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19년 3월 30일 충북 청안시장 만세운동을 주도한 함재원 독립유공자의 후손을 만남
- 함재원 지사가 김수백, 이태갑, 신강면 등의 청년들과 함께 태극기 제작, 독립선언문의 등사, 참여 독려를 위한 지역별로 조직책을 꾸리는 등 체계적으로 만세운동을 함
- 일제 경찰들은 강압적으로 해산을 명령하면서 시위대의 선두에 있던 유웅렬 등 7명을 주재소로 끌고 감
- 청안만세운동기념비가 1985년 세워졌고 충북을 대표하는 만세운동임
- 독립유공자 류봉기 지사(당시 19세)는 서울의 3·1운동에 참가한 뒤 선언서를 품에 지닌 채 3월 5일 고향 전남 영광군에 돌아와 만세시위운동을 주도함
- 독립운동에 몸과 마음을 바친 분들이 계셔서 지금의 대한민국이 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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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19년 3.1만세운동 107주년을 맞은 2026년 3월 1일 국립대전현충원 독립유공자 묘역에 함재원, 류봉기 지사의 후손들이 찾아와 추모하고 있다. (사진=임병안 기자) |
대전현충원 가장 안쪽 독립유공자를 모신 제2묘역에서 1919년 3월 30일 충북 괴산면 청안장터에서 조선인 군중 2000명의 만세시위를 주도하고 3년의 옥고를 감내한 함재원(1885~1947) 독립유공자의 후손을 만났다. 충북 청안시장 만세운동은 함재원 지사(당시 35세)가 김수백, 이태갑, 신강면 등의 청년들과 함께 태극기 제작, 독립선언문의 등사, 참여 독려를 위한 지역별로 조직책을 꾸리는 등 체계적으로 이뤄진 만세운동이다.
3월 30일 오후 1시부터 시작된 만세시위는 오후 3시 30분 청안장터 한복판에서 2000명의 군중이 모인 가운데 대한독립선언서가 낭독됐고, 일제 경찰들은 강압적으로 해산을 명령하면서 시위대의 선두에 있던 유웅렬 등 7명을 주재소로 끌고 갔다. 석방을 요구하는 격렬한 시위가 경찰 주재소 앞에서 전개했고, 더 이상 분노를 참지 못하고 주재소를 향해 돌을 던지며 시위했다. 일제경찰은 총을 발포해 5~6명을 살해했다. 함재원(1885~1947) 지사는 일경의 발포를 피해 물러선 군중과 함께 인근의 우편소에 돌을 던지는 중 일본군을 호출할 것을 우려하고 우편소 처마 밑에 있던 전화선을 끊고 핵자를 격파했다. 당시 공주지방법원은 함 지사에게 소요죄를 물어 징역 3년 선고했다. 청안면 읍내리 청안면사무소 앞에 청안만세운동기념비가 1985년 세워졌고 충북을 대표하는 만세운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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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19년 4월 3일 발행된 매일신보에 전국 3.1운동 소식이 전해졌다. 충북 괴산(청안장터)에서 다섯 명이 숨졌다는 소식이다. (사진=국립중앙도서관) |
이어, 독립유공자 제2묘역 류봉기(1901-1978) 애국지사 묘역에서 만난 외손자 정응진(77) 씨는 외할아버지와 외할머니를 합장한 묘역을 어루만지면서 소매로 눈물을 훔쳤다.
5살에 어머니를 여읜 자신을 키워준 외조모와 외조부가 보고 싶을 때 대전현충원을 찾아온다는 정 씨는 이날 "외할아버지는 전남 영광에서 직접 만세운동을 주도하고, 재산을 헐어 만주 임시정부에 독립자금을 대는 등 국가관과 민족관이 투철한 분이셨다"라며 "제가 어렸을 때 할아버지는 태극기에 가까이 다가가는 것만으로 심장이 크게 뛴다고 하셨고, 국가가 강력히 존립해야 국민이 평안할 수 있다는 말씀을 자주 강조하셨다"라고 기억을 들려줬다. 작고하실 때까지 자신의 독립운동은 조선인으로 당연한 일이었고, 대가를 바라는 말씀은 일절 없으셨다고 회상했다.
국가보훈부 공훈전자사료관에 따르면, 독립유공자 류봉기 지사(당시 19세)는 서울의 3·1운동에 참가한 뒤 선언서를 품에 지닌 채 3월 5일 고향 전남 영광군에 돌아와 영광읍에서 3월 27일 만세시위운동을 주도했다. 그는 애국소년단을 결성해 자신의 집에서 조선독립의 사상을 드높이는 연설문 사본 20장을 작성하고 태극기 여러 장을 만들어 배포하고, 벽보를 붙이는 등 주민계몽 활동을 전개했다. 류봉기 지사는 대구형무소에서 6개월 옥고를 치렀다.
외손자 정 씨는 "홍범도와 안중근 지사처럼 저희 외할아버지 이름이 널리 알려지지 않았어도 아주 훌륭한 일을 하셨고, 외할머니도 고생을 많이 하셨다"라며 "독립운동에 몸과 마음을 바친 분들이 계셔서 지금의 대한민국이 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라고 말했다.
임병안 기자 victorylb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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