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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인칼럼] 준비된 속도가 경쟁력이다: 패스터버타이징

최종인 국립한밭대 교수, 개교100주년 기념사업추진단 단장

박병주 기자

박병주 기자

  • 승인 2026-04-19 12:05

신문게재 2026-04-20 18면

최종인 한밭대 융합경영학과 교수
최종인 국립한밭대 교수, 개교100주년 기념사업추진단 단장
2013년 미국 미식축구(NFL) 결승전, 슈퍼볼 경기 도중 갑작스러운 정전이 34분간 발생했다. 수억 명이 지켜보는 '광고의 축제'가 순식간에 블랙아웃 되었고, 막대한 비용을 들인 글로벌 브랜드들은 그저 상황을 지켜볼 뿐. 이때 한 브랜드의 신속한 대응이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과자 '오레오(Oreo)'. 정전 발생 후 약 10분 만에 소셜미디어에 한 장의 이미지를 올렸다. 오레오 쿠키 사진과 "불이 꺼져도, 오레오를 찍어 먹을 수 있어요(You can still dunk in the dark)"라는 짧은 문장. 이 게시물은 폭발적으로 사람들 사이에 트위터로 공유되었고, TV광고를 능가한 효과를 냈다. 2026년 초 하버드 비즈니스 리뷰(HBR)는 '더 빠른'과 '광고'의 합성어로 '패스터버타이징(Fastervertizing)' 이란 용어로 그 가치를 설명한다. 핵심은 재치 있는 문장이 아니라, '실행으로 옮길 수 있는 조직의 준비 상태'를 지적한다.

오레오는 슈퍼볼 당일을 위해 마케터, 디자이너, 소셜 담당자, 법무, PR 책임자 등이 한 공간에 모인 전담팀(War Room)을 구성했다. 이들은 경기 화면과 소셜미디어 반응, 경쟁사 움직임을 동시에 모니터링하며, 아이디어가 나오면 즉시 시안을 제작하고, 같은 자리에서 법적·브랜드 검토까지 끝내는 구조를 갖추고 있었다. 그럼 우리나라 조직의 현실은 어떠한가? 비슷한 아이디어가 떠올라도 담당자는 팀장에게 보고하고, 팀장은 다시 임원에게 결재를 올려야 한다. 법무나 홍보 부서는 혹시 모를 논란을 우려해 보수적 판단을 하고, 이 과정에서 이슈의 열기는 식어 버리고, "아! 그때 하려고 했는데 타이밍을 놓쳤다"는 탄식만 남는다.

'패스터버타이징'이 주는 교훈은 첫째, 속도는 우연이 아니라 구조와 권한 설계의 결과라는 점이다. 실시간 대응이 필요한 상황에서는 "누가 책임질 것인가"보다 "누가 즉시 결정할 수 있는가"가 더 중요하다. 둘째, 완벽한 완성도보다 '맥락과 관련성'이 더 강력한 힘을 가진다. 소박한 제작비 수준지만, 소비자는 더 이상 가장 잘 만들어진 광고보다 "지금 이 순간 내 상황을 이해하고 함께 반응해 주는 브랜드"를 기억한다. 우리나라에서도 비슷한 위기는 수없이 등장해 왔지만 현장에서는 "괜히 나섰다가 논란이 되면 어쩌나", "위에서 부담스러워 할 거야"라는 말이 먼저 나온다. 리스크를 제로(Zero)로 만들려는 문화 속에서는 과감한 시도가 구조적으로 나오기 힘들다. 그럼 전국의 기술벤처들에게 이 개념은 시장의 문을 여는 생존 전략이다. 복잡한 규제, 새로운 정책이 쏟아지는 불확실한 환경에서, 가장 먼저 상황을 해석하고, 기술로 어떤 대안을 제시할 수 있는지 보여 주는 조직이 결국 이름을 남긴다. 수도권 대기업보다 예산과 인력이 적더라도, 소규모 워 룸과 생성형 AI를 결합해 "이슈 발생 후 72시간 안에 나오는 인사이트와 데모"를 반복해 낼 수 있다면, 벤처도 충분히 시장의 중심에 합류할 수 있다. '준비된 속도'는 지역 벤처의 약점을 상쇄하는 가장 현실적인 무기이다. 한 예로 코로나 시기에 대전의 한 바이오기업은 사전에 구축해 둔 플랫폼과 디지털 역량 덕분에 준비된 속도로 진단키트 및 장비 등을 개발하고 글로벌 시장에 내놓을 수 있었다. 이 경험은 "속도는 우연이 아닌, 미리 깔아 둔 기술·조직·파트너십의 결과"임을 보여준다.

특히 자원과 인력이 제한된 벤처기업, 지역대학과 지방정부에게도 '빠르게 움직이는 것'은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한 필수 전략이다. 의사결정과 실행 전반을 '속도 중심'으로 재설계해야 한다. 완벽한 하나를 만드는 대신, 여러 개의 실험을 빠르게 실행하고 그 결과를 바탕으로 즉시 판단을 내리는 교육을 하자. 제한된 인력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자동화와 AI의 활용도는 필수적이다. 반복되는 '학습의 루틴'이 조직 민첩성을 만들므로 구성원 개인의 위기 인식도 중요하다. '준비된 속도'는 위험이 아니라, 불확실성이 일상화된 시대 속에 새로운 안전장치가 아닐까? /최종인 국립한밭대 교수, 개교100주년 기념사업추진단 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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