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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제 이해찬 전 총리가 남긴 행정수도 완성의 대업은 이재명 대통령과 후세대의 몫이 됐다. 사진=민주당 제공. |
행정수도와 인연은 노무현 전 대통령과 궤를 같이 한다. 2004년 참여정부의 초대 국무총리로서 국토균형발전 정책을 선두에서 이끌었다. 운명의 끈은 거기서 끊어지지 않았다.
1988년부터 서울 관악 을에서 국회의원 5선을 역임한 뒤 사실상 정치 일선에서 물러났으나, 당원들은 2011년 당시 민주당 상임 고문인 이 전 총리를 소환했다.
결국 그는 2012년 세종시 출범 직전 진행된 제19대 총선에서 47.88% 득표율을 얻어 당선됐고, 2015년 3월 임기 내 세종시 정착 약속을 지켰다. 전동면 미곡리에 단독주택을 짓고 현재까지 거주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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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무현 대통령이 못다 이룬 국가균형발전의 꿈 실현에 나서온 이해찬 전 총리. |
국회법 개정안을 발의해 현재의 국회 세종의사당 설치에 초석을 마련했고, 지방법원·검찰청 설치 법안도 이 의원 재임 시절 급물살을 탔다.
수도권 국회의원이 전체의 과반 의석을 차지한 가운데서도 단 1명의 국회의원이 세종시에 우상향 곡선을 그리면서, 시민들의 기대감은 재선 지지로 반영됐다. 그는 2016년 총선에서 민주당 일각의 은퇴 요구에 따라 컷오프됐음에도 무소속으로 출마해 43.7% 지지율로 7선에 성공하는 기염을 토했다. 참모를 넘어 선수로도 무패 신화는 그렇게 쓰여졌다.
김대중·노무현 대통령과 조순 초대 서울시장 캠프의 선거 중책을 맡으면서 모두 승리로 이끌었고, 중앙당 정책위의장도 3번이나 역임했다.
2018년 문재인 정부 당시에는 개헌을 정부 입안 추진을 뒷받침하고, 2020년 8월까지 당 대표로서 세종시 위상을 한 단계 끌어올렸다.
비록 또 한 번의 아쉬움으로 막을 내렸으나 20년 7월 김태년 전 원내대표의 '행정수도 이전' 선언은 이재명 정부의 행정수도 완성 의지에 도화선이 됐다.
이 전 총리는 사실상의 정계 은퇴 이후로도 존재 그 자체만으로도 세종시의 무게 중심을 잡는 역할을 톡톡히 했다.
외교통일위원에 이어 동북아 평화경제협회 이사장을 거쳐 지난해 11월 민주평통자문회의 수석 부의장을 맡으며, 생애 남북관계 개선 의지도 멈추지 않았다.
이제 이 전 총리의 생애 '행정수도 완성과 남북통일'의 꿈은 그를 따르는 숱한 후배 정치인과 후세대의 몫으로 남게 됐다.
그의 눈으로 지켜봐야 할 미완의 행정수도 완성의 숙제는 자명하다. 무엇보다 세종을 넘어 대한민국을 위한 '국가균형성장'의 실질적 조치가 뒤따라야 한다.
당장 2030년 완성기 전·후까지 ▲역대 중앙정부의 약속된 국책사업의 정상화 : 국립자연사박물관과 미래형 종합운동장 및 체육시설 건립, 중앙공원 2단계 정상화 ▲행정수도에 걸맞은 교통망 구축 ▲수도권 자류 중앙행정기관과 위원회, 공공기관의 조속한 이전 ▲2029년 8월 청와대 시대를 지나 대통령 세종 집무실 시대 선언 ▲2033년 국회 세종의사당으로 완전한 이전 등이 시급하다.
다른 지방의 블랙홀이 되거나 성장을 가로막는 도시가 되어서도 안된다. 차별화된 '세종시'의 미래로 나아가기 위한 정치 지도자의 출현도 시대적 요구다.
한편, 이 전 총리는 1970년대 유신독재 투쟁을 시작으로 1978년 출판사 돌베개 대표부터 민주통일민중운동연합 총무국장, 민주화운동청년연합 상임위원회 부위원장 등을 맡아 민주화 운동의 선봉에 섰다. 1988년 36세의 나이에 초선 국회의원을 맡아 정계에 본격 입문했고, 이후 서울시 정무부시장(1995년), 교육부장관(1998~1996년) 등을 지내며 다양한 경험과 시각을 갖춘 정치인으로 성장했다.
세종=이희택 기자 press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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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애 이해찬 전 총리의 모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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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해찬 전 총리와 이별은 특히나 세종시민에게 더 큰 아쉬움으로 돌아오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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