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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과내일] 국민가수 배호와 산동성

김덕균 중국산동사범대학 한국학연구소장

송익준 기자

송익준 기자

  • 승인 2026-08-30 17:00

신문게재 2026-08-31 19면

김덕균균
김덕균 소장
1919년 3.1만세운동이후 독립운동에 대한 열기는 전국적으로 확산됐다. 나라전체가 만세운동으로 들끓자 일제의 강제탄압도 거세어 졌다. 조직적이고 가열찬 독립운동을 위한 상해임시정부가 설립됐고, 1932년 세계를 놀라게 한 윤봉길의사의 거사가 있었다. 이후로 일제의 잔인한 압박은 중국으로까지 뻗쳤다. 임정은 항주(杭州) 가흥(嘉興) 진강(鎭江) 남경(南京) 장사(長沙) 광주(廣州) 유주(柳州) 기강(綦江) 등 중국 전역으로 전전하다가 1940년 9월 중경(重慶)에 자리했고, 이곳이 최종 청사 소재지가 됐다. 이 가운데 상해 항주 류주 중경의 청사가 기념관으로 관리되고 있는 것은 천만 다행이다. 마지막 임정자리 중경에서는 전열을 정비하고 강렬한 항일투쟁을 위해 광복군을 창설하고 자주독립에 대한 강한 의지를 불태웠다.

당시 우리나라와 인접한 산동성은 독립운동 경유지로 톡톡히 역할을 했다. 중국의 관문에 해당하는 청도는 그 가운데 한 곳이다. 일찍이 독일 등 서구 열강의 영향을 받은 청도는 경제적으로 번창했기에 돈을 벌기 위한 한국인들의 왕래가 빈번했다. 윤봉길 의사가 상해로 가기 전에 머문 곳도 청도다. 1930년 윤봉길은 일본에 대한 정세 파악과 자금 마련을 위해 청도시 요령로에 있던 일본인 세탁소에서 1년간 일했다. 번 돈으로는 어머니와 가족이 있던 충남 예산으로 절절한 편지와 더불어 송금했다. 부인 배용순 여사는 이 돈으로 재봉틀을 사서 살림을 꾸렸고, 재봉틀을 볼 때마다 남편 생각이 나서 자주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배국민, 산동에서 윤봉길과 비슷한 활동을 한 사람이다. 그는 1939년 결혼하고 부인과 함께 산동 제남으로 이주해서, 임정이 주도한 광복군 소속 제3지대 장교로 복무했다. 그런데 그의 독립운동 사적은 기록에는 없고 당시를 회고하는 주변 사람들의 증언만 남은 게 아쉽다. 제남대학에서 음악을 전공하던 처남 김광빈의 증언이 결정적이다. 제남에서 택시 몇 대를 갖고 운수회사를 운영하던 배국민에게 광복군 소속 청년 한 명이 찾아와 백범 김구 선생을 소개했다. 일제의 감시를 피해 중경에서 백범을 만난 배국민은 "일본에 협조하는 한국인의 명단과 내용을 파악하고, 산동에 거주하는 한국인들의 민원을 해결하고, 운수사업을 지속하며 독립자금을 확보하라"는 임무를 부여받았다. 이런 비밀스런 만남을 목격한 또 다른 비밀요원이 훗날 배국민은 공자와 손문을 특별히 존경했고, 틈나는 대로 곡부의 공자묘와 태산에 올랐다는 증언도 덧붙였다.

이렇게 비밀요원으로 활동하던 배국민이 1942년 4월 24일 경7로 위1로 제15호 집에서 아들을 낳았다. 그가 바로 한국 가요사에 길이 남을 불멸의 아티스트, 한국인이 가장 좋아하는 국민가수 배호다. 배호가 산동성 제남에서 태어난 것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그가 세 살 되던 1945년 8월 15일 일제는 항복했고, 1946년 잠잠하던 중국내 국공내전이 심화됐다. 제남에 살던 배호 가족과 한인들은 혼란을 피해 한국으로 향했다. 제남을 떠나 청도까지 기차와 마차, 때론 도보로 약 40여일 행군하며 많은 사상자가 나왔다. 일행가운데는 일본군인과 민간인도 있었다. 이때 약 5천명 정도가 청도에서 인천행 배를 탔다고 한다. 먼저 입국한 백범은 배국민 가족이 왔다는 소식을 듣고는 사람을 시켜 특별히 보호하라는 명령과 함께 서울궁궐 안쪽인 종로구(당시는 동대문구) 숭인동에 보금자리를 마련해 주었다.



생계를 위한 사업과 독립운동을 겸한 배호 가족의 산동생활과 생사를 넘나든 귀국길은 누구도 경험하기 힘든 고난의 연속이었다. 비록 29년이란 짧은 인생을 살았어도 그는 온갖 시련을 극복하며 이를 노래로 승화했다. 국민가수로 칭송된 이면에는 민족사적 아픔과 개인적 시련이 깊게 서려 있다. 시대적 아픔과 고난이 노래에 실리며 한국인의 깊은 감정을 울렸고, 결국 그는 한국인이 가장 좋아하는 가수 반열에 올랐다. 해방 전후사의 온갖 사연들이 노래에 담기며 서민의 삶에 깊이 파고든 것이다.

/김덕균 중국산동사범대학 한국학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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