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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운동 무명열사 함께 기억되길" 대전현충원 추모발길 이어져

반쪽 광복절 경축식 대신 대전현충원 참배 이어져
창씨개명·조선어 폐지 저항한 유영홍 열사 후손
청산리전투 치르고 6·25 전사한 이병석 지사
후손들 "독립운동가 단체 목소리 경청해주길"

임병안 기자

임병안 기자

  • 승인 2024-08-15 16:01
  • 수정 2024-08-16 17:06

신문게재 2024-08-16 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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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국선열 유영홍 열사의 손자인 유용욱 씨가 국립대전현충원에서 조선어 폐지에 저항하다 순국한 할아버지를 되새기고 있다. (사진=임병안 기자)
피땀으로 되찾은 대한민국의 독립을 기념하는 광복절날 국립대전현충원 독립유공자 묘역에 애국지사 후손들이 찾아와 정성으로 빚은 술을 올리고 그날의 역경을 되새겼다. 경축식마저도 분열시킨 독립기념관에 대해서는 실망감을 감추지 않았다.

15일 국립대전현충원 현충탑 너머에 있는 독립유공자 3묘역에서 충남대 고고학과 교수인 유용욱 씨가 할아버지인 순국선열 유영홍(1905~1943) 열사 묘역을 참배했다. 유영홍 열사는 1941년 일제가 강요한 창씨개명과 조선어 폐지에 반대하다가 소학교 훈도(교원)에서 퇴출당하고, 이듬해 해남군청에서 조선어 폐지는 민족의 멸망을 초래할 것이고 일제의 태평양전쟁은 조선 독립의 절호의 기회라고 연설하다가 일경에 체포됐다. 보안법 위반으로 목포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르던 중 순국했다. 손자 유용욱 씨는 이날 "지금 생각해보면 할아버지가 보았던 일제강점기 전남 해남은 모든 산물이 목포항을 거쳐 일본으로 반출되는 수탈의 풍경이었을 것이고 비분을 참지 못하셨을 것이다"라며 "할아버지가 투옥 중일 때 마루방에서 태극기 십 여 장 발견되었을 정도로 큰 거사를 준비하셨으나, 남편을 잃은 할머니는 모든 가족을 데리고 서울로 이주하셨다"고 가족사를 설명했다. 그는 "저희 할아버지는 명예로운 곳에 안장되어 계시지만, 독립운동에 투신했으나 가족까지 한꺼번에 일제의 화를 입은 독립 무명열사와 그들의 후손들을 위한 공간과 시설이이 필요하다"며 "유럽은 나치를 끝까지 추적해 단죄하는데 우리는 친일을 구제할 것처럼 하는 이가 기관장이 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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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산리전투에서 승리하고 중국 헤이룽장성에서 우리 교민 교육에 앞장선 김중한 애국지사의 손자가 참배하고 있다.  (사진=임병안 기자)
이날 오전 10시 무더위가 본격적으로 내리쬐기 전 서둘러 참배하려는 유족들이 대전현충원으로 속속 도착할 때 독립유공자 2묘역에서는 1920년 청산리전투에서 일본군과 싸워 크게 승리한 김중한(1897~1952) 애국지사의 손자와 증손자를 만날 수 있었다. 김중한 지사는 1910년 경북 안동을 떠나 이상룡(1858~1932) 선생 등과 함께 만주로 건너가 신흥무관학교를 이수하고, 서로군정서 해룡지구경비대장으로 활동했다. 청산리전투 승리 후 자유시 참변(1921)을 겪고 다시 만주로 돌아와 대한민국 임시정부와 연계해 독립운동 전개하면서 1936년에는 중국 헤이룽장성에서 한국 교민들의 자녀 교육을 위해 한인소학교를 설립해 교장을 지냈다. 그는 1949년 육군사관학교를 졸업하고 1950년 6·25전쟁에서 보병3사단에 복무 중 1952년 8월 15일 전사했다.

손자 김성현(69)씨는 "조부께서 고향 안동을 떠나 만주에 정착하면서 저희 가족은 중국에서 태어나 하얼빈에서 거주하다가 2002년 한국으로 귀화했다"라며 "정부가 독립운동가 단체와 후손들의 의견을 조금 더 경청해줬으면 좋겠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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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자주독립'이라는 깃발을 들고 독립만세를 외친 이병석 애국지사의 외손자 이연호 씨가 대대로 지켜온 궁중술을 바치고 있다.  (사진=임병안 기자)
이어 독립유공자 2묘역에서 만난 이연호(89) 씨는 외할아버지 이병석(1894~1940) 애국지사를 찾아뵙고자 전북 익사에서 찾아 온 길이다. 1919년 익산 여산면에서 '조선자주독립'이라고 쓴 큰 깃발을 만들어 200여 명과 함께 여산군 헌병분견소로 진출해 독립만세를 고창하며 시위운동을 벌이다 붙잡혀 옥고를 치렀다. 전북 익산에는 그날을 기념하기 위해 여산 독립만세운동 기념비가 세워져 있다.

궁중술 호산춘 보존회장인 이연호 씨는 "조부께서는 만세운동을 준비할 때도 대대로 내려오는 궁중술을 빚었고, 술을 나누면서 더 많은 이들이 만세운동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하셨다고 어머니께 들었다"며 "조부께서 태극기 흔드시는 당당한 모습과 독립을 외치는 우렁찬 음성이 제 귓가에 들리는 듯 하고, 더 많은 후손들이 우리의 애국지사 묘역을 찾아와 북적이는 모습을 기대한다"고 감정을 전했다. 김원진 전 광복회 충북지부장도 정부 경축식에 불참하고 독립유공자 1묘역에 안장된 부친인 김창도(1900~1967) 애국지사 묘역을 참배했다.
임병안 기자 victorylb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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