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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경소리] 연못이 아니다!

심영선 비래영광교회 담임목사

방원기 기자

방원기 기자

  • 승인 2026-09-14 15:19

신문게재 2026-09-15 19면

심영선 비래영광교회 담임목사
심영선 비래영광교회 담임목사
요한복음 5장에는 베데스다라는 연못이 등장합니다. 이름의 뜻은 자비의 집, 은혜의 집입니다. 이따금 물이 끓어오르듯 솟아오르는 이 연못에는, 그 물에 먼저 들어가면 어떤 병이든 낫는다는 소문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곳에는 늘 병자들이 빼곡히 모여 있었습니다.

그러나 자비의 집, 은혜의 집이라는 이름과 달리 그곳의 풍경은 결코 은혜롭지 않았습니다. 물이 솟아오르는 순간은 아무런 예고 없이 찾아왔고, 그때 가장 먼저 뛰어드는 단 한 사람만이 병이 나을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예고 없이 찾아오는 그 한순간에 단 한 사람만 병이 나을 수 있는 그곳은 은혜의 집이 아니라 처절한 경쟁의 자리였습니다.

서로의 아픔을 나누며 지내던 이웃도, 서로 위로 하던 사람들도 물이 솟는 그 순간에는 옆에 있는 사람보다 앞서야 하는 경쟁자가 되었습니다. 오늘날 우리 사회를 가리켜 흔히 '팔꿈치 사회'라 부르는데, 다른 사람보다 앞서기 위해 팔꿈치로 서로를 밀치며 달려가야 하는 경쟁 사회를 꼬집는 말입니다. 그 살벌한 팔꿈치 사회의 풍경이 이미 이천 년 전 베데스다 연못가에도 있었던 셈입니다.

그런데 베데스다 그 연못에는 그 경쟁에서의 승리는 고사하고 경쟁 자체에도 낄 수 없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바로 서지도, 걷지도, 기어가지도 못하는 서른여덟 해 된 병자였습니다. 그는 자신을 도와 베데스다 연못에 넣어줄 사람도 없었습니다. 그는 이미 오래전에 소망을 접은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그곳을 떠나지 못합니다. 더 이상 갈 곳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렇게 자리만 지키고 있습니다. 그에게 낫고자 하느냐는 예수님의 물음에도 그는 대답 대신 원망과 절망 섞인 대답만 했을 뿐입니다. 몸만이 아니라 마음까지 병들어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그 절망의 자리에, 예수님이 스스로 찾아오셨습니다. 건강한 사람은 굳이 갈 이유가 없는, 아무도 반기지 않는 그 죽음의 호수로 말입니다. 사람은 자기에게 필요한 곳을 찾아가지만, 예수님은 늘 자기를 필요로 하는 곳을 찾아가십니다.

그리고 절망의 자리에서 원망만 하고 있는 그에게 명하셨습니다. "일어나 네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 그러자 그가 일어났습니다. 서른여덟 해 만에, 처음으로 자기 발로 섰습니다.



여기서 '일어나다'라는 원어는 같은 장 21절에 나오는 부활을 가리킬 때 쓰이는 단어입니다. 그는 단지 병이 나은 것이 아니라, 새 생명을 얻은 것입니다. 어제까지의 그가 죽고, 오늘 전혀 다른 사람으로 일어선 것입니다. 우리 주님은 늘 생명을 주시고 살아가게 하십니다.

그런데 왜 하필 서른여덟 해 된 이 사람이었을까요? 이 사람이 믿음이 특별히 좋았던 것도, 간절히 매달렸던 것도 아닙니다. 아무리 보아도 명확한 이유는 없습니다. 다만 분명한 것은, 은혜란 본래 자격을 따지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은혜는 우리가 연못을 하염없이 바라보며 체념해 있을 때, 그 절망의 자리로 먼저 걸어오시는 주님의 발걸음입니다. 우리가 주님을 찾아가기 전에, 주님이 먼저 우리를 찾아오십니다.

우리 예수님은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우리를 찾아와서 구원해 주신 것처럼 늘 우리를 먼저 찾아와 손 내밀어 주십니다. 이것이 은혜입니다.(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롬 5:8)

돌아보면 우리 삶에도 크고 작은 베데스다가 있습니다. 이것만 되면, 이것만 붙잡으면 나아질 것 같은데 아무리 손을 뻗어도 결국 잡히지 않는 연못들 말입니다. 그 연못가에서 남보다 앞서려고 팔꿈치를 세우며 달려가지만 결국 오늘도 우리는 몸과 영혼이 지쳐 갑니다.

그러나 우리를 정말 살게 하는 것은 연못이 아닙니다. 그 연못가로 몸소 찾아오신 예수님입니다. 은혜는 호수에 있지 않고, 언제나 그 호수를 찾아오시는 주님께 있습니다.

지금 당신이 하염없이 바라보고 있는 연못은 무엇입니까? 사람도, 건강도, 형편도 아닌 그 무엇이든, 그것을 붙잡고 서른여덟 해를 보내고 있지는 않습니까? 이제 그 시선을 연못에서 거두고, 이미 당신 곁에 서 계신 주님을 바라볼 때가 아닐까요? /심영선 비래영광교회 담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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