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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송기한 대전대 국어국문창작학과 교수 |
한 나라가 발전하는 데에도 주변의 큰 나라, 혹은 선진국은 크나큰 도움이 된다. 그것이 가능할 수 있는 것은 숙주 관계에서 오는 효과 때문이다. 숙주란 생물학, 혹은 의학에서 온 용어로 "기생 생물이 기생의 대상으로 삼는 동물이나 식물이라는 뜻"을 갖고 있다. 사회적으로는 "전적으로 기대어 이익을 취하는 대상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기도 하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국가 관계에서 숙주는 어느 한쪽만이 이익을 취하는 일방적 관계가 아니라 상호적 관계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이다.
한반도는 주변국들과 늘 숙주 관계에 놓여 있었다. 그래서 한반도는 강대국의 숙주가 되어 그들의 이익에 편취당하고, 궁극에는 국권조차 상실했다고 한다. 이런 상태는 지나간 과거가 아니라 현재 진행형으로 우리 앞에 놓여 있다고 한다. 그런데 반드시 그러했을까.
상대방으로부터 무엇을 빼앗을 수 있는 상황, 혹은 뺏길 수 있는 상황은 수평적인 수준에서도 가능하지만 수직적인 수준에서도 가능하다. 그런데 이런 숙주 관계는 궁극에는 더 나은 조건이 수반되는 상향적 수평 관계에 이를 수 있다는 점이다. 서유럽의 국가들이 좋은 사례이다. 이들 국가들은 부유국으로 인정되고 있는데, 이를 가능케 한 것은 서로에게 기대어 좋은 것은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고 또 자신들의 처지에 맞게 이를 자기화했기 때문이다.
아프리카의 여러 국가들, 동유럽의 국가들은 자신들만이 갖고 있는 천혜의 자연 조건들, 유구한 문화적 전통에도 불구하고 서유럽 국가들만큼의 수준에 이르지는 못하고 있다. 이는 중남미 국가들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주변의 선진적인 국가, 앞서나가는 국가가 존재하지 않기에 서로에게 도움이 되는 관계를 형성할 만한 환경이 마련되지 않은 것이다.
한반도는 과거 중국을 숙주로 해서 항상 문화선진국 내지는 강대국의 반열에 있었다. 그것이 가장 정점에 놓여 있던 시기가 조선 세종조이다. 하지만 이를 정점으로 점차 확산되어가는 근대의 기류를 읽지 못하고 조선 사회는 쇠락하기 시작했다. 그 계기가 된 것이 한반도 역사에서 가장 최악의 사건으로 기록되는 인조 반정이다. 7년간의 전쟁을 통해서 동북아 세계 질서에 대해 뚜렷한 혜안이 있었던 광해군을 몰아냄으로써 조선은 이후 몇 백년 동안 앞선 문명을 수용할 만한 대상을 완전히 잃고 만다. 새로이 부상하는 청나라를 오랑캐로 취급하면서 그들이 줄 수 있는, 더 이상의 선진 문화를 접할 기회를 잃어버린 것이다. 점점 강대국화되어 가는 일본을 외면한 것 역시 마찬가지이다.
해방후 전쟁을 거치면서 한국은 빈사(瀕死) 상태에 놓여 있었다. 이를 벗어나게 준 것은 아이러니컬하게도 일본이었다. 일본은 값싼 노동력을, 한국은 기술 제휴를 제공받았다. 60년대 이후 일본으로부터 영향받지 않은 산업이 없을 정도로 그들의 기술은 우리의 일상을 파고들었다. 현대 미쓰비시 자동차, 효성 스즈끼, 대림 혼다, 후지카 곤로, 아지노모도, 소니, 내쇼날 플라스틱 등 그 열거가 어려울 정도로 이들 영향은 우리의 일상에 광범위하게 퍼져 있었다. 그런데 한국은 이 숙주 속에서 단지 기생하는 존재가 아니었다. 이를 뚫고 현대의 포니 자동차가, 금성의 T.V.가, 삼성의 반도체가 나왔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1998년에는 김대중과 오부치 선언에 의해 일본의 문화와 한국의 그것이 상호 개방되었다. 이때 일본에서 배용준의 '욘사마'라는 신드롬이 만들어졌고, 그것이 세계로 퍼져나가는 한류의 기원이 되었다. 장대한 K-문화가 지구상에 퍼져나가는 시작점이 된 것이다. 강대국이 있어야 그 주변국도 성장한다. 주변의 강한 나라를 힘겨워하지 말고, 이를 숙주로 이용하는 지혜가 필요하다. /송기한 대전대 국어국문창작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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