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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새롬의 세상만사] '짱깨'는 없다

박새롬 기자

박새롬 기자

  • 승인 2018-02-08 00:00

신문게재 2018-02-08 21면

아버지는 짜장면집을 운영했다. 짜장면집, 중국집, 짬뽕집. 사람들이 마음대로 부르지만 사전에는 '중식당'으로 등록된, 중화요리를 파는 곳이다. 중국요리라기 보다는 한국화된 중국식 요리다. 짬뽕 프랜차이즈처럼 한 가지 음식 전문은 아니고 짜장면과 탕수육으로 식사를 하고 양장피, 팔보채로 술안주를 하는 골목 사람들이 문지방이 닳도록 드나들던 동네장사였다. 그 세월이 22년었다.

아버지의 장사는 두 딸에게 괴로움이자 자랑이었다. 아버지가 한겨울에 배달통을 든 채 오토바이를 타고 8월 염천에 불 앞에서 간짜장을 볶아가며 정신없이 일하다가 결국 어머니와 다투는 모습을 옆에서 보는 건 마음이 무거워지는 일이었다. 그러나 탕수육 주문이 들어오면 자식 몫까지 같이 튀겨내 덜어주고 지인들과 가게에서 식사를 하며 맛있다는 인사를 듣는 순간은 역시 행복했다.

둘째딸은 여간 해서 아버지의 식당에 대해 말하지 않았다. 아버지가 중식당을 한다는 걸 알게 된 지인들은 늘 주문해주겠다고 말하는데 혼자 배달과 요리를 해야 하는 아버지가 멀리 배달할 수 없기 때문이었다.



"짱깨나 시켜."

주변에 아버지 식당을 알리지 않아서인지, 둘째딸은 중식당에 대한 비하발언을 가감 없이 접했다. 짱깨는 중국어로 돈궤를 장악한 주인장을 뜻하는 '掌櫃(장궤)'에서 온 말이라지만 사람들이 '짱깨'라고 말할 때는 대부분 그런 뜻이 아니었다. 그 말에는 중국음식이나 문화, 사람에 대한 비하 혹은 희화화하려는 의도가 무심한 습관으로 녹아 있었다.

둘째딸이 중국집 딸이라는 걸 아는 사람들도 짱깨라는 말을 전혀 하지 않은 건 아니었다. 그러나 무심코 말하곤 바로 눈치를 보며 사과한 사람이 있었고, 어원을 설명하며 좋은 뜻으로 말한 거라고 정정한 사람도 있었다. 그들은 그에게 미안해했다.

휴대폰 대리점에서 일하는 사람을 '폰팔이', 경찰을 '짭새', 공장에서 일하는 사람을 '공돌이'라고 부르는 사람들이 있다. 말의 격식을 낮춰 듣는 사람을 웃기려 하거나, 또는 자신이 남의 형편 같은 건 신경 쓰지 않을 만큼 '쿨'하다고 여기며 비하적인 표현을 쓴다.

그런데 만약 자신이 소중히 여기는 사람이 공장 근로자나 경찰이라면, 그들은 그래도 공돌이나 짭새라는 말을 쓸까.

둘째 딸에게 짱깨라는 말을 무심코 했던 이들은 그 말을 다시는 그 앞에서 꺼내지 않았다. 그건 그들의 마음속에서 무심한 비하보다 다른 사람의 아버지에 대한 예의가 앞서기 시작한 거라고, 둘째딸인 기자는 생각한다. 누구도 남의 직업을 비하할 자격은 없고 그런 말을 들어야 할 직업도 없다는, 세상이 다 아는 이야기를 해본다. 비하하는 말을 해선 안 되는 이유가, 아는 사람에게 예의를 차리기 위해서가 아니라 모든 직업에 대한 당연한 존중이었어야 하는 것도 사실은 모두가 알고 있을 것이다.


박새롬 기자 onoin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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