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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선생의 시네레터] 불안한 세상에 대한 은유 - '군체'

김대중 영화평론가/영화학박사

최화진 기자

최화진 기자

  • 승인 2026-06-11 16: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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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군체' 포스터.
전작 <부산행>(2016)에 이어 이번에도 사람들은 사각의 틀 안에 갇힙니다. 쉽사리 빠져나갈 수 없는 상황에 좀비들이 덤벼듭니다. 그냥 좀비가 아니라 스스로 진화하는 능력을 갖춘 존재들입니다. 사람들은 점차 좀비에 물려 감염되어 가고 남은 이들은 살아남아야 한다는 절박함에도 힘을 합치기보다 이기적 본성이 앞섭니다.

좀비들은 인간다움을 상실했음에도 잘 뭉치고 서로 의사소통하는 능력까지 갖추게 됩니다. 선과 악의 대결이 아니라는 점에서 영화는 흥미롭습니다. 인간들과 좀비 사이의 경계도 모호합니다. 생김새만 좀 다를 뿐 하는 짓은 유사합니다. 좀비들을 막고 생존자를 구해내려는 당국자들의 반응과 의사 결정도 타당하거나 공정하지 못합니다. 문제는 인간은 좀비가 되는데 좀비는 다시 인간으로 돌아오기 어렵다는 데 있습니다. 그러니 작품의 관점은 상당히 비관적입니다.

가장 흥미로운 캐릭터는 서영철입니다. 억울함인지 분노인지 모르지만 그는 세상을 전복하려 합니다. 좀비들을 조종하지만 그 자신 좀비가 아닌 자의 뒤틀린 권력 양상이 영화 속 불안과 갈등, 소용돌이의 근원입니다. 영화는 답을 말하지 않습니다. 문제가 커지면 이런 일도 있을 수 있다고 경고합니다. 세계의 균열을 방치할 때 혹은 묵살할 때 파국과 비인간화가 비극적으로 극대화될 수 있음을 그려냅니다.

극악의 빌런 서영철과 좀비들, 그리고 별로 대단치 않은 부정적 인간들 중 관객들은 어디에 마음을 두어야 할지 잘 모릅니다. 그러니 영화가 다 끝나고 나도 그리 개운하지 않습니다. 전통적 장르 영화가 우여곡절 끝에 사건은 봉합되고 관객들은 동일시할 영웅의 승리를 가슴에 담고 일상으로 복귀하도록 하는 것과 다릅니다. 영화는 오히려 우리에게 당신은 서영철인가, 좀비인가, 아니면 살았지만 부정적인 인간들인가 하고 묻습니다.



영화는 한 남자를 남편으로 두었거나 지금 그의 아내로 사는 두 여자가 힘을 합해 간신히 끝을 맺습니다. 그러나 세계는 여전히 위태롭습니다. 사람들을 호도해 몰지각한 연대로 세상을 장악하려는 권력 양상도 발견되고, 각자도생에 매몰되어 공동체를 위한 기여나 정의로움은 안중에도 없는 이기적 개인들의 문제도 답이 없습니다. 불안한 세상에 대한 은유로 볼 가능성과 더불어 영화는 여러 관점에서 해석되고 감상할 만한 여지를 남깁니다.

김대중 영화평론가/영화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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