는 그 시절 가장 큰 참사였다. 그 후 이만한 참사가 없을 줄 알았더니 21세기 세계 6대 강국인 선진국 대한민국 수도 서울에서 대형 참사가 발생했다는 것이 안타깝고 가슴 아픈 일이다. 국제적으로 수치스러운 일이다.
/이갑선 명예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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