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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백향기 대전창조미술협회 회장 |
지난 겨울은 유난히 번잡하고 여러 가지 바쁜 일들이 많아서 늦가을에 양파와 마늘을 심어 놓은 손바닥 만한 텃밭에 보온 덮개를 못한 채 지나고 말았다. 이른 봄에 산수유가 예쁜 꽃을 피울 때 반가우면서도 다른 한편으로 겨우내 눈서리를 그대로 맞으면서 땅속에서 몸을 잔뜩 웅크리고 있었을 양파와 마늘에게 미안하기도 하고 걱정도 되었다. 사실 마늘이나 양파라고 해도 양으로 치면 한 줌 정도이지만 자꾸 마음이 쓰인 데에는 나름의 이유가 있다. 마늘은 재작년 가을에 처음 심어서 작년 봄에 난생처음으로 조금 수확해 본 것이다. 그것을 씨마늘로 보관했다가 심었기 때문에 어설픈 농사꾼에게는 마치 자식같은 생각이 들어서 더 신경이 쓰였던 것 같다. 통상적인 수확에 대한 기대와는 조금 다른 정서가 겹쳐 있었던 것 같다. 싹이 잘 올라왔으면 하는 기다림은 수확보다 애틋함이라고 해야 할 묘한 마음이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날이 조금 더 풀리면서 기적같은 일들이 생기기 시작했다. 양파와 마늘이 동시에 흙을 비집고 여린 싹들이 얼굴을 내밀기 시작하는 것이다. 생명력이라는 것이 이런 것이구나 하는 놀라움과 고마움이 제일 먼저 든 생각이다. 그리고 다음으로는 겨우내 꽁꽁 언 땅 속에서 얼어 죽지 않고 제 몸을 한껏 움츠리고 견디어 내서 싹을 올리는 생명에 대한 경이로움, 그리고 존경의 마음까지 들기도 했다. 그 여운이 상당히 깊었던지 한동안 흥분된 마음이 가시지 않았다. 아마도 다른 사람에게 이런 이야기를 들었다면 그런가 보다 하고 지나쳤을 것이다. 그러나 내가 수확한 마늘을 씨마늘로 보관했다가 심은 것들이 제대로 돌보지도 못했는데 차가운 겨울을 견디어 내고 싹을 내밀기 시작하니 그 경이로움과 신비함이 설명하기 어려울 정도로 몸으로 느껴졌던 것같다. 마늘과 양파는 매우 중요한 향신료로 쓰이는 작물이기는 하지만 사실 크게 보면 엄청나게 많은 식물 중 하나인 푸성귀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하찮게 보이는 푸성귀 하나도 그것이 지니는 생명력이 이렇게 대단하구나 하는 경험을 하니 세상 모든 것들이 하찮게 다루어질 것은 하나도 없다는 생각을 진정으로 하게 되었다. 날이 조금씩 더 풀리면서 마늘과 양파는 농부들의 밭에 있는 것과는 비교가 되지 않지만 그런대로 키를 키우고 제법 이파리를 만들어 가는 중이다. 모든 생명이 경이롭다는 것은 별도로 이야기하지 않아도 부정할 수 없는 말이기는 하지만 그것을 실제로 만지고 직접 가꾸면서 체감하는 일은 그 신비와 경이로움의 강도가 전혀 다르다는 것을 새삼스럽게 알게 되었다. 사실 세상 모든 일이 그러할 것이다. 음악을 즐겁게 듣고 감상하는 일은 무엇보다도 좋은 일이지만 실제로 악기를 익히고 악보를 읽고 그에 따라 연주해 보는 것은 음악을 감상하는 것과는 전혀 다른 생생하고도 세밀한 감성을 체험하는 과정이기도 할 것이다. 멋진 자연을 찾아 나서고 풍경을 즐겁게 바라보고 감상하는 일은 정서를 풍성하게 해주는 일이지만 그러한 느낌을 직접 캔버스에 그려 나가는 것은 전혀 다른 감성의 세계로 들어서는 것임을 그림을 그리는 사람들은 다 아는 일이다. 악기도 그렇지만 그림도 이론으로 배우는 것만으로 실현되는 일이 아니다. 관찰한 대상에 느낌과 감성을 손으로 그려내는 일은 구체적으로 몸으로 익히고 몸이 반응해서 이루어지는 일이다. 사실 양파와 마늘이 겨울에 얼지 않고 잘 견디어 내서 봄에 싹을 내밀었다는 사실이 그렇게 감동적이고 마음 설레게 하는 일이냐고 묻는다면 내가 직접 마늘 하나 하나를 꾹꾹 눌러 심고 겨울에 보온을 못해 마음 졸인 사람에게는 정말 감동적인 일이라고 대답하고 싶다. 소설가 김훈 선생의 연필로 글쓰기에 대한 이야기가 새삼 공감이 간다. "연필은 내 밥벌이의 도구다, 글자는 나의 실핏줄이다. 연필을 쥐고 글을 쓸 때 나는 내 연필이 구석기 사내의 주먹도끼, 대장장이의 망치, 벳사공의 노를 닮기를 바란다." /백향기 대전창조미술협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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