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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하추동]말 걸기와 말 듣기 사이의 침묵

김충일 북-칼럼니스트

임병안 기자

임병안 기자

  • 승인 2026-03-24 16:04

신문게재 2026-03-25 18면

김충일 북칼럼니스트
김충일 북-칼럼니스트
봄은 침묵 속에 잠겨 있던 꽃들이 천천히 말 걸기를 시작하면서 열린다. 마치 누군가를 기다리던 오래된 마음이 슬며시 고개를 들고 겨울이 끝났다고 말문을 여는 희고 담담한 하얀 매화처럼, 커다란 꽃잎이 하늘을 향해 벌어질 때, 지나가고 있는 봄의 마음을 헤아리고 싶어서 잠시 멈추었더니, 이미 철부지 되어 낙화한 목련이 된 듯이… 이렇게 함께 할 누군가를 맞이하고 싶어 지난겨울을 빠져나온 침묵의 꽃은 우리의 일상 속에서 겪고 듣고 보고 느낀 삶의 꽃이 되어 피어난다.

지난 주말에 몇몇 지인들과의 모임이 있었다. 일교차가 15도 이상으로 차이가 나기에 한 낮에는 가벼운 옷차림에 유의해야 한다는 기상정보를 무시하고 두툼한 점퍼를 입은 친구, 청력이 떨어지는지 목청이 높아 주위의 눈총을 받으며 초등학교 입학한 손주 자랑에 열을 올리는 녀석. 습한 반찬 국물을 훔쳐내며 알아듣기 어려운 잔 신음을 내는 동기, "티브이를 꺼! 뉴스를 안 보면 되지, 왜 스트레스 받고 열 받는가?"라고 일갈하며 침묵을 지키는 선비 같은 지인. 모임은 말의 길을 잃은 이바구에 엇갈리는 말 걸기와 제대로 듣지 못하는 말꽃 잔치가 되어 '버림받은 언어의 고아'가 되어버렸다.



제대로 된 '말 걸기'(태도)는 사람 속에서 사람과 함께하는 고상한 관념의 세계가 아니라 평범한 삶의 지저분하고 쓰잘데기 없는 현실에서 일어나는 사유(思惟) 행위이다. 그것은 날것의 경험에 밀착한 일상의 삶에, 감정의 구체적 진실에 정직해 지는 일이다. 더욱이 나와 생각과 지향이 다른 이들, 나를 내려다보고 누르며 적대하는 이들과도 수시로 만나 실랑이하고 대화하고 협상하는 일을 감수하겠다는 뜻이다. 그것은 '타인의 말과 감정이 들릴 수 있는 조건을 회복'하는 일이다. 그 핵심엔 '태도'가 있다. 말할 때는 깊이 생각해 전하고, 남 이야기를 들을 때는 경청하며, 타자가 소중히 여기는 걸 존중해야 한다는 것이다.

말 건네기의 순환적 태도는 말 듣기로 이어진다. 말을 잘 걸기 위해서는 필요한 말이 우리 안에서 자라야하는 것처럼 이야기를 담은 씨앗이 먼저 자라야 한다. 그 씨앗을 기르는 일은 주의 깊게 상대방의 이야기를 듣고 상대방의 의견이나 감정을 존중하며, 이해하려는 의지를 나타내면서, 귀를 기울여 듣는 시간을 내어주는 일과 같다. 그것은 다투면서도 말을 이어 가는 행위로, '완성된 합의 상태에 머물러 있지 않으면서, 견딜 수 있는 불일치 상태'를 창출하는 것이다. 귀를 기울여 듣는 것은 습관이 아닌 의도적인 행위이기에 의식적으로 노력하고 연습해야 한다.

누군가는 말한다. 말 걸기와 말 듣기 사이엔 침묵이 있다고. 무엇인가를 듣는다는 것은 자기 것을 비우기 위해 침묵을 익히는 기간이라는 말이다. 말소리를 잘 듣기 위하여 소리를 내지 않으려고 입을 다무는 그 무엇. 그것은 사람과 사람 사이의 단절이 아니라 연결이며, 소리 없는 대화의 형식이다. 분노하는 이미지를 달래기 위하여 불안한 언어의 엔트로피를 벗어나려는 고요한 행위이다. 그렇게 그것은 말 없는 가운데 하고 싶은 말을 하고 사랑의 귀를 열고 희망의 눈을 뜨며 모든 말을 들으며 '너의 말 걸기'가 '나의 말 듣기'가 되어 '어우러진 우리의 말'이 된다.



우리 인간은 타자와 모여 살기에 말하며 살아간다. 말 걸기와 말 듣기 그 사이의 침묵을 순환하면서 서로 다른 이들의 생각을 맞추고 조율하면서 세상을 바꾸는 길을 연다. 그 길은 말 뒤에, 침묵 속에, 제3의 귀속에 숨어 있을 뿐이다. 그 속에 생겨나는 작은 차이와 사소한 변화가 쌓이면서 '상호 주체의 신체리듬'이 '소생의 자유'를 불러일으키고 타자에게 '상호 평등의 마음'을 확장시킨다. 우선 '무엇'을 말하느냐보다는 '어떤 태도'로 말하고, 듣고 그리고 침묵하는지 나를 들여다 볼 일이다. /김충일 북-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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