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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룡다문화] 오래된 사진 한 장

충남다문화뉴스 기자

충남다문화뉴스 기자

  • 승인 2026-04-19 11:22

신문게재 2026-01-18 20면

초등학교 교사였던 필자의 어머니는 이혼 후 딸을 만나지 못해 학교 앞에서 달걀을 팔며 기다리던 한 아버지의 사연을 듣고, 자신의 집에서 부녀가 조용히 만날 수 있도록 배려했습니다. 당시 아버지는 고마움의 표시로 필자 남매의 사진을 찍어주었으며, 세월이 흐른 뒤 대학에 합격한 딸이 지인을 통해 어머니에게 진심 어린 감사의 인사를 전해왔습니다. 필자는 사진 속에 담긴 따스한 햇살을 보며 타인의 아픔을 외면하지 않았던 어머니의 따뜻한 마음과 그날의 소중한 기억을 되새깁니다.

오래된 사진 한장2(당리)
고향에 갈 때면 어김없이 사진첩을 펼쳐 본다. 80년대 중국에서는 사진기가 있는 집이 드물었고, 대부분 사진은 사진관에서 찍은 것들이었다. 왜 그랬을까? 사진관 배경 앞에만 서면 나와 오빠의 표정은 딱딱하게 굳어버리곤 했다.

하지만 집 앞에서 찍은 몇 장의 사진은 달랐다. 햇살 속에서 웃고 있는 나와 오빠의 모습이 유난히 밝고 자연스러웠다.

"누가 찍어준 사진인지 기억나니?" 엄마가 물으셨다.

내가 그걸, 어떻게 잊을 수 있겠어요?

초등학교 때 어느 날, 나와 오빠가 학교를 마치고 집에 돌아왔는데 집에 낯선 아저씨와 언니가 와 있었다. 대체 누구였을까?

그때 엄마는 초등학교 5학년 담임선생님이었다. 엄마 말로는, 출근할 때 학교 문 앞에서 달걀을 파는 아저씨 한 분이 눈에 띄었는데, 늘 오가는 학생들을 유심히 바라보고 있어서 왠지 낯이 익게 느껴졌다고 한다. 그러다 문득 떠올랐다. 그 아저씨는 바로 반에 있는 한 여자아이의 아버지였다. 예전에 학부모 상담 때 본 적이 있었고, 게다가 그는 엔지니어였다.

오래된 사진 한장1(당리)_
물어보고 나서 그제야 사정을 알게 되었다. 그 여자아이의 부모는 이혼했고 아이는 엄마에게 양육권이 있었는데, 아이의 엄마가 아버지와의 만남을 허락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아버지는 달리 방법이 없어 학교 앞에서 달걀을 파는 척하며 그 자리에 쭈그리고 앉아 있었다. 그저 멀리서라도 학교에서 나오는 아이를 한번 보고 싶어서였다. 하지만 그렇게 많은 아이 속에서 딸을 찾아보는 일이 어디 쉬운 일이겠는가?

우리 엄마는 이 아버지와 딸을 학교 사무실에서 만나도록 해 주려고 했다. 하지만 그 아버지는 다른 선생님이나 학생들에게 보이면 아이의 엄마가 알게 될 것이고, 그러면 앞으로는 아이를 더 만나기 어려워질 것이라며 걱정했다.

그렇다면 어디에서 만나야 할까. 엄마는 그 여자아이와 아버지를 학교 근처에 있는 우리 집으로 데려와 두 사람이 조용히 만나도록 해 주었다. 엄마는 퇴근하고, 우리도 학교를 마치고 집에 돌아왔다. 집에 낯선 아저씨와 언니가 있는 것을 보고도 우리는 무슨 영문인지 알지 못했다.

떠나기 전, 그 아버지는 카메라를 꺼내 들고 우리 집 앞 햇살 아래에서 나와 오빠의 사진을 몇 장 찍어주었다.

그 후, 그 여자아이는 외지로의 이사로 전학을 하러 갔다. 수년이 흐른 뒤, 그녀는 지인을 통해 엄마에게 전해 달라고 말했다고 한다. 자신은 대학에 합격했고, 텅(滕) 선생님께 정말 감사하다고. (사람들은 우리 엄마를 보통 '텅 선생님'이라고 불렀다.)

오래된 사진 한장3(당리)
지금 다시 그 사진들을 들여다보면, 흑백 사진 속에도 그날의 따스한 황금빛 햇살이 스며들어 있는 듯하다. 우리가 환하게 웃고 있는 건 방과 후여서였는지, 아니면 사진을 찍는 일이 흔치 않아서였는지, 이제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오래 들여다보고 있으면, 그 안엔 단순히 나와 오빠만 있는 게 아니다. 진지하게 카메라를 들고 있던 그 아버지, 그리고 곁에서 눈웃음을 짓던 텅 선생님도 함께 보인다.

나도 이제, 그분들이 그날에 머물렀던 그 나이에 서 있다.
당리 명예기자(중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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