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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선영 대전반석초 병설유치원 원감 |
해마다 2학기가 되어 초등학교 입학이 가까워지면 학부모님들의 질문이 시작된다. "우리 아이가 한글을 아직 다 못 읽는데 괜찮을까요?" 아이의 앞날을 걱정하는 부모의 마음이니 충분히 이해한다. 한글을 익히는 일은 분명 중요하다. 하지만 문해력의 바탕은 글자를 배우기 전부터 만들어진다. 28년을 아이들과 지내며 느낀 점이다. 초등학교 생활에서 아이를 단단하게 받쳐 주는 힘은 글자를 잘 읽는 능력만이 아니라, 이야기를 잘 듣고, 들은 것을 이해하고, 궁금한 것을 묻고, 자기 생각을 말로 풀어내는 힘이다.
문해력은 단순히 글자를 읽고 쓰는 기술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이야기를 집중해서 듣고, 낱말의 뜻을 짐작하고, 앞뒤 내용을 연결하며 질문하는 힘이 문해력의 바탕을 이룬다. 이 힘은 학습지를 풀어서 생기지 않는다. 좋아하는 그림책을 읽고 또 읽으며, 책 속 장면을 놀이로 옮겨 보고, 어른과 친구들과 이야기를 주고받는 가운데 조금씩 자란다. 유아기의 독서가 공부가 아니라 즐거운 경험이어야 하는 이유다.
우리 유치원 아이들이 가장 좋아하는 시간 중 하나도 책 읽는 시간이다. 그림책을 읽은 뒤에는 정답을 묻기보다 "너라면 어떻게 했을 것 같아?" 하고 묻는다. 친구와 다투는 이야기를 읽은 어느 날, 한 아이가 이렇게 답했다. "저는 친구한테 편지를 쓸 거예요. 말로 하기 어려우면 글로 쓰면 되잖아요." 아직 글자를 다 쓰지 못하는 아이가 글이 마음을 전하는 도구라는 사실을 스스로 떠올린 것이다. 엉뚱해 보이는 답에도 "그렇게 생각한 이유가 뭘까?" 하고 물어보면 아이는 자기 생각에 근거를 붙이는 연습을 자연스럽게 하게 된다. 때로는 어른이 생각지 못한 답이 나와 오히려 내가 아이들에게 배우곤 한다.
이렇게 그림책을 통해 키운 듣기와 말하기, 생각하는 힘은 유치원에서 끝나지 않는다. 초등학교에 입학한 뒤에도 새로운 배움을 이어 가는 든든한 바탕이 된다. 낯선 교실에서도 자기 생각을 편안하게 말하고 친구의 이야기를 귀담아들을 수 있다면, 그것이 아이에게 가장 큰 힘이 되는 입학 준비가 아닐까. 그래서 유치원의 역할은 초등 교육을 앞당겨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아이가 초등학교에서 마음껏 배울 수 있도록 그 바탕을 단단하게 만들어 주는 것이다.
이런 뜻에서 우리 유치원은 학부모님과 함께 그림책을 읽고 이야기 나누는 작은 시간을 갖고자 노력하고 있다. 어른과 아이가 함께 책을 읽는 경험이 가정과 유치원, 나아가 초등학교로 이어지는 배움의 첫걸음이 된다고 믿기 때문이다. 책을 사이에 두고 마주 앉으면 아이도 부모도 서로의 생각을 새롭게 알게 된다. 학부모님들께도 아이와 책으로 대화하는 방법을 자연스럽게 나누는 기회가 되었으면 한다.
가정에서 할 수 있는 일도 어렵지 않다. 하루 10분, 아이 옆에 앉아 그림책 한 권을 소리 내어 읽어 주는 것이다. 책을 끝까지 다 읽지 않아도, 같은 책을 열 번 읽어도 괜찮다. 읽고 나서 "어느 장면이 제일 좋았어?" 하고 한번 물어보면 충분하다. 글자를 가르치려는 욕심을 조금 내려놓고 아이의 말을 끝까지 들어 주는 부모가 되어 준다면, 아이는 부모의 목소리와 함께 나눈 이야기 속에서 책을 좋아하는 아이로 자란다. 그 시간이 쌓이면 아이에게 책은 공부가 아니라 따뜻한 기억이 된다.
아기 곰의 이야기를 읽던 날, 나는 아이들이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깊이 읽고 있다는 사실을 배웠다. 글자를 읽지 못해도 아이들은 이야기를 이해하고, 인물의 마음을 헤아리며, 자신만의 생각을 만들어 간다. 어른이 해야 할 일은 그 힘을 믿고, 질문을 건네고, 아이의 대답에 귀 기울이는 것이다. 한글을 읽는 법을 배우기 전부터 아이들의 배움은 이미 시작되고 있다./이선영 대전반석초 병설유치원 원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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