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역 활성화 정책은 종종 눈에 보이는 결과를 향함
- 단기간 성과를 만들기에는 효율적일지 모르지만 질문 하나를 던지면 답은 조심스러워짐
- 지역의 정체성은 고유한 이야기와 장소성에서 나옴
- 이미 존재하는 것들에 대한 해석과 복원이 필요함
- 지역의 지속 가능성은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는 일이 아님
![]() |
| 최병조 세종교육회의 공동대표 |
'왜 사람들은 그 지역을 찾아야 하는가. 왜 그곳에서 살아야 하는가?'
세종 부강을 떠올려 본다. 부강은 한때 '부강포구'가 있었다. 조선시대 물산이 모이고 사람들이 드나들던 포구였다. 강을 따라 배가 오가고 장터가 형성되며 삶의 풍경이 이어졌다. 그러나 1924년 이후 배가 끊기고, 번성하던 흔적들은 점차 사라졌다. 지금의 부강은 작은 면 소재지로 남아 있다.
문제는 쇠퇴만이 아니다. 더 근본적인 문제는 기억의 단절이다. 몇백 년을 이어왔을 나루의 역사, 장터의 문화, 사람들의 생활사는 어디도 남아 있지 않다. 자료는 파편처럼 흩어져 있고 공식 기록은 희미하다. 있었던 이야기는 있지만, 이어지는 서사는 없다. 장소는 남았지만, 의미 흐릿해졌다.
오늘날 지역 활성화 정책은 종종 눈에 보이는 결과를 향한다. 출렁다리, 대형 공원, 상징 시설. 전국 어디를 가도 비슷한 풍경이 반복된다. 단기간 성과를 만들기에는 효율적일지 모른다. 하지만 질문 하나를 던지면 답은 조심스러워진다. '그 시설이 사라지면, 그 지역은 무엇으로 기억될까' 복제할 수 있는 콘텐츠는 지역의 정체성을 만들지 못한다. 방문 동기를 오래 붙잡지 못한다.
지역을 살리는 힘은 결국 고유한 이야기와 장소성에서 나온다. 우리가 놓치고 있는 것은 새로운 건설이 아니다. 이미 존재하는 것들에 대한 해석과 복원이다. 부강에는 충분한 자원이 있다. 포구와 나루의 역사, 장터의 기억, 철도의 흔적, 종교 유산, 생활 문화의 흔적들. 그러나 이 자원들은 서로 연결되지 않은 채 흩어져 있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무언가를 더 짓는 일이 아니라, 흩어진 기억을 하나의 이야기로 엮는 작업이다.
지역 재생은 물리적 복원 이전에 서사의 복원이어야 한다. 여기서 우리는 '지속 가능성'을 다시 생각하게 된다. 지역의 지속 가능성이란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는 일이 아니다. 옛것을 해석하고, 작업하고, 기억하고, 그 속에서 정체성을 회복하는 과정이다.
지속 가능한 발전이 취약해지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우리는 종종 '새로움'을 발전으로 착각한다. 그러나 맥락 없는 새로움은 오래가지 못한다. 지속 가능성의 진짜 의미는 시간의 축적 위에 있다. 기억이 이어지고, 이야기가 보존되며, 장소의 정체성이 강화될 때 비로소 지역은 지속성을 획득한다.
사람이 머무는 이유는 숫자가 아니라 의미다. "왜 그곳이어야 하는가?", "왜 그곳을 기억해야 하는가?", "왜 다시 찾고 싶은가?"
이 질문에 대한 답은 역사와 문화, 기억과 정체성 속에 존재한다. 우리는 마을 만들기를 말하고 지방자치를 이야기한다. 그러나 정작 그 지역이 지닌 고유한 문화와 유산을 얼마나 존중하고 있는가. 개발은 빠르고 가시적이지만, 기억을 복원하는 일은 느리고 눈에 잘 띄지 않는다. 그래서 더 쉽게 뒤로 밀린다. 하지만 지속 가능한 지역은 결국 오래된 이야기 위에 세워진다. 부강의 사례는 특정 지역의 문제가 아니다. 전국의 수많은 소멸 위험 지역이 같은 질문 앞에 서 있다.
"시설을 더 지을 것인가", "아니면 이야기를 다시 엮을 것인가?"
지역 재생은 건설 사업이 아니다. 해석의 작업이며, 기억의 복원이며, 정체성의 회복이다. 지역의 지속 가능성 또한 새로운 것을 덧붙이는 데 있지 않다. 이미 존재해 온 것들을 다시 읽고, 그 의미를 회복하고, 공동체의 기억으로 되살리는 데 있다. 우리가 지역 소멸을 진지하게 말하고자 한다면, 가장 먼저 되돌아봐야 할 것은 인구가 아니라 그 지역이 잃어버리고 있는 역사와 이야기이다. /최병조 세종교육회의 공동대표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