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청호는 상류의 규제 갈등과 하류의 식수원 보호 요구를 해결하기 위해 2002년 민·관이 참여하는 유역 거버넌스를 출범시켜 상생의 기틀을 마련했습니다. 지난 20여 년간 상·하류가 책임을 나누는 공동체 모델로 기능해 왔으나, 현재는 변화하는 환경에 대응하기 위한 거버넌스의 제도화와 유역 전체를 아우르는 관리 체계 구축이라는 과제를 안고 있습니다. 550만 충청권의 공동 식수원을 지속 가능하게 지키기 위해서는 기존 협력 구조의 한계를 극복하고 실질적인 권한을 갖춘 굿거버넌스로의 도약이 시급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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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청댐 금강 유역. 중도일보 DB. |
이런 차이를 넘어 대청호를 함께 지키기 위해 2002년 주민과 시민사회, 지방정부, 관계기관이 참여하는 유역 거버넌스가 만들어졌다.
중도일보는 대청호를 둘러싼 상·하류의 갈등 속에서 거버넌스가 어떻게 시작됐는지, 20여 년이 흐른 지금 어떤 한계와 과제를 마주하고 있는지 살펴본다. 나아가 갈수록 복잡해지는 물관리 환경 속에서 550만 충청의 공동 식수원인 대청호를 앞으로 어떻게 함께 지켜나갈지 세 차례에 걸쳐 짚어본다. <편집자 주>
[글 싣는 순서]
1. 상류의 삶, 하류의 먹는 물… 대청호가 만든 '한 테이블'
2. 24년 거버넌스의 한계… 충청의 물, 이제 유역 전체를 보자
3. 권한과 예산 갖춘 '굿거버넌스'로… 대청호 관리 제도화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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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2년 4월 대청호보전운동본부 전신인 대청호살리기운동본부는 대전, 청주·청원, 보은·영동·옥천, 천안·아산, 금산·무주 등 대청호와 금강수계의 시민·환경단체, 여기에 금강환경관리청, 한국수자원공사 등 까지 참여해 대청호 거버넌스를 창립했다. 창립 초기 구성원들이 한국수자원공사 본사 앞에서 기념촬영을 하는 모습. (사진=대청호보전운동본부 제공) |
깨끗한 물을 더 강하게 지켜야 한다는 요구와 그 부담을 왜 상류지역이 계속 떠안아야 하느냐는 불만이 정면으로 맞섰다.
하류에는 매일 수도꼭지로 이어지는 식수원을 지켜야 한다는 절박함이 있었고, 상류에는 댐 건설로 삶의 터전을 잃은 뒤에도 계속된 규제에 대한 피로가 쌓여 있었다. 대청호를 둘러싼 상·하류의 이해관계가 언제든 충돌할 수 있을 만큼 팽팽했던 시기였다.
어느 한쪽의 주장이 틀렸다고 말하기도 어려웠다. 깨끗한 물이 필요했고, 동시에 그 물가에서 계속 살아가야 할 사람들의 삶도 있었다.
갈등이 이어질수록 오히려 분명해진 것도 있었다. 갈등은 상류와 하류로 나뉘어 있었지만 물은 그렇게 갈라져 흐르지 않았다.
보은과 옥천의 마을과 농경지를 지난 물은 대청호에 모였고, 다시 대전과 청주 등 하류지역의 수도꼭지로 향했다. 결국 서로 다른 지역의 삶은 대청호라는 하나의 물길에서 다시 만날 수밖에 없었다.
한 지방정부가 자기 지역만 관리해서도, 환경단체나 한국수자원공사 등 어느 한 기관만 나서서도 풀 수 없는 문제였다.
결국 서로 다른 목소리를 내던 사람들이 같은 테이블을 향하기 시작했다.
2001년 8월 시민단체와 관계기관이 대청호 문제를 함께 논의하기 시작했고, 11월 창립 실무소위원회가 꾸려졌다. 그해 12월부터 이듬해 3월까지 다섯 차례 실무회의를 열어 조직의 목적과 참여 주체, 활동 방향을 논의했다. 2002년 3월 12일에는 대청호살리기운동본부 창립준비위원회가 발족했고 정관과 사업계획, 조직 구성안과 지역별 사업을 다듬은 끝에 같은 해 4월 11일 공식 출범했다.
그날 만들어진 것은 환경단체 하나만이 아니었다.
대전과 청주·청원, 보은·영동·옥천, 천안·아산, 금산·무주의 시민·환경단체와 지방정부가 참여했고 금강환경관리청과 한국수자원공사까지 같은 테이블에 이름을 올렸다. 행정구역과 상·하류의 경계를 넘어 물을 함께 이용하는 사람들이 보전의 책임도 함께 나누자는 유역공동체의 틀이 만들어진 것이다.
활동도 단순한 하천 정화에 머물지 않았다. 상류 주민의 소득을 높일 방안을 찾고 친환경농업을 확산하는 한편 도농 교류와 하천감시, 조사·연구와 정책 제안까지 하나의 체계로 묶으려 했다. 이후 2004년 현재의 대청호보전운동본부로 이름을 바꿨다.
상류에 희생만 요구해서도, 하류가 깨끗한 물을 당연하게 받아들여서도 오래갈 수 없다는 고민이 출발점이었다. 서로의 이해관계를 없앨 수는 없었지만 대신 다른 이해관계를 가진 사람들이 같은 테이블에 앉아 해법을 찾는 방식을 선택했다. 오늘날 말하는 대청호 '거버넌스'의 시작이었다.
당시 대청호살리기운동본부 초대 집행위원장이었던 박정현 국회의원(더불어민주당·대전 대덕구)은 "하류는 깨끗한 물을 공급받는 반면 상류 주민들은 각종 규제와 불편을 감수해야 했고, 이에 대한 이해와 보상이 부족하면서 갈등이 컸다"며 "한 지자체나 기관만으로 풀 수 없는 문제였기에 주민과 시민사회, 지방정부, 수자원공사 등이 함께 해법을 찾는 구조가 필요했다"고 회상했다.
이어 "상류 주민을 규제의 대상이 아닌 환경보전의 주체로 참여시키고, 민간과 공공기관, 지방정부, 주민이 함께하는 거버넌스 모델을 만들었다는 점에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그렇게 상류와 하류가 하나의 물을 함께 지키자는 약속을 세운 지 20여 년이 흘렀다. 그렇다면 오늘의 대청호는 그때의 다짐처럼 충청권 모두의 삶을 잇는 물이 됐을까. 물을 둘러싼 문제는 더욱 복잡해졌고, 대청호를 지켜야 할 범위와 방식 역시 20여 년 전보다 훨씬 넓어졌다.
이현제·이혜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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