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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규용 교수 |
인문학은 시련을 "이야기"의 차원에서 바라본다. 인간은 겪은 일을 그대로 사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해석하고 서사로 엮어 삶의 의미를 만든다. 같은 상실, 같은 실패라도 어떤 이는 '인생 최악의 불행'으로, 다른 이는 '나를 바꾼 전환점'으로 기억한다. 이때 중요한 것은 시련 그 자체가 아니라, 우리가 그것을 어떤 이야기로 만들고 어떻게 기억하느냐이다. 현상은 같지만 해석이 달라질 때, 시련은 때로 축복으로 재탄생한다.
우리 현대사는 이 같은 통찰을 온몸으로 증명해 온 과정이었다. 전쟁의 폐허와 가난, 분단과 독재라는 혹독한 시련을 겪었지만, 우리는 그것을 단지 상처로만 남겨 두지 않았다. 짧은 시간에 세계적으로 유례를 찾기 힘든 경제성장을 이루었고, 군부 독재를 넘어 민주주의를 스스로 쟁취했다. 이 과정에서 한국 사회는 고통을 축복으로 전환하는 힘, 위기를 도약의 계기로 바꾸는 독특한 시민 역량을 키워 왔다. 이 경험을 두고 사람들 사이에서는 "우리나라 국민의 취미는 국난극복이다"라는 말까지 생겨났다. 시련의 순간마다 놀라운 집중력과 연대로 위기를 넘어선 한국민의 특성을 압축적으로 드러내는 표현이다.
그러나 국난극복이 우리의 '취미'라는 말이 자긍심의 기억에만 머문다면, 지금 우리 앞에 놓인 새로운 시련을 제대로 직시하지 못하게 된다. 우리는 경제성장과 민주화라는 두 축에서 일정 수준의 "성공"을 이루었지만, 그 성취만으로 미래가 보장되지는 않는다. 양극화와 고령화, 청년 세대의 박탈감, 이념·지역·젠더 갈등이 겹겹이 쌓이며 한국 사회는 또 다른 형태의 시련 앞에 서 있다. 민주주의가 낳은 다원성과 갈등을 감당하지 못한다면, 과거의 성취는 오히려 분열과 혐오를 정당화하는 명분으로 전락할 수 있다.
특히 이런 어려운 상황에서 발목이 잡혀 퇴행적 과거로 돌아가는 실수를 되풀이하지 않으려면, 성숙한 시민의식이 필수적이다. 위기일수록 사람들은 익숙한 과거와 단순한 해법, 강한 지도자에게 기대고 싶어 한다. 선동과 가짜 해법으로 쉽게 휘말리게 될 수도 있다. 성숙한 시민은 불안과 공포에 휘둘리지 않고 정보를 비판적으로 살피며, "옛 방식으로 돌아가면 된다"는 유혹을 경계한다. 또한 독재와 탄압, 잘못된 정책이 남긴 상처를 기억하고, 같은 선택을 반복하지 않으려는 집단적 학습 능력을 갖춘다. 무엇보다 결과만을 내세워 절차와 소수자의 권리를 희생시키려 할 때 "그것은 민주주의가 아니다"라고 말할 수 있는 양심과 책임감을 지닌다. 이런 시민의식이 있을 때, 시련은 우리를 뒤로 끌어내리는 힘이 아니라 더 나은 민주사회로 나아가게 하는 시험대가 된다.
사회학적 관점에서 시련은 애초에 축복이 아니다. 다만 그 시련을 겪는 이들을 사회가 어떻게 대하느냐에 따라, 시련은 '다른 이름의 가능성'으로 바뀔 여지를 갖게 된다. 적절한 안전망을 제공하고, 실패를 허용하며, 재도전을 도울 때 시련은 한 사람을 파괴하는 운명이 아니라 함께 떠받치는 성장의 계기가 된다. 포용력이 없는 사회에서 시련은 약자를 더 짓누르는 불행일 뿐이지만, 포용력이 있는 민주사회에서 시련은 다시 일어설 기회를 제공하는 공동의 자산이 될 수 있다. 개인의 의지뿐 아니라 사회의 책임, 그리고 성숙한 시민의식이 함께 개입할 때, "시련과 축복은 다르지 않은 것"이라는 말은 비로소 민주사회의 포용력을 가리키는 말이 된다.
이제 한국 사회가 감당해야 할 과제는, 위기 때만 잠시 발휘되던 국난극복의 힘을 일상의 민주주의와 포용의 문화로 옮겨 심는 일이다. 그렇게 할 때 우리의 시련은 더 이상 반복되는 상처가 아니라, 모두가 조금씩 더 인간답고 정의로운 사회로 나아가게 하는 축복의 통로가 될 것이다.
/김규용 충남대 스마트시티건축공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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