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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선생의 시네레터] 공포와 원한의 공간 - '살목지'

김대중(영화평론가/영화학박사)

최화진 기자

최화진 기자

  • 승인 2026-05-14 16: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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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살목지' 포스터.
귀신 이야기는 무섭습니다. 귀신이 무섭기에 그들이 출몰한다는 공간 역시 무섭습니다. 영화는 평소 별개인 줄 알았던 사람들의 영역과 귀신의 영역이 겹치는 것으로 표현합니다. 그리고 그 귀신들이 사람을 자신의 영역으로 끌고 들어갑니다. 그곳은 죽음의 공간입니다. 삶과 죽음이 멀지 않으며 여차하면 그 죽음의 세계가 삶으로 덮쳐 올 수 있다는 것이 영화 속 공포의 핵심입니다.

영화는 살아있는 사람들의 호기심과 무모함과 부주의함이 어떻게 공포로 이어지는지를 강렬하게 드러냅니다. 근원적으로는 공포와 죽음의 공간일 수 있음에도 직원들을 보내고 위험으로 인한 철수 요청을 묵살하는 기업의 논리가 도사리고 있습니다. 그리고 문제의 저수지 속 귀신들은 억울하게 죽은 존재들입니다. 원혼이 아닐진대 구천을 떠돌거나 지상의 특정 장소에 묶여 있지 않을 테니까요.



공포 영화는 사람들의 논리와 관습의 허점을 노립니다. 첨단 과학 기술의 산물인 내비게이션과 로드뷰로도 포착하거나 탈출하지 못하는 공간이 있다는 것은 공포스럽습니다. 그리고 그곳에 억울한 죽음들이 있는데 하필 물입니다. <왕과 사는 남자>(2026)도 그렇고, <다음 소희>(2023)도 그렇습니다. 세월호 사건도, 천안함 사건도 그러합니다. 어떤 이는 무관심하고, 어떤 이는 다소간 호기심이 있기도 합니다. 또 많은 경우 부주의하고 무모하기도 합니다.

물론 특정 사건과 영화 작품을 곧장 연결짓는 것은 견강부회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대중적 장르로서의 영화는 진정한 애도와 깊은 성찰이 생략된 채 쉽게 망각하는 일에 대한 집단적 부채 의식을 담아낼 수 있습니다. 살목지의 음산하고 빠져나가지 못하게 하는 압력은 산 자들에게는 당연히 공포입니다. 하지만 영원의 세계인 하늘로 오르지 못하고 묶여 있는 원혼들에게는 애절함과 한스러움의 발로일 수 있습니다.

인상적인 마지막 장면. 앞서 살목지로 직원들을 몰아넣었던 기업 논리의 공간인 사무실마저 공포로부터 자유롭지 않다는 걸 보여줍니다. 오랜 세월 억울한 죽음 위에 삶을 구축해 온 한국인들을 생각하면 공포 서사의 잠재력과 가능성은 실로 무궁무진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노래 삼긴 사람 시름도 하도 할샤 / 일러 다 못 일러 불러나 풀었던가 / 진실로 풀릴 것이면 나도 불러보리라'라고 한 옛시조처럼 앞으로 풀어야 할 이야기와 노래가 또 얼마나 많아야 할까요.



김대중(영화평론가/영화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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