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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고사 산책]⑨한일관계 정상화 앞당길 환단고기 태백일사의 한 줄 기록

남창희 인하대학교 교수

제2뉴스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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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26-03-16 08:57
한국 고대 가야사에 대한 첨예한 논쟁이 한동안 영호남 시민사회를 뒤흔들었다. 쟁점은 일본의 고대 식민통치기구 임나일본부의 위치 문제였다. 국내 다수 가야사 전공자들은 임나일본부의 성격은 군정사령부, 무역기구, 외교사절 등 불확실하지만 여하튼 그 위치는 한반도 남부에 있었다고 고집했다. 반면 국내 비주류 학계와 북한 학계는 임나는 대마도 혹은 일본 열도에 있었다는 경합학설을 제시했다. 전자는 임나가야설이고 후자는 임나 在대마도설이라고 약칭된다.

369년부터 562년까지 약 200년간 한반도 남부가 사실상 일본의 영향권 하에 있었다는 이 황당하고 굴욕적인 주장의 뿌리는 『일본서기』에 있다. 이를 체계적으로 발전시킨 것은 제국 일본 육군참모부이고, 이것을 식민지 조선의 교육체계에 편입시킨 것은 조선총독부의 조선사편수회였다. 이 학설은 조선이 고대에 일본의 식민지였다는 이유로 일제 강점을 합리화하는 선전 수단으로 활용되었다.



반면 임나在대마도설은 전혀 다른 고대사의 세계관을 펼쳐 보인다. 5세기 전후 동북아 국제관계의 중심은 일본 열도의 야마토가 아니라 광개토대왕의 통일전쟁 이후 고구려에 있었다는 것이다. 대마도를 정벌하고 이를 거점으로 일본 야마토 조정의 숨통을 틀어쥐고 있었던 고구려의 군사력 실체를 기준으로 당시 국제관계를 직시해야 된다는 것이다.

과연 두 개의 경합학설 중 어느 쪽이 사실에 가까울까? 언제부터인가 슬금슬금 국내로도 유포되던 임나가야설이 최근 붕괴 위기에 처해 있다고 한다. 임나 관련 지명을 경상도와 전라도 여기저기에 위치시켜서 영호남 향토 지식인들의 격분을 불러일으킨 『전라도천년사』의 가야사 부분은 결국 폐기되었다. 임나가야설의 근거로서 인용되었던 양직공도, 진경대사탑비, 호태왕비, 강수열전 관련 해석도 학술논문으로 연달아 논파되고 있다. 아쉬운 점은 임나가야설 측에서 대항학설의 논문을 유령 취급하고 읽어보지도 않는 점이다.

팽팽한 두 경합학설 간 대치 상태 해소에 중대한 단서가 발견되어 소개하고자 한다. 필자가 검증을 되풀이 한 그 논거는 24년 규슈 북쪽 잇키섬의 고적 답사 과정에서 처음 발견된 것이다. 잇키섬은 고대 김해 가야에서 규슈 북단으로 이어지는 항로에서 대마도와 현재 후쿠오카 사이에 위치한 섬이다. 잇키섬 역사박물관과 발굴 현장에서 답사팀이 전해 들은 그 이야기는 일본 고고학계에게도 미스테리라고 한다. "잇키섬의 수수께끼"라며 소개한 일본 학예사는 이상하게도 5세기 100년간 지층 어디에도 이 비옥한 잇키섬에 사람들의 주거 흔적이 없다고 한다. 한반도 DMZ가 지난 70년간 비워져 있었듯이 1600년 전 과거에는 번성했던 하루노스지 무역항과 섬 전체가 100년 간 텅 비어 있었다는 것이다.



중국 역사서 『삼국지』 「위지」 동이왜인전에는 부산과 후쿠오카 사이에 징검돌 같이 놓여진 대마도와 잇키섬이 활발했던 물류체인의 거점으로 기록되어 있다. 잇키섬이 통째로 무인도가 되었다는 사실을 물류학의 관점에서 보면 인위적으로 물류 체인이 차단된 흔적이다.

군사학과 국제관계학의 시각에서 보면 이해할 수 없는 이 공백 상태는 쉽게 해석된다. 우선 수만 명의 주민을 강제로 강제 이주시킬 수 있는 강력한 군사력의 존재다. 둘째로 치열한 군사적 충돌의 전후 과정에서 종종 나타나는 병참선 차단 활동의 흔적일 수 있다. 그렇다면 당시 대항관계에 있었던 고구려와 백제-야마토 연합세력 중 어느 쪽이 잇키섬을 민간인 금지 구역으로 비우려 했을까?

대마도와 잇키섬은 야마토 왜군이 한반도로 출병할 때 필수적인 수송과 병참의 거점이다. 임나가야설 주장대로 백제의 요청으로 동맹국 야마토 왜군이 5세기에 한반도에 수시로 드나들었다면 잇키섬이 무주공산이 되었을 리 없다. 반대의 경우라면 어땠을까? 고구려 입장에서 백제와 야마토 왜군과의 연계를 차단하기 위해서라면 수긍이 가는 일이다. 광개토태왕비에는 끊임없이 바다를 건너 백제를 후방에서 지원하는 왜군이 등장한다. 잇키섬이라는 중간다리를 제거하면 백제와 야마토 왜의 동맹을 효과적으로 차단할 수 있다.



흥미롭게도 이러한 융합 고고학적 추론과 일치되는 사실의 파편이 『환단고기』 「태백일사」에 나온다. 원문은 任那乃對馬全稱也인데 "임나가 대마도 전체를 부르는 이름이 되었다"는 문장이다. 이 사료의 고구려 관련 기록을 결합하면 고구려 호태왕 원정군이 규슈까지 상륙하고 대마도 전체를 임나로 부르고 여기에 왜의 한반도 접근을 차단하는 주둔 기구를 설치했다는 놀라운 기록이다.

어쩌면 일본서기에 나오는 임나일본부의 실체는 야마토 왜국이 한반도를 경략하는 통치기구가 아니라 거꾸로 고구려가 야마토 왜를 감시 통제하는 행정기관이 아니었을까? 한일 고대사 해석을 완전히 뒤집는 파천황 같은 해석이다. 환단고기 위서론자들이 국민들이 봐서는 안되는 위험 도서로 낙인찍는 이유가 여기에도 있는 것이 아닐까? 을사늑약 합리화의 심리전 기제로 작동해 온 『일본서기』 임나일본부설과 그 행동 강령인 정한론의 뿌리조차 흔들 수 있는 강력한 위력을 가진 대목이 아닐 수 없다.

임나가야설을 도약대로 해서 임나일본부설을 다시 빌드업하는 조선총독부 관변학자들의 그림자는 미래지향적 한일 우호관계 형성의 암적 존재이다. 일본 극우 세력의 對한반도 우월주의를 해체할 수 있는 파괴력이 『환단고기』 「태백일사」에 있는데 이 사실을 국민들은 전혀 모르고 있다. 이제는 위서론 시비를 접고 우리 학계가 『환단고기』의 사료적 가치를 차분하고 엄밀하게 검증해 봐야 하는 또 하나의 이유가 아닐까.

대마도
일본서기와 삼국지를 비교해보면 임나의 위치는 대마도다. 그 아래 잇키섬이 보인다.
남창희 인하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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